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몽골 방문과 미·일·중 외교 정지작업 (96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몽골 공식방문

그이는 몽골 아마르자르갈 외무장관의 초청으로 7월 9일-11일 몽골을 공식 방문했다. 양국 외무장관회담, 바가반디 (Bagabandi) 대통령, 엘벡도리 (Elbegdorj) 총리 예방, 지·상사 및 교민대표와의 간담회 등 전형적인 공식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특히 몽골 대통령과 총리는 그 전에 IPU 총회에서 자주 만난 사이여서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IPU총회에서 늘 친한파였던 바가반디의원은 몽골이 민주화되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그이가 장관 재임 시 바가반디 대통령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우리나라 공항에 잠시 머물게 되었을 때 서강대학교에 다니는 그의 딸을 비행장으로 데리고 가서 잠시라도 만나게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무척 고마워했다. 바가반디 대통령 내외야말로 비단같이 고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이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우리내외는 그들과의 친분을 계속 유지했다.

이 기간에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우리의 개발 경험을 접목하는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시베리아-한국 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두만강 개발계획 등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간 협력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며 우리기업의 몽골 사회 간접 자본 건설 계획 참여 확대를 요청 했다. 또한 형사 사법 공조 조약과 범죄인도조약 체결 추진을 위한 실무 교섭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이는 교민들과 간담회도 가졌는데 6년 만에 찾은 고국의 장관이 반가웠는지 예정보다 1시간이나 더 길어졌다. 그곳에는 왕년의 미녀 탁구 선수인 양영자 씨가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교포사업가 한 사람은 한국에서 수입한 원단으로 의류 제품을 만들어 97년 한해 1 천만 달러를 미국 등에 수출하는 등 교포들의 활약상이 대단하다고 한다. 몽골 정부 국장급 이상은 대부분 엑셀, 쏘나타를 타고 바가반디 대통령 경호차 중에도 엑셀, 쏘나타가 있다고 했다.

중국 공식방문

몽골에 이어 당가쉬엔(唐家璇)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7월 11-14 일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이가 중국을 다녀와서 옷을 벗으며 앉기도 전에 “이번에 우리의 오래된 숙원이 풀리게 되어 기분이 좋다”는 말을 했다. 92년 수교이후 우리 측이 줄곧 요청해온 ‘선양(심양) 총영사관 설치’를 사실상 수용했다는 것이다. 조선족이 밀집해있고 북한과 인접한 곳이어서, 그동안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총영사관 직전 단계인 한국대사관 분관 설치를 우선 허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탕가쉬엔 중국 외교부장도 ‘중국정부로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지금은 총영사관으로 승격이 되었다. 따라서 선양 총영사관 개설로 인해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지린성 등 동북 3성에 진출한 상사원과 여행객들의 각종 영사편의가 제고되었다고 들었다.

그동안 한·중은 ‘북한 변수’를 고려해서 공개화나 문서화를 꺼려 왔으나 이번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중국의 한국과의 관계 강화의 의지가 엿보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 예로서 앞서 언급한 선양 총영사관 개설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점, 충칭(重慶) 광복군사령부 청사복원 문제에 적극적인 협조의사를 표명한 점, 장쩌민(江澤民)을 예방한 자리에서 “아세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절대 없을 것임을 강조한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 장쩌민 중국 주석과의 대담 (1999.)

이와 같은 중국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는 ‘북한 변수를 뛰어넘어 양국 간의 정치적 관계를 앞으로 공식화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7월 하순 양국 간의 어업회담 그리고 8월 중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확정을 위한 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하고 복수사증 협정에도 가서명하게 되어 앞으로 양국 기업인간 교류 등 인적교류와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국 외무장관은 또 그 해 11월 김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이 ‘21세기를 향한 선린우호 협력관계’를 공동 선언하기로 합의했다. 그 밖에 중국과의 수교 이후 인적교류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국내 범죄인들의 새로운 도피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한 조속히 양국 간 범인 인도 조약 체결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미·일·중 외교 정지작업

미, 일, 중과의 대통령 연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 위한 정지작업을 그이는 성공리에 끝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외환 위기의 불을 끄는데 성공했으며  중국으로부터는 위안(元)화 평가 문제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언론도 새 정부가 실사구시 외교와 세일즈 외교를 구호로 내걸고 경제위기 극복과 한반도 평화기반 구축에 기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세 강국 외무장관과의 관계가 기대 이상으로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올브라이트 장관은 그이와 대학 동문이라는 점도 있지만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장관이라며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이 또한 우리 측의 사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쉽게 수긍하는 올브라이트 장관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첫 이름을 부르게 되었고 농담도 곧잘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일본의 오부찌 외상 내외도 그렇게 점잖을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성품이라 퍽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의원시절 IPU 총회에서 여러 번 만나 교분이 있었고 대화가 잘 되는 사이라서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는데, 총리로 발탁이 되고 이어서 불행하게도 세상을 뜨게 되어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중국의 당가쉬엔 외교부장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나 오부찌 외상과는 달리 엄격한 표정을 짓는 편이지만 교양 있고 대화하는데 거부감을 주는 상대는 아니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이는 러시아와의 외무장관 회담 결과로 인하여 외교부 개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무리한 ‘정보요원 맞추방 사건’에 휘말리지만 않았더라면, 충분히 4강 외무장관과의 공식적인 관계 외 플러스 알파를 훌륭하게 소화해 낼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국익에 상당한 보탬이 될 수 있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감정만 남는다.

 
  한·미 정상회담과 ‘허세 장관’ (95회)
  한·러 갈등의 시초 (97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