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1956년이면 두 번째 임기를 마치게 될 이 대통령은 세 번째 임기에도 유임하기를 바랐다. 거기에는 본인의 의사도 있었겠으나 측근에서 세도를 부리던 사람들이 세력 연장을 위해 대통령을 부추긴 면도 있었다. 측근들은 인의 장막을 쳐 교묘하게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 국내 정세를 그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일만을 보고 했다.
당시 헌법으로는 대통령의 3선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1954년 11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론도 개헌 반대가 우세했고 국회의원들도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11월 29일 열린 국회에서는 개헌안이 일단 부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2일 후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대통령의 3차 출마가 가능해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헌법개정안은 투표의원 수 203명 중 135명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통과에 필요한 3분의 2에 0.333 부족했기 때문에 부결되었던 것인데, 이 결과에 불만을 품은 자유당과 정부가 4사5입을 하면 된다는 억지 이론을 펴 통과를 선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젊어서부터 투쟁해온 애국자였다. 집권 후에도 그의 나라 생각은 남달리 각별했다. 그러나 집권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자기 아니면 나라를 이끌 사람이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국민들은 해방 후 잃어버린 국권을 찾았을 때 대한민국 건국을 감격의 눈물로 맞았고 이 대통령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그가 정권을 잡은 뒤 여당인 자유당은 이권 독점과 독직수회 중상무략을 자행하여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민들은 차라리 이북정권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게다가 6.25를 당하면서 정부는 서울 함락을 시민에게 알리지 않은 채 자기들만 후퇴하여 심각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만일 김일성 정권이 이남에 와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선정을 폈다면 심정적으로 이북에 공명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 대통령보다 100배나 더 하게 국민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총선거 시기가 다가오자 이승만 정권에 실망한 국민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들고 나온 신익희 대통령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신익희 씨는 불행하게도 열차 안에서 갑자기 별세하고 말았다.
결국 이승만 후보가 세 번째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사회는 그럭저럭 평온을 되찾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언론의 정부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언론탄압이 심화되고 기자들이 구속되는가 하면 당시 야당 신문이던 경향신문이 폐간 당했다. 사람들은 주춤하여 입조심 몸조심을 하기 시작하였으나 깊은 반감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 대통령은 정유산업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1958년 6월 11일 이 대통령은 당시 상공부장관 김일환(金一煥) 씨를 시켜 정유공장 건설추진위원회를 발족하게 했다. 남궁련(南宮鍊), 김보연, 박정관, 이홍집, 임봉순, 장기영, 고재붕(高在鳳) 씨가 위원이고 나는 사무국장으로 임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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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화학공업 공장 시찰을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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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들은 사회명사들이기는 했으나 실제로 정유산업에 대한 지식은 희박하여 실무는 결국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남대문 5가 1번지에 전엔지니어링 사무실을 옮겨 본격적으로 정유공장 일을 시작했다.
6월 16일과 7월 16일에 두 번에 걸쳐 정유공장추진위원회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동안의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구상을 이야기 했다. 1959년에 열린 위원회에는 밴 플리트 장군과 미국의 랄프 엠 파슨즈(Ralph M. Parsons) 회사의 임원들이 출석했다. 이 대통령도 그 자리에 나와 회의 진행을 지켜보았다.
당시 울산의 조선석유 공장시설과 울산 앞바다의 사용권은 코스코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정유공장을 세우려면 코스코가 사용하고 있는 조선석유의 부지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밴 플리트 장군을 불렀고, 장군이 불러온 파슨즈 회사는 앞서 장군의 위촉을 받아 부사장을 한국에 보내 실태를 조사하게 한 바 있었다.
미국의 배저(Badger) 회사에서는 부사장 브로디(A. C. Brody) 씨를 파견하여 계약조건을 제시해왔다. 그 안에 의하면 총 1,300달러의 예산 중 500만 달러는 정부 보유 달러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차관으로 메우기로 하고, 건설을 발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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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화학공업 공장 시찰을 안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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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월 22일에 열린 위원회에서는 공장 규모를 일간 2만 배럴로 정하고 공장후보지를 울산으로 책정했다. 1960년 3월 나는 배저 회사와 울산공장 건설계약을 맺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이 대통령은 4월 초에 사업계획을 승인하고 정부보유의 외환 중 500만 달러를 불하하는 허가를 내렸다.
이 일을 주선했던 자유당의 박용익(朴容益) 씨는 정부 보유 달러 500만 달러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올라간 환율과 오르기 전 환율과의 차액에서 생긴 돈을 정치자금으로 내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에 따라 정유공장건설추진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인 남궁련 씨는 7억 5,000만 원을 갖다 냈다. 그러나 곧 이어 4.19가 일어나자 이 대통령은 하야하고 정유산업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남궁련 씨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속당하게 되었다.
4.19는 정부의 실정이 쌓이고 쌓인 끝에 국민의 울분이 터져 나온 결과였다.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거센 것이어서 학생, 시민, 남녀노소의 데모 대열이 경무대를 향해 몰려갔다. 그 기세에 당황한 경비대가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태가 발생했다. 발포는 사태를 진압하는 대신 더욱 악화시켰고 결국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부통령이던 이기붕 씨는 가족과 함께 자살하여 자유당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대통령이 하야 한 뒤 허정(許政) 씨가 과도정부의 수반 겸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아 민주당 정권시대가 열렸다. 그 해 4월에 민의원 참의원은 합동회의를 열어 윤보선 씨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총리에는 장면(張勉) 씨가 지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