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사원 다나(Dana)는 정신지체 장애자인 십대 아들을 둔 마흔 초반의 여성이다. 결혼하고 정신장애 아이를 출산한 뒤부터 남편과의 불화가 계속되자, 결국 아이를 사랑했던 엄마로서 이혼이라는 아픈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아이 양육을 위해서 힘든 나날을 보내는 그녀의 고단한 삶이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채용했다.
회사에서 줄곧 성실히 일해 왔는데 5년이 지나자, 직원들로부터 그녀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인가 회사에 오면 졸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 때문에 가정에서 힘들어서 그럴 터이지.’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했다. 연말 정산을 하는 과정에서 재무제표를 건성으로 보고 넘겼는데, 아들 재우가 말했다.
“재무에 뭔가 석연치 않는 것이 있어서 일일이 점검을 해본 결과, 선적되어온 물품 명세서에 체크가 두 장씩 출금이 되었습니다.”
그 수표를 은행에 조회해 본 결과 한 장은 내 사인이 맞은데 다른 한 장은 도용당한 사인이었다. 그래서 일단 수사를 의뢰했다. 회사체크가 내 명의가 아니라 도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심나는 구석은 있었지만 함부로 용의자로 누군가를 특정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될 수도 있었다. 화합을 중요시하는 경영측면에서도 용의자가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큰 흠집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처리하려고 수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결국 다나가 체포되었다. 경찰에 의하면 새로운 남자 친구가 마약거래상이어서 그녀의 인생도 나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했다.
책임감이 강하고, 생활력도 강했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산만해지면서 작은 실수들이 나오게 된 것도 업무의 피로 때문이 아니라 마약을 복용의 부작용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약 때문에 돈이 쪼들리자 회사 체크를 몰래 사용해 최근 반년 간에 걸쳐 3만 불에 달하는 금액을 빼돌렸다.
다나는 마약사범이 아니라 경제사범, 즉 공금횡령죄에 해당되었다. 회사에서 기소하면 중범죄 (Felony)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고 평생 그녀의 이력에 남게 된다. 정신장애 아들은 정부가 무료로 운영하는 기관으로 보내는, 법적 금고(Custody) 상태가 되어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파탄이 날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루는 다나가 나를 찾아왔다. 얼굴이 초췌했다. 그녀는 내방에 들어오자마자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는 애원했다.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마약에 손을 떼고 새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갱생의 길을 걷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얼마나 그녀를 배려하고 잘 해주었는데, 그런 나를 이용하고 배신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화가 났다. 용서를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내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당시 아내는 미드 웨스트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영적으로 성숙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통해 신앙의 힘을 얻을 때가 많았다. 늘 가족과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아내는 내 삶의 햇빛 같은 존재였다.
현명한 아내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용서를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일걸요. 인간적인 용서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해요. 금식 기도를 함께 하도록 해요.”
아내의 제언대로 그날 밤 교회에서 철야기도에 참석했다. 나는 다나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고 배신감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위해 기도했다. 진실한 용서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그러자 찬송가 269장 「그 참혹한 십자가에」란 찬송이 회중에서 나왔다.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홀린 피
샘물같이 늘 흐르니 죄 많은 형제여
값없어도 다 나와서 네 죄를 고하면
흰 눈보다 더 희도록 참 성결 얻으리
나 믿노라 보혈의 공로를
홈 없어도 피 흘리사 날 구원하셨네
찬송가를 부르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누구 덕분이었던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을 쳤다.
그러자 그녀의 배신감 때문에 무거웠던 내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따뜻해졌다. 비로소 ‘용서’를 입술이 아닌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간증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이튿날 담당 검시를 만나서 말했다.
“소송을 취하하겠습니다.”
어두웠던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너무 고맙다고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해고하고 너무나 불쌍해서 3천 불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돈 봉투를 보는 순간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 에게 당부하고 헤어졌다.
“지난밤 교회에서 기도와 간증을 했어요.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말고 아이 잘 키우면서 살아요.”
그녀를 보면서 어디에서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다시금 주 안에서 겸손한 삶을 배우게 되었다. 세속적으로는 내가 용서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귀한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시작했던 작은 사업이 번창하게 된 것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와, QMD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손해를 보더라도 신용을 지켜온 것도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런 믿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내 삶의 행복과 희망을 찾아 떠나온 세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월이었다. 목표만을 향해 치 열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 힘들 때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 역시 ‘주님은 왜 저를 떠나셨는지요?’ 하면서 원망도 했지만, 늘 고난의 파도가 올 때마다 주님은 날 업고 그 파도를 이기게 해주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내 평생 찾으려고 했던 행복은, 나의 희망이었던 파랑새는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었다. 나의 파랑새였던 주님께, 그리고 나의 아내와 가족에게 내 진심을, 내 눈물을, 내 사랑을 이 회고록을 통해 전하고 싶다. 그리고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