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재희가 미국에 와서 1년 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초등학교가 5년제여서 한국에서는 3학년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3학년으로 편입하여 1년간 다니고 졸업하게 된 것인데, 영어 한자도 모르고 와서는 개근상, 체육상, 미술상, 우등상(전 과목 중 B가 하나이고 나머지는 모두 A학점인 경우) 등 네 개의 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재희는 졸업을 했고 충희는 여름방학이 되어서 다음 여행은 북쪽 나이아가라로 준비했다.
1994년 7월 24일 금요일 새벽,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출발하여 웨스트 버지니아와 펜실버니아를 지나 뉴욕주로 들어가 밤 8시 30분경에 나이아가라폭포까지 가서 Day Inn에서 숙박을 했다. 마침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와 인사를 하다 보니, 경영학과 김영재 교수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이아가라강의 토기성과 물을 구경하고 산책을 하며 새벽공기를 마셨다. 10시 경 첫 관광선을 타고서 나이아가라 폭포 밑까지 유람을 하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맛보았다.
나이아가라강의 다리를 건너 캐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북상하여 천개의 섬으로 가는 도중, 토론토 시내 고가도로의 1차선을 타고 가다가 그만 좌회전을 하게 되어 길을 잃고 말았다. 가스 스테이션에 가서 미국보다 비싼 기름을 넣고, 캐나다여행은 포기하고 다시 나이아가라로 와서 캐나다 쪽을 구경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버팔로에 있는 홀리데이 인에서 70달러를 주고 하루를 묵었다.
그 다음날 코넬대학에 있는 이태카를 찾아가니 홀리데이 인의 숙박비가 90달러로 너무 비싸서 코넬대학 호텔로 가니, 여기서는 200달러를 내라고 하였다. 놀라서 사양하고 싼 곳을 물어 캠퍼스 구내 동쪽에 있는 이스트 플라자(East Plaza)의 웨스트 베스트 인에서 75달러를 주고 숙박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대학 식물원을 찾아가 구경하고 안내센터에서 조경설계에 관한 책 두 권과 해시계 1점을 사고, 구내 서점으로 가서는 도시생태학 책 한 권과 기념으로 코넬대학 로고가 들어있는 컵을 한개 샀다. 오후에 Inn에 돌아와서 TV를 켜니까, 보스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과 독일의 축구시합이 한창이라 신나게 보았다. 결국 3 : 2로 패했지만, 슈팅과 전력 면은 우리가 훨씬 우세한 편이었다.
코넬대학은 내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유학을 꿈꾸던 곳이고 또한 초빙교수로 오고 싶어 했던지라, 대학 구석구석을 걸어서 살펴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병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이곳 코넬대학으로 유학 왔더라면 나의 장래를 훨씬 빨리 보장되었을 터였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경사진 구릉에 자리 잡은 캠퍼스는 아름다웠고, 더욱이 건물들은 모두가 훌륭한 설계의 작품들이었다. 캠퍼스로 들어갈 때 수위를 만났는데, 그는 미 해병대 출신이어서 나의 차에 붙인 미 해병대 앵카를 보고는 반갑게 묻기에, 나는 한국 해병대 예비역 중위이고, 월남전에서는 소대장으로 참전했다고 하니, 얼른 차렷 자세를 취하고 경례를 한다. 역시 미 해병대 다운 것을 실감했다.
코넬을 뒤로 하고 보스톤에 있는 하버드대학 식물원을 찾아갔다. 시라큐스, 알버니를 거쳐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보스톤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방문자센터에는, 어제 독일과 한국의 축구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홍보인쇄물리 영문과 한글로 병기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찰스강을 건너 하버드대학 캠퍼스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나와서 한국음식점 <신라>에서 설렁탕으로 식사를 하였다. 마침 여름방학 중이라 한국의 어학연수생들이 여러 명 와있어 반가웠다. 보스톤에는 호텔방값이 워낙 비싸서, 교회로 나와 Days Inn에서 98달러를 주고 보스톤의 밤을 맞이했다.
하버드대학 아놀드수목원은 미국의 식물원 중에서 으뜸으로, 1872년에 설립되었는데 면적은 132ha로 보스톤 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 공원구실을 하고 있었다. 초대 식물원장은 유명한 식물학자 Charles S. Sargnt 교수였다. 이 수목원은 미국에서 조경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Predrick Law Olmsted가 1973년에 계획하여 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놀드수목원을 답사하고 안내센터에서 안내문과 책자를 몇 권 샀다.
하버드를 뒤로 하고 펜실버니아대학 수목원이 있는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가는 길목의 뉴저지에 사는 생질(여동생의 딸)네 집을 방문하려고 뉴욕 맨하탄으로 향하여 가다가 코네티컷주를 거의 다 지날 무렵, 왕복 8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이곳저곳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비탈길에서 속도를 줄이고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미끄러지는 바람에 앞에 서 있는 벤을 받게 되었다. 벤은 범퍼가 높아서, 나의 소나타는 후드가 솟아오르게 되었지만 벤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벤의 차주와 인사를 나누다보니 펜실버니아 주립대 조경과 출신으로, 조경회사에 근무하다가 퇴근하던 중이라고 한다.
내 차는 내가 고칠 것이고, 네 차는 이상이 없으니 가도 좋다고 했더니, 그래도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우겨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니 경찰이 와서 조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알고 보니, 교통경찰의 조서가 있어야 보험처리가 되는 것을 나는 모르고 처음에는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맨하탄에서 허드슨강의 지하도로를 통과하여 뉴저지 휘트리의 생질네 집에 가서 자고, 이튿날 뉴욕관광에 나섰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나드리> 관광회사의 버스로 관광객 일행은 록펠러센터, 차이나타운, 흑인의 할렘거리, 센트럴파크 등을 둘러 본 후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 구경도 하고 102층을 자랑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80층까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맨하탄 전 시가지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여행 7일째 되는 날은 7월 1일이었다. 뉴저지를 떠나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버니아대학을 찾아가서 대학병원에 주차시키고 식물원의 위치를 확인하니, 교외에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기에 명문대학의 캠퍼스를 구경하고 설립자 동상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찍고는 모리스수목원을 찾아갔다. 시골길 숲속이어서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곳 대학 식물원에서는 입장료를 받는데, 어린이는 무료이고 어른은 3달러를 받았다.
모리스수목원은 1932년에 설립하였는데, 13ha의 면적으로 곳곳에 조각물을 설치한 것이 특이했고, 정형식 장미원도 있었다. 주차장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모감주나무(Koelreuteria paniculata)의 노란꽃이 만개하여 우리를 반겨주었다.
열흘 만에 집에 돌아오니 예전에 상지대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가정학과 배정자 교수가 전화를 주어 반가웠다. 어떻게 알고 집에 전화를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쓴 칼럼이 한국일보 워싱턴 판에 실려서 한국일보에 전화해서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매일 집에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유붕자원 방래(有朋自遠 訪來)가 아니라 유붕자원 전화(有朋自遠 電話)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잊었던 친구를 먼 타국에서 쉽게 만나게 되어 기분 좋았다.
8월에 들어서니 귀국날짜가 다가왔다. 조경식물학 니에미에라 교수가 노스 캐롤라이나주립대학 식물원을 꼭 가보라고 권유하기에 다시 여행계획을 세웠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그린스보로를 거쳐 삼각연구 단지인 더햄 차펠힐을 지나 라레이에 도착하여 노스 캐롤라이나주립대학 캠퍼스를 둘러보고 인접해있는 대학식물원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우리나라 산야에 자생하는 으름덩굴(Akebia quinata)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고국손님을 반가이 맞아주는 듯했다.
이 식물원은 화초육종연구가 대단한 것이 특징이었다. 식물원의 잔디밭길을 따라 답사하다보니, 두 미인 처녀가 식물도감을 펼쳐들고 보고 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책을 좀 보자고 요청하여 보았더니, 과연 괜찮은 책이었다. 책 제목이 <Landscape Plants of the Southeast> 5판으로 1989년도 출간인데, 1971년도에 초판 인쇄된 것이었다.
차머리를 대서양 해안 쪽으로 돌려서 버지니아 서폭이라는 작은 마을에 가서 Comfort Inn에서 50달러를 주고 숙박을 하고 이른 아침에 버지니아 비치로 가서 미국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하는 체사피크만의 다리를 10달러를 내고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건너올 때는 공짜로 왔다. 버지니아 비치의 모래사장은 걸어만 보고 월리암스버그로 가서 구경했다.
이곳은 1600년대 미국 이민자들이 최초 정착한 사적지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지로 만든 곳이었다. 입장료는 어른 24달러, 어린이는17달러씩이아 받았다. 충희가 봄에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온 곳이었다. 하루를 더 묵고 명문대학 월리암 앤 마리대학을 구경할까 말까 하다가 돈이 모자라는 듯해서 포기하고, 버지니아 수도 리치먼드를 거쳐 귀가하니 한밤중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