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력 뛰어나면서 모가 나지 않...

강원룡(경동교회 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특히 개성이 강하고, 남다른 고집을 갖고 있다. 그것이 작품에도 반영되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내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예술기획이나 예술 경영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직 예술경영으로 인생을 살아온 이종덕 씨는 강한 개성과 고집을 가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아이디어맨이면서 또한 원만하게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리더십을 가진 예술의 귀재이다. 내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처럼 개성이 강한 사람이 어떻게 놀라울 정도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칫 예술가들의 고집은 모난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는데, 이종덕 씨는 성격이 모나지 않고 넉넉하다. 나는 그것을 그만이 가지고 있는 ‘보배’이자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종덕 씨를 만난 것은 88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당시 나는 한국방송윤리위윈회 위원장으로, 그는 ’88서울예술단 단장으로 있었다. 88서울예술단의 재정은 한국방송광고공사 기금에서 출현되었는데, 나는 당시 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그 기금지원의 결재를 맡는 다소 부담스런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이종덕 씨와 나는 업무관계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땐가 그가 초청하여 예술단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공연시간 관계로 제 때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공연을 보고나서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데, 그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차 안에 닭튀김 요리가 든 봉투를 놓고 가며 말했다.

“공연이 길어져 식사도 못하셨을 텐데, 차 안에서 요기라도 하시죠.”

나는 오래도록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종덕 씨는 이처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알아서 챙겨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너그러운 성격을 믿고, 아쉬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1996년 5월 7일 크리스찬아카데미 25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때였다. 그때 이종덕 씨는 자신이 이끄는 예술단을 동원하고 와서 행사장 정문에서부터 본관에 이르는 길 양쪽에 늘어서서 온갖 공연을 벌이는 등 돈 한 푼 받지 않고 행사지원을 해주었다. 단원들 모두가 너무 열심히 행사도우미로 활동하여 크리스찬아카데미 25주년 행사는 더욱 빛이 났으며, 정말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 강원룡 목사 (2000. 5.) [출처 ; 여해와 함께]

나는 이종덕 씨의 그런 호의에 대해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갚을 만한 기회는 오지 않았다. 주로 내가 부탁하면, 그는 거절 한번 하지 않고 나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1999년 이종덕 씨가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이 되었을 때 내게 연락을 해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세종문화회관 후원회 명예총재로 위촉되어 있었는데, 나더러 총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그 후원회의 총재가 되어 활동했다. 그것으로 내가 그에게 진 빚을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총재 수락을 하고나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2000년 6월에는 ‘여해 강원룡과 함께 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여해’는 나의 호이기도 한데, 주변사람들이 그런 모임을 주선하여 자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그 모임은 2003년 6월 12일 ‘여해 강원룡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모임의 성격도 변하여 경동교회, 크리스찬 아카데미, 평화포럼 등에서 종사하는 사람들 중 각 2명씩을 뽑아 운영위윈회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운영위원 6명에 1명을 더 보태어 문화프로그램 책임자로 이종덕 씨를 추대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여해 강원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위원은 이종덕 씨를 포함하여 7명을 구성되었는데, 2003년 12월 13일 그 첫 모임이 프라자 호텔 덕수홀에서 열렸다. 이때 유재건 국회의원이 사회를 보았으며,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밴드와 성악가도 출연하여 그 자리를 빛냈다.

이 모든 기획과 출연자 교섭을 이종덕 씨가 맡아 진행하였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떠나 이제는 단국대학교 교수로 있다고 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예술행정의 현역 못지 않은 기획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적 감각과 지식,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개성으로 다른 사람들과 포용력 있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이종덕 씨만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기획하는 사람들, 즉 예술계 전체를 놓고 볼때 독보적인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