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의 뉴욕은 세계박람회 (New York World’s Fair)가 개최되어 거리에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박람회는 뉴욕시 3백 주년을 기념해 개최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사이를 걷는 우리는 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아시아 최고의 도시 상해 외탄의 고전적인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뉴욕이라는 도시가 보여주는 위용은 대단했다.
‘이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은, 어쩌면 거만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은 독립 이후 짧은 역사 속에서도 이룩해낸 놀라운 성공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말로 표현 못 할 규모 앞에서 나는 미국을, 그 정신을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그들이 성취한 성공의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미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었는가?’
마음속에 끝없이 의문이 솟아났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박람회장을 먼저 찾아갔다. 플러싱에 위치한 메도우 코로나 공원(Flushing Meadows Corona Park)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 남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등 36개국이 참가했다.
뉴욕 박람회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문화와 기술을 쁨 낸 쇼케이스 행사로 박람회의 주제는 ‘Peace Through Understanding(이해를 통한평화)’ 이었다. 드넓은 광장의 분수에는 유에스 스틸이 엄청난 양의 스테인리스 스틸을 쏟아 부어 만든 12층 높이나 되는 지구모형이 자리 잡고 행사의 심벌이 되었다.
뉴욕박람회의 한국관은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관에는 산업 전시장과 문화 전시장, 직매장이 설치되어 자개제품, 인형, 부채, 인삼, 놋그릇 등 상품이 진열되었다. 그리고 고전무용과 태권도 시범공연이 열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별관에는 잡채, 불고기, 갈비 등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한식당이 자리했다.
당시 한국관에 전시 된 품목은 대부분 수제품이었다. 그것이 그때 한국의 경제였고, 가난의 모습이었다. 나는 왕골 제품 슬리퍼를 10센트를 주고 샀다. 전시 제품 중에 수출 계약을 맺은 것이 왕골 슬리퍼 5만개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인의 손재주는 역시 세계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참으로 가난한 조국의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I960년 초만 해도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념은 6·25전쟁으로 인해 거리에 늘어선 고아들, 구두닦이 소년들과 껌장사 정도가 고작인 빈국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날 산업전시 회장에는 한국의 기술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 신제품들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었다. 불과 50년도 채 안 되는 그 세월에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우리는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도 형용사로 부족할 정도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조국을 생각하면서 뉴욕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경제에 대해 생각했다.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을 가져야 하는구나.’
세계박람회를 관람하면서 느낀 점이었다. 바깥 세계는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후의 핍진한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따금 뉴스와 한국에 계신 아버님을 통해 한국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들으면서 염원을 가졌다.
‘언젠가는 한국인이 가진 근면성과 좋은 두뇌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되었으면……’
그런 미래를 위해서 나도 동참하고 싶어 결심을 다지며 학교로 돌아왔다.
‘몸은 태평양을 넘어 있지만 한국을 돕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를 준비하겠다.’
늦여름 매미 소리가 가득한 교정에는 방학을 건강하게 보낸 학생들이 돌아와 오크나무 아래 잔디밭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방학 동안 지성과 낭만을 얻었겠지만, 나는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생존을 준비했고 배움을 이어가게 되었다.
나는 Cosmopolitan Club인 국제학생회에서 활동했다. 회원은 전 세계 15개국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중동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았다. 오일머니를 부유하게 쓰는 이들은 대부분 귀족 자제들이고 산유국의 눈치를 보는 미국 정부에서도 이 지역 출신의 학생들에게는 특별대우를 해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고교 때 클럽 HHU를 조직한 경험도 있었고, 아버님의 어깨너머로 배운 경영자 수업으로 나름대로의 지도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했다. 그런 모습이 아마도 다른 나라 유학생들 사이에서 좋게 비쳤으리라.
국제학생회의 선거에서 나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한국 학생이라고는 친구인 민태홍 군 등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도 머니파워인 중동 학생을 누르고 회장이 된 것은 많은 국제 유학생들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부회장에는 일본인 학생 티노 고사부로(T eno Kozaburo) 군이 맡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로사(Rosa) 양과 미국 여학생 카렌(Karen Baker) 양이 간사를 맡아 회장단을 보좌해주었다.
지역 언론사인 〈데일리 스타저널 (Daily Star-Journal)>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대해 직접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전후 휴전협정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선 한반도의 정세를 나는 자동차에 비유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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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 스타 저널(Daily Star-Joumal)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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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38선을 분기점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다. 북한은 공산치하가 되었고 남한은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김영렬(CMSC 재학) 군은 분단 한국을 반으로 동강난 자동차에 비유했고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엔진에 비유했고, 북한은 수력발전으로 만주까지 전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원료가 부족한 상태다. 반면 나머지 자체는 남한으로 비유되는데 공업은 미비하지만 자원이 있다.
김 군은 반쪽 난 차가 작동할 수 없듯이 한국은 현재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정상적인 가동이 될 수 있도록 배워나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이후로 통일이 더 멀어지게 되었다. 한국에 더 많은 외국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전후 10년간 전쟁 재발을 걱정하는 외국투자자들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국방예산이 전 예산의 50%를 차지하는 것도 경제발전에 발목을 잡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군은 62년 3월 도미해서 파크 대학에서 영어 연수를 받고 CMSC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데일리 스타 저널(Daily Star-Joum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