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빈은 대림산업 이재준 회장님의 생질이다. 그는 대학을 다니며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식당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적이 놀랐다. 한국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사는 집안의 아들이 이곳에서 식당 청소를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매달 150달러라는 당시로는 거금을 보내주셨는데, 자립하려고 결심하고 유학 온 지 1년이 지난 뒤부터는 가족의 송금을 거절하고 학교와 식당에서 쓰레기통 닦기와 접시 닦기, 웨이터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밑바닥부터 자립해보려는 결의에 찬 그를 나는 친구로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나 역시 한 푼이라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직접 돈을 벌어 학교에 다니겠다는 결심이 선지라 어떤 일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인생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고 하지 않는가.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고 믿었다.
학창시절 내내 붙어 다닌 벗이고，HHU 클럽을 하면서 유학을 함께 생각해 온 터라 마음이 잘 맞았다. 타국에서 의지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내가 이곳으로 유학을 온 동기도 친구 임창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미주리주립대학으로 옮겨와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할 동안 내내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임 군은 공부도 열심히 해서 수학과 화학을 복수 전공하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마음 씀씀이도 착해서 항상 남을 도와주는 그런 친구였다. 특히 나에게는 오랜 세월 변치 않는 우정을 보여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생각만 해도 마음 훈훈해지는 그런 벗이다.
그는 나보다 먼저 졸업해서 LA에서 취업 했다가 이후에 조지아주 돌턴(Dalton, Georgia)에서 카펫 무역을 시작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길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겁니다. 동양인은 τν에서나 봤지 눈앞에서 마주하기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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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빈 창텍스 트레이딩 회장(75)은 지난달 29일 세계한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서구 치평등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40여년전 미국 조지아주 돌턴에 정착할 당시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돌턴은 세계적인 카펫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I960，70년대만 해도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낯선 피부색의 동양인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동양인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바로미터였습니다. 내가 잘하면 동양인 전체가 인정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동양인이 없던 돌턴에서 아시아 전체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터를 잡은 그는 1970년대 중동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자 한국 업체들과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나이 마흔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사업적 수완도 뛰어나고, 명석한 친구였다. 그와의 관포지교는 훗날 그의 아들 마이클(Micheal)과 나의 맏딸 재인(Jane) 이 결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돈으로 인연이 맺어지게 되어 평생을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이민 1세대로서 보낸 미국생활 반세기 동안 창텍스 트레이딩(Changtex Trading Co)을 비롯한 다수의 사업체를 설립해 미주 내에서 손꼽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1997년 외환 위기나 금융위기 등 고국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때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미주 한인상공인 총연합회장을 지내면서 현지 교포 기업인들을 독려해 적지 않은 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미국에 10여 개의 요양원을 건립해 교포는 물론 동양인 노인복지에도 힘썼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나의 영원한 인생 어깨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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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창빈 창텍스 트레이딩(Changtex Trading Co) 회장 [출처 : 아틀랜타 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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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왔다. 긴 방학은 백인 학생들에게는 책을 던지고 해변으로 달려가는 시간이다. 비치 보이즈(The Beach Boys)가 부른 여름노래가 그런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If every had an ocean (만약 모두에게 바다가 있다면)
Across the U.S.A (미국을 가로질러)
Then everybody d be surfin...... (그러면 모두 파도타기릍 하겠죠.)
경쾌한 곡 「Suifin USA」를 들으면 당장에라도 지겹고 고리타분한 도서관에서 벗어나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푸른 파도에 몸을 맡기는 서핑애호가들의 멋진 파도타기가 상상된다. 20대 젊은이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더욱이 내륙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여름바다는 젊음의 광기를 발산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인학생들과는 달리 우리 유학생들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유학생들끼리 모이면 불평을 더러 하기도 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소수 인종은 어느 정도는 차별을 느끼게 된다. 물론 우리 같은 경우는 언어장벽으로 생기는 문제가 크긴 하다. 인종 차별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이곳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70번 프리웨이를 달리면 그 유명한 “브라운 판결”의 진원지인 토피가(Topeka) 가 나온다.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 소송은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인 올리버 브라운 씨는 딸 린다가 집 근처에 있는 백 인 초등학교를 두고 왜 기찻길을 건너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흑인 학교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섬너 초등학교로 전학시키려 했지만 백인 교장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했다. 그래서 발단이 된 것이 1954년 흔히 ‘브라운 판결’ 이라 불리는 이 역사적 결정이다. 이를 계기로 학교뿐 아니라 공공시설에서의 인종의 벽을 허무는 민권운동에 불을 지폈다.
판결 이듬해인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흑인 좌석으로 옮겨 앉기를 거부하다 투옥됐고 분노한 흑인들은 승차 거부에 들어갔다. 이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하에 민권운동의 불길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1963년 8월 I have a dream(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으로 유명한 연설이 행해진 워싱턴 링컨광장에서 열린 1백만 명 집회는 민권운동 역사의 한 분수령을 이루었다.
다음 해 인 1964년 6월 존슨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했고, 킹 목사는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민권운동은 그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인종차별은 남부와 비교하면 중북부는 덜한 편이었지만 백인들 역시 유색인종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 민권운동으로 인해 한인유학생뿐 아니라 앞으로 미국에서 정착해서 살아갈 많은 이민자에게 차별 없는 세상의 지평을 열어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나는 생각했다.
나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인간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무지를 버리고, 신앙의 눈으로 인간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국에 살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분명히 우리가 누리는 차별철폐의 자유는 흑인들이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난 세월의 희생과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상에 무임승차(Free Ride)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늘 빚진 자의 마음이 되었다.
한국사회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광복을 쟁취하거나 그리고 광복을 위해 피를 흘린 선열들의 그 뜻을 계승하려고 했다면 친일파로 인해 한국의 근대사가 얼룩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에 무임승차하려는 이들에게 진정한 애국심이 있을까 하는 회의를 해본다. 그저 개인의 안위를 위해 어떤 세상이 와도 살아남는 팔색조 같은 이들의 세상이 과연 어떤 역사를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을까.
역시는 결국 피를 흘린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만이 값진 교훈이 된다. 세계의 어느 나라 보다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미래의 이상을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실하게 분명한 목표를 향해 구축해가는 저력을 보면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도 워싱턴에 건립된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미국 격언을 생각해 본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그거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임창빈 군은 낯선 고장 돌턴에서 동양인을 평가하는 ‘바로미터’ 로서 최선을 다해 한국인,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