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길라잡이가 되어줄 롤 모델을 찾거나 멘토를 만나게 된다. 나폴레옹 힐에게는 카네기가 인생의 멘토(mentor)였다. 카네기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질과 법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성공의 법칙을 체계화하도록 힐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 카네기와 힐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20대의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한 생각들은 밀워키 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67년 졸업을 한 후 얻게 된 첫 직장이 밀워키에 위치한 탱크 캐터필러 등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였다. 더럽고 뜨겁고 방위 산업 계통의 3D직종이었다. 거대한 공장이었지만 방위산업체여서 베트남 전쟁의 와중이라 무척 바빴다. 나는 주 중에는 풀타임으로 일을 했고, 주말에도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다운타운에서 유일한 동양가게 ‘오리엔탈기프트(oriental-Gift)’를 발견했다. 그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홍순빈 사장이었다. 밀워키에서 한국 상인으로는 선구자 격이었다. 홍 사장은 뉴욕에서 형님과 동업을 하다가 독립해서 밀워키로 와서 가게를 오픈했다. 이 가게는 다양한 종류의 잡화를 판매했다. 홍 사장은 가게 일을 맡길 매니저로 한국인을 찾고 있었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나는 주말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회사에서 주는 봉급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봉급생활보다는 자영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은 미래를 생각한다면 한 살 이라도 젊을 때 돈을 더 저축해두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아놓는 것이 중요했다. 돈보다는 미래에 대한 공부였다.
그 가게의 액세서리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비취알은 홍콩에서 수입하고, 장식 부품은 로드아일랜드에서 생산하는 보석 재료들을 주문해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직접 제조해서 판매했는데 소규모였지만 수익이 높았다.
나는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직장인보다는 스스로 도전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업가가 소망이었다. 아버님처럼 기업을 이끌어 무역구국을 실천한, 경영인이 걸어야 할 길에 대한 동경이었다.
배우는 셈 치고 과감히 동양 가게 매니저로 전력을 쏟기로 결심하고 방위산업체는 사표를 냈다. 물론 아내의 반대도 있었다. 미국 회사가 주는 여러 가지 복지혜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양 관련 상품 사업은 쉽게 시작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지혜택 때문에 내 미래를 대비한 시작할 직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실패하면 다시 미국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다시 직장을 찾으면 된다.’
자신감과 배짱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들이 흔히 보여주는 호기로 보였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아내에게 내 계획을 얘기했고, 나의 분명한 의지에 아내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격려를 해주었다.
“당신이 하겠다면 하세요.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이국땅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아내 밖에는 없었다. 아내는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여성 유학생이었고, 시대를 앞서는 신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고집이 있었다. 자기주장도 강한 편이지만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주장을 말하면 대체로 수용해주는 편이었다.
남편들이 어려운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아내의 내조가 필요한 법이다. 그만큼 부부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 이해하고 합심해야 성공에 이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 역시 행복으로 받아들이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No other success can compensate for failure in the home.(가정에서의 실패는 세상 어떤 성공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깊이 공감했다.
나는 솔직하게 홍 사장에게 계획을 밝혔다.
“홍 사장님, 일 년 후에는 독립해 보고 싶습니다."
내 말에 얼굴이 잠시 안색이 어두워졌던 그도 쾌남아인지라 흔쾌히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 하겠다면 지원해 주겠다."
“물론입니다!”
나는 일 년 후 독립하려는 결심을 굳히고 일을 맡아 시작했다. 목표가 분명한지라 일 년 동안 나의 사업처럼 열심히 일했다. 홍 사장은 그런 열정에 감동이 되었는지 영업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은행, 제품생산처나 공급처 관계자들도 소개해주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독립해서 영업할 자신감이 생겼다.
기대와 희망으로 장사를 배운 일 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제 미국에서 나를 처음 받아준 고향 같은 캔자스시티로 돌아가야 했다.
혈혈단신 미국으로 와서 뿌리를 내렸듯 맨주먹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는 심정으로 홀로 서야 했다. 이제 캔사스시티로 돌아가서 내 비즈니스를 오픈하는 그날만을 기다려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홍 사장은 성공하기를 기원해 주었고, 가게 오픈에 필요한 쇼윈도 전시용품들을 트럭 가득 실어 주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만난 밀워키의 홍순빈 사장은 내가 처음 시작하는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던 분이다.
아이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유태인의 속담이 있다. 만일 월급만 받는 생활에 자족했다면, 나는 월급을 주는 삶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늘 도전하는 삶, 큰 꿈을 가지도록 격려해주신 아버님이 내 인생의 기관차라면 내 인생의 시작에서 밀어준 밀워키의 홍 사장은 바로 철로를 깔아준 분이다. 홍 사장은 나의 인생 초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그 철로를 달리는 기관차 차장으로 내 인생의 길을 달리게 되었다.
스테이션 웨건을 몰고 프리웨이를 달렸다. 라디오에는 마마스 앤 파파스가 부른 유행가 「California Dreamin」이 흘러나왔다.
All the leaves are brown
나뭇잎은 갈색으로 물들고
And the sky is gray
하늘은 회색빛으로 흐린
I've been for a walk O n a winter's day
어느 겨울날의 거리를 걸었어요.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L.A에 있었다면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California dreaming O n such a winter's day
어느 추운 겨울날에 캘리포니아를 꿈꿔요.
밀워키의 겨울은 너무 길었다. 나는 차창을 열고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볼륨을 한껏 올려 큰 소리로 따라 불러본다.
옥수수밭이 펼쳐진 평원으로 마음이 달리면 바람이 트럭보다 저만치 먼저 달렸다. 그 바람 속에 누렇게 익어가는 옥수수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합창을 했다. 멀리 핏빛 노을이 가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나는 바람과 함께 캔사스시티로 달렸다.
내 꿈이 영글어갈 캔사스여, 기다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