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민영화의 진통 (32...

어떤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악역을 맡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개혁을 전제로 할 때 악역은 더욱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개혁이란 고통스럽더라도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살을 도려내야 하는 역할을 누군가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1978년 4월 건립하여 정부주도로 운영된 세종문화회관은 1999년 7월 1일부터 서울시에서 민영화체제로 이전하면서 재단법인이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국장급 공무원이 관장으로 발령받아 운영하였다. 한국 공연의 1번지이며 서울 도심에서 가장 좋은 길목에 위치한 공연장이지만, 일반 공연보다는 정부의 중요한 경축행사가 많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권위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였다.

그러나 재단법인으로 바뀌어 서울시 사하단체로 되면서, 당시 고건 서울 시장은 민선으로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을 뽑기로 하였다. 기존 관장의 명칭을 바꿔 총감독으로 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민선 최초 총감독에 내가 발탁되었다.

당시 나는 예술의 전당 사장 임기를 끝내고 개인 문화단체인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으로 있었는데, 고건 시장이 수소문 끝에 나를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으로 위촉한 것이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이 되고 나서 그동안 관료주의 내지는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던 공연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깨끗이 벗겨내고 탈골쇄신하여 일반인을 위한 공연장으로서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해 나가기로 하였다. 세종문화회관 초대 총감독 취임식에서 나는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나의 소신을 밝혀나갔다.

“세종문화회관은 이제까지만 해도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여왔던 공영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부터는 민영화되면서 독자생존의 시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라도 일대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디션을 철저히 보아야 하고, 그에 따른 구조조정도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예술계도 연봉제로 가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나의 취임사는 가히 폭탄선언에 가까웠다.

▲ 세종문호회관에서 개최한 '세종 - 다움아카데미 배움드리'에서 인사말을 하며

당시 세종문화회관에는 교향악단, 소년소녀 합창단, 국악관현악단, 무용단, 뮤지컬단, 합창단, 오페라단, 청소년교향악단, 극단 등 9개의 예술단체가 있었다. 이 예술단원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오디션을 보아 실력이 떨어지는 단원은 과감하게 퇴출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예술단원들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정부에서 주도해나갔을 때는 일단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단원들이 되면 평생 직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자기의 예술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태해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예술이야말로 갈고 닦을수록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술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마다 오디션을 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취임사에서 선언했던 대로 나는 그해부터 전체 예술단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그 결과 첫 해에 9명의 탈락자가 나왔다. 나는 그 9명의 탈락자를 과감하게 퇴출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남아 있는 예술단원들이 9명의 탈락자를 복귀시키라면서 노조를 만들어 대항하였던 것이다. 예술기관이 아닌 순수 예술인들로만 구성된 노조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최초로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노조는 “이종덕이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수근거렸다.

나는 그런 모함을 받으면서 끝까지 내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거의 1년 반 동안 대립을 하였는데,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체 노조는 그동안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것이 승소하자 마치 승리자인양 세종문화회관 정면 계단 위 우측 편에 천막을 치고 밤낮으로 꽹과리와 북을 쳐대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2000년 6월 15일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노조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은 청와대로 가는 길목이라 대통령 행차가 지나갈 때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급기야 서울시 경찰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 일행이 청와대로 들어오는 그날 오후 4시 전까지 농성을 풀고 천막을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경찰청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와 관계된 몇 군데 관청에서도 압력이 들어왔다.

당시 나는 세종문화회관 노조를 대상으로 서울중앙노동위원회에 상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 발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6월 15일 오전 10시에 세종홀에서 노조위원장, 민예총 부이사장, 사무총장을 불러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결국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어 퇴출된 9명을 복직시키기로 하되, 앞으로 오디션만큼은 계속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합의했다. 진통을 겪으면서 마라톤협상을 하던 끝에 그날 오후 3시에 극적으로 타결을 보았고, 3시 30분에 노조원들은 농성을 풀고 천막을 철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