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봉사’라는 두 개의 기차 레일
인생을 강산으로 비유한다면 참으로 길고 긴 강을 굽이굽이 돌고 높은 산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문득 뒤돌아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산이 주름처럼 겹쳐 원근법으로 처리된 한 폭의 산수화가 보이는데, 그 겹겹의 갈피 속에 숨은 사연을 펼쳐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와 앞섭니다. 혼자 감춰두고 가끔씩 아무도 몰래 들여다보던 일기장을 누구에겐가 들킨 것처럼, 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자니 당혹감마저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은 한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바로 제 경복고등학교 동창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김상배 교수입니다. 그는 저를 우리나라 무대예술의 산증인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동시에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을 경우, 영원히 잊혀지고 말 우리나라 무대예술의 이면사를 저보고 쓰라고 강권했던 것입니다.
저는 40여년 간 무대예술의 뒤편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온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결코 무대 예술의 산증인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던 시절이 우리나라 무대예술의 초창기였고, 그 예술의 발전과정을 무대 뒤에서 빠지지 않고 보아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친구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제 이야기를 써보려고 시작을 하였으나, 기억이 가물거리고, 묻어두어야 할 성격의 것도 많고 해서 막상 드러내어 보여드릴만한 것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뻗은 팔이니 휘둘러보기는 해야겠다는 객기가 발동하여 미흡하나마 최선을 다 하여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제 인생의 물줄기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무대예술을 중심으로 한 예술행정의 길이고, 또 하나는 신앙을 토대로 한 봉사활동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어느 것을 앞세울 수 없을 정도로 제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들이었습니다. 마치 두 개의 기차레일이 깔린 길을 걷는 ‘인생’이라는 전동차를 타고 운전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역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어 달리기도 하면서, 곳곳에 나타나는 위험과 유혹을 물리쳐가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이 글이 나오게 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 특히 저와의 인연을 글로 써서 빛내주신 여러 선배님과 친구와 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이제 제가 가야 할 종착역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예술’과 ‘봉사’라는 두 개의 레일을 따라 앞으로도 계속하여 인생의 전동차를 끌고 갈 것을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운(梧雲) 이종덕 올림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아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_ 구상
* 이 시는 필자가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으로 부임할 때 구상 선생이 축시로 보내온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