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감정으로 묶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무대예술은 한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동일한 시간에 같은 호흡으로 감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각자 개성이 다르고 직업이 다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관객으로 오지만 공연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을 보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60여개 국의 6500여명이 희생을 당한 참사였다. 그 중에는 한국인도 10여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건이 터진 직후 내가 걱정했던 것은 바로 전날 세종문화회관의 박인건 공연기획부장과 고대림 경영기획부장 두 사람을 미국 뉴욕으로 출장 보냈기 때문이었다. 브로르드웨이 넌버벌(Non-Verbal)뮤지컬 <델라구아다>의 한국 공연 유치를 위해 간 것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곧바로 출장 간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그 날 밤새도록 잠을 설쳐가며 소식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텔레비전 뉴스를 들으며 전전긍긍하였다.
다행히도 뒤늦게 두 사람으로부터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미국 뉴욕 테러사건 현장 목격담을 들으면서 나는 그 희생자들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때 퍼뜩 떠오른 것이 추모음악회였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박 부장! 우리가 한번 미국테러 참사 희생자 추모음악회 같은 걸 기획해보면 어떨까?”
내가 공연기획부 박인건 부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박인건 부장과 고대림 부장이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곧 박인건 부장은 미국 9.11테러참사 희생자 추모자선 음악회 기획에 들어갔다. 의외로 기획단계에서부터 호응도가 높았다. 음악회에 출연하겠다는 스타들이 무료 공연을 원칙으로 하되, 그 대신 관객들을 대상으로 자선 모금을 펼치기로 했다.
이때 나는 이 추모음악회를 세종문화회관과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하되,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즉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을 빌려주고 동아일보는 기사를 실어주는 것으로 하고, 모든 기획에서부터 관리까지 광화문 문화포럼이 앞장서서 주관적으로 하는 행사로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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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테러 후 미국인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마친 후 / 세종문화회관 간부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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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은 ‘사랑과 영혼의 평화음악회’로 부제를 ‘미 테러 참사희생자 추모 및 자선모금을 위한 무료공연’이라고 달았다. 2001년 10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청청소년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소프라노 이정애, 테너 강무림, 첼리스트 이숙정, 재즈가수 윤희정, 소리꾼 박정욱 등 모든 출연자가 무료출연을 해주었다.
한편 그날 공연장 입구에서 평화의 메시지 서명운동도 갖는 등 각종 이벤트를 연출하였다. 당시 영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하여 미8군 사령관 등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적은 돈이지만 무기명으로 110명과 기명으로 35명이 기금을 내주었다.
기금 전달식에는 광화문 문화포럼 이세중 회장과 동아일보사 김학준 사장, 그리고 내가 참여하였다. 우리는 그때 두루마리 형식으로 서명한 방명록과 소정의 성금을 미국대사관 대사실에서 하바드 대사에게 전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한미우호관계 증진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미국정부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하바드 대사는 전달식에 참여한 우리 일행을 극진하게 대우해주었다.
다음해인 2002년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영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삼청각을 방문하였다. 삼청각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낸시 여사를 영접하게 되었다.
마침 그때 한국 걸스카우트에서 삼청각을 방문하였는데, 걸스카우트 단원들이 그네와 널도 뛰고, 각종 오락 민속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과 여러 가지를 둘러보면서 로라 부시 여사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한국의 문화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국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문화재 곳곳에 담겨있습니다. 작년 테러 참사 때 한국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준 성원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입니다.”
그때 나는 주한미국대사가 로라 부시여사에게 어떤 말을 전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 9.11테러 당시 자선기금 마련음악회 일도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아무튼 나는 언어가 달라 다소 소통이 안 된다 하더라도, 예술을 통한 감정의 전달은 세계인류가 다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세계언어였다.
나는 9.11테러 참사추모음악회를 통하여 사람이 한 마음으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