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부부와의 소중한 인연
박정수 장관과 나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선후배의 정을 나누었던 각별한 사이였다. 부산 피난시절이었던 1951년 연세대에 입학한 박 선배와 고등학생이였던 나는 SCC (Student Cultural Club)라는 친목모임에서 자주 만나며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미국유학시절엔 워싱턴에 들를 때마다 학생회장이었던 박 선배의 따뜻한 대접을 받았고, 60년대 말 귀국 후에는 정치학회를 비롯한 공식모임에서 그리고 일찍 정부에 들어간 박 장관이 주최한 오붓한 자리에서 자주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1998년 초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초대 외무장관에 취임한 박 선배는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싶어 우리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박 장관은 뜻하지 않게 나에게 주미 대사직을 맡으라고 선배의 권위까지 붙여서 강권하였다. 당을 달리하고 선거에서도 여야로 갈라섰던 내가 새 정부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여러 번 사양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과 그의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조 등의 논리로 설득하는 박 선배의 결정을 결국 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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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홍구 전 총리 [사진출처 : 한반도선진화재단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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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박사가 비교적 단명으로 외무장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지만, 정치의 세계에선 감내할 수밖에 없는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선배가 너무도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사건이었다.
박 형은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덕목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첫째로 덕과 양심을 아끼고 사회생활에서 이를 실천한 훌륭한 인간이었으며, 둘째로 학문과 경험으로 세상을 넓게 보는 지성인이었으며, 셋째로 세계화 시대에 걸 맞는 국제적 비전을 지닌 지도자였다. 바로 그러한 당대의 인물을 졸지에 잃게 된 국가적 운명을 서러워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박정수 박사의 리더십이 아쉬워진다. 그는 홀연히 현장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푸근한 미소와 모두를 껴안는 자세는 오랫동안 우리의 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로 남을 것이다.
박 장관 내외분의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 미망인 이범준 교수의 회고록이 출간되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전설적인 부부와의 소중했던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고, 우리 국민은 그들을 오래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출판에 즈음하여
이홍구 전 총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