중앙대학 부속 중고등학교에서 8년 3개월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배화여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음악 수업은 아마도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훨씬 편하고 재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여학생이 대체로 음정 박자가 정확하고 해득력이 빠르기 때문이다. 물론 남학생도 특수한 음악 소질이 있는 학생은 예외다. 그러므로 합창활동은 여학교에서 더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배화에 재직하면서 합창활동을 전반적으로 권장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반 대항 합창경연대회를 실시하여 합창에 대한 흥미와 수준을 높여 나가는데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합창 특별활동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1, 2학년 반에서 노래점수가 상위에 속하는 학생은 무조건 합창반에 들도록 하여 약 100명 정도의 합창반을 구성하여 특별지도를 하였다.
이 합창단의 활동범위는 배화가 감리교 계통의 기독교 학교이기 때문에 매주 있는 채플시간에 찬양을 담당하거나 대내외적인 학교행사에 출연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합창연주회와 TV,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등 남학교에서 운동으로 학교를 빛내는 것 이상으로 학교의 간판 역을 다하였다.
그리고 각 대학에서 실시하는 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하여 합창단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과 학교 명예를 높이는 데에도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다. 또 한편 성악에 특별 소질이 있는 학생에게는 개인지도를 하여 시내 명문대학교에서 실시하는 성악콩쿠르에 출전시켜 입상케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음악교사의 하는 일이 학교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중하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 배화가 음악으로 인한 명성이 높았던 것은 나의 숨은 노력이 일익을 했다고 자부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준 것은 2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악연주하기에 적당한 대강당의 역할이 컸다고 하겠다.
배화에 재직 시에는 많은 추억거리가 있다. 특히 그 중에 하나는 나의 둘째 딸 금숙이가 내가 배화에 재직하는 동안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피아노 콩쿠르에서 리스트의 작품 12번 헝가리안 랩소디를 쳐서 특상을 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일 출퇴근하며 겪어야 했던 번잡한 교통상황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영등포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상당기간동안 배화까지 출퇴근을 하였다. 지금도 출퇴근 러시아워 시간대에는 교통편이 번잡하지만 당시도 매우 번잡하였다. 대중교통으로는 일반버스와, 지금은 없어졌지만 합승버스(16인 승으로 요금을 더 받는 좌석버스) 그리고 지상으로 다니는 전차(지금은 궤도 자체가 철거됨)가 있었다.
어느 것을 타든지 중앙청 앞에서부터 필운동 학교까지 약 2Km 정도는 대중교통편이 없는 관계로 도보로 걸어서 가든지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어느 날 전차를 타고 중앙청 앞까지 와서 내리기 직전에 무언가 손목이 간질거리는 것이 이상했다. 승객이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같이 꽉 차 있어서 손을 마음대로 쳐들기도 힘든 초만원의 승객 사이를 비비며 손을 들어보니 나의 손목시계가 날치기를 당한 것이다.
나는 ‘내 시계!’하며 어떤 의심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 내려 쫓았으나 그는 차가 쏜살같이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를 갈지자로 마구 달리는 것이었다. 도망치는 범인을 눈앞에 보면서도 교통사고를 당할 염려가 있어 그만 쫓아가는 것을 단념하였다. 이럴 정도로 당시에도 날치기꾼들이 득실거리기도 했지만 교통편도 매우 복잡했던 것이다.
나는 그러한 아침마다 겪어야 하는 교통난을 해결해 보려고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출퇴근을 하기로 하였다. 오토바이는 소형 90㏄ 중고차였다. 얼마동안 집근처에서 운전연습을 한 후 운전면허를 취득하고는 본래 목적대로 출퇴근길에 나섰다. 막상 대로에 나서 보니 위험해서 함부로 달릴 수가 없었다. 그래 버스 뒤를 졸졸 따라가기로 하였다.
당시 버스는 대부분 매연이 심해서 시커먼 매연을 펑펑 내뿜으며 달리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 매연이 얼굴에 묻어 학교까지 가보면 세수를 해야만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여서 남모르는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래 이번에는 이런 것을 방지하려고 핸들에 플라스틱 창문을 부착하기로 했다.
어느 날 오토바이 상회에 가서 창문을 부착하고서 을지로 입구방면에 볼일이 있어 나가던 길이었다. 인도 옆으로 느린 속력으로 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택시 한 대가 나보다 조금 앞 인도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내가 지나갈 수 있는 위치에서 정차를 하고는 뒷좌석 승객이 문을 확 여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 급정차할 여유도 없이 그만 여는 차문을 받으며 인도로 내 뒹굴었다. 그러면서 나의 오토바이 창문 역시 박살이 났다.
그러나 나의 몸에는 조그마한 상처 하나도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고 택시는 문짝이 약간 찌그러질 뿐이었다. 결국 교통경찰이 와서 택시의 잘못이 인정되어 나는 오토바이 창문의 변상을 받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이로 인하여 나는 그 후부터 그런 위험한 오토바이는 타지 않기로 맹세한 바 있다.
이것은 낙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영등포 시내에서 흑석동에 있는 낙양학교까지도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다. 내 마음에는 매일같이 출퇴근할 때마다 겪는 일이라 거리에는 저렇게도 많은 차가 다니는데 어째 나는 차 한 대도 없이 이런 교통 불편을 겪어야 하는가, 혹시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낸 것이 지프차를 한 대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흔히 하던 소위 “나라시”(영업신고를 하지 않은 개인 자가용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것, 우버 택시)을 하여 돈도 벌고 나의 출퇴근도 하면 일거양득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미군용 지프차에 탑을 씌운 차가 유행이었다. 이런 것을 하나 사 가지고 처음 얼마동안은 예상대로 출퇴근도 하고 낮에는 운전기사로 하여금 “나라시”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예상 못했던 문제가 또 발생하는 것이었다. 우선 중고차이기 때문에 수입보다는 잔 고장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고 또 불법 영업행위를 하기 때문에 교통경찰이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당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그 국회의원 선거 운동원들의 선거운동용으로 대여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 귀가 으쓱해져 얼마간의 대여비를 받고 대여를 해주었다. 선거가 끝나고 돌려받은 차는 완전 고물 차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보상비를 받을 수도 없고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지프차를 정리하고 만 일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