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선, 아리코폴라, 이인범 선생을 사사(師事)
성악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발성법을 해득해야 한다. 그런데 올바른 발성법을 지도하는 선생은 어느 시대나 그리 흔하지 않다. 내가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학교에 나가 모든 과목을 이수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내가 전공하는 성악 발성법에 대해서는 항상 불만족하여 더 좋은 선생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그 당시 성악계의 정상급 교수로서는 경성음악전문학교 이인범, 이상춘 교수가 계셨고 서울음악전문학교에는 이승학, 임만섭 교수가 계셨다. 내가 맨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 지도를 받은 분은 이승학 선생님이었으나 그 후 학교에서는 임만섭 선생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임만섭 선생은 음성이 너무나 드라마틱하여서 나의 음성에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어느 학교에도 적을 두지 않은 당대에 명성이 가장 높으셨던 이인선 선생님을 찾아가 지도를 받기로 하였다. 이인선 선생님은 본래 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있어 이탈리아로 건너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하시면서 그 당시에는 가장 뛰어난 벨칸토 발성법과 가장 멋진 가창법을 습득하고 돌아와 많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테너나 소프라노 중 성악을 좀 한다는 사람이면 거의 다 이인선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나도 이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아 발성법 기초를 체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월남하여 고학을 하는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레슨비를 조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선생님은 레슨비 받는 방법을 순 서양식으로 레슨 후에 레슨비를 피아노 위에 꼭 놓고 나가도록 했다.
내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레슨비를 한 번도 지연하는 실수를 범한 일은 없었으나 다만 레슨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 퍽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현재까지 내가 하고 있는 발성연습법이나 스케일 연습법 등은 그때 습득했던 이 선생님의 지도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 후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일본에 갔을 때 마침 세계적인 명테너 이탈리아인 아리코폴라 씨가 일본에 와 계셔서 그에게 발성법을 잠시 동안 교정을 받아 본 일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이인선 선생님과 그 아리코폴라 씨의 발성법에 대한 차이점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인선 선생의 발성법은 고음처리를 두성발성으로 하여 위 F음 이상의 고음은 그 이하 중음 발성법과는 달리 위로 씌워서 올리는 방법인데 비해, 아리코폴라 씨는 중음에서 내던 방법 그대로 고음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인선 선생의 발성법에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기 떄문에 그 다른 발성법을 체득하기에는 다소 혼돈이 왔던 것이었다. 이렇게 명인들도 발성법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또 체득도 하게 되었다. 그 후 계속적인 연구로 지도 선생에 따라 그 제자들의 발성은 자연히 선생님을 닮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직접 경험한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인선 선생의 발성은 고음이 뒤로 들어가므로 소리가 가늘어지는 경향이 있고, 아리코폴라 씨 발성은 그대로 내지르기 때문에 소리가 굵은 반면 곧 쇠퇴되는 것이 단점이라고 하겠다. 이 문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양대 전통줄기로 내려오는 테너 발성법의 대립으로 되어 왔다.
결론은 이인선 선생님의 가늘고 예쁜 발성법은 가곡을 부르는 데 적합한 발성법이고 오페라 같은 큰 무대에서 뚫고 나가는 발성은 아리코폴라 씨의 발성이 적합하다고 하겠다. 또 근자에는 우리나라 많은 젊은 성악도들이 이탈리아나 독일에 유학을 다녀와 귀국 독창회를 하는 것을 가끔 듣게 된다.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나라별로도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탈리아 계통은 대체로 풍부한 음량으로 가창을 하는데 비해 독일에서 수학을 하고 온 사람들은 대체로 음량은 작으나 예쁜 발성으로 가창을 하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성악은 이렇게 사사받는 선생에 따라 발성법 체득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결론으로 매듭짓고 싶다.
내가 제1회 독창회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이인선 선생은 이미 미국으로 가신 후였고 그 다음 우리나라에서 가창법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는 이인범 선생을 꼽을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선생은 안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치료 후 재기 독창회를 하고 연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나는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가창법을 듣고 선생님을 찾아가 많은 가창지도를 받은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르면 한동안은 이인범 선생을 꼭 닮았다는 말을 듣던 때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