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에 유혹에 약하다. 살아가다보면 도처에서 유혹을 받기 마련인데, 그것을 비켜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여자가 유혹하고, 돈이 유혹하고, 권력과 명예가 유혹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갖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나는 젊은 시절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였다. 문공부차관을 지낸 고종사촌 매형의 “유혹이 많은 곳엔 가지말라”는 당부의 말이 흔들리는 나의 지주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놓고 나는 갈등이 많았다. 대학졸업장을 받으면 문교사 자격증이 나오기 때문에 중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갈수 있었다. 그러나 이왕 교직에 몸을 담으려면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까지 받아 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결혼까지 한 내 처지에 계속 공부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가장이었고,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하려면 직장을 구해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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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졸업식에서 / 결혼까지 한 나로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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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누군가가 내게 공무원 시험에 한번 응시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말했다. 지금은 그가 누구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는 내게 군사정권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원을 뽑는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당시 나는 그 시험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제1기 공무원시험이라는데 매력을 느꼈다. 군사정권을 대표하는 기관이니 일반 공무원보다 뭔가 달라도 다르고, 제1기면 위에 선배가 없으니 승진하는데도 유리한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응시나 해보려고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 것인데, 얼마 후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나의 공무원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2년 정도 근무했을 때,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제3공화국 수립과 함께 민정이양이 실시되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도 해체되었으며, 나는 민정이양과 함께 공보부로 가게 되었다. 민정 이양당시 공보부에 있던 고종사촌 매형 고영보 차관의 주선으로 그쪽 근무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영화과를 지원하였다. 그랬더니 어느 날 매형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유혹이 많은 곳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제작자나 수입업자들 질이 좋지 않다. 그러니 너는 문화과에 가서 예술행정에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그 시절 유독 영화나 쇼 같은 것을 좋아해서 영화과를 지원했던 것인데, 매형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문화과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매형이 그런 말을 할 때 매우 서운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왜 말리는 거냐고 대들고 싶었지만,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매형인데다가 더구나 차관이면 말단 공무원인 나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직급이었기 때문에 그런 서운함을 내비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결국 나는 제대로 항의 한번 해보지도 못한 채 공보부 문화과에 주저앉고 말았다. 당시 문화과에서는 연극, 무용, 국악, 연예, 음반 등 무대예술의 행정 업무를 주관하고 있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40년간 나는 주로 공연예술에 관한 행정분야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형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내가 오로지 40년간 예술행정가로 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아닌 무대예술 쪽을 택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영화파트의 경우 공무원 비리에 걸려 자주 담당자가 바뀌었다. 만약 내가 영화 담당을 맡았다면 불과 몇 년 만에 공무원을 그만두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 공보부에서 영화파트는 가장 화려한 분야였다. 유명 배우와 감독을 자주 만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영화라는 것이 제작비가 많이 들다보니 자연힌 돈과 관련된 비리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길제로 영화파트에서 에술국장을 지낸 사람들 중 한 분은 영화업자들의 자기 이익을 위한 추서에 연루되어 감옥에까지 간 일이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한을 풀지 못하고, 집에서 쉬다가 결국 암에 걸려 세성을 떠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영화 쪽 사정에 비하면 무대예술 쪽은 조용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는 일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씩 배워가면서 자기세계를 넓혀가는 데 있어서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당시 매형의 말을 내 좌우명처럼 새겨두고 있다.
“유혹이 많은 곳엔 가지 말라.”
지금 생각해보면 무대예술 쪽은 돈과 관련된 유혹은 아니지만 여성과 관계된 유혹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분야이다. 대부분의 무대예술가들이 여성이었고, 더구나 미모가 출중한 무용수나 성악가, 연극배우들이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도 무댸예술을 하는 여성들의 유혹이 아주 없었다고 부정하기 어렵다. 애매한 것은 친근감의 표시인지, 유혹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매형의 말을 좌우명처럼 가슴에 새겨두지 않았다면, 그런 유혹에 빠질 우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행히도 매형의 “유혹이 많은 곳엔 가지말라”는 당부가 계속 견제구를 넣어주었고, 공무원으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하여 총고를 아끼지 않았던 아내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내가 예술가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늘 공무원의 직분에 충실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