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식방문 (94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5월22일, 2박 3일간의 일본 공식방문차 그이가 동경으로 떠났다. 남편 없는 공관에서 늦게 조찬을 하고 정원에 있는 흰색 철책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장미꽃 향기에 취했고 온통 푸르름 속에 울긋불긋 철쭉꽃이 어우러져 정말 지상의 낙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나 본 아름다운 정원이 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주변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다시 내 머리에는 일본에 간 남편 생각으로 가득 찼다. 불안했다. 천황호칭으로 홍역을 치른 후이고, 워낙 양국 간 현안 하나하나가 민감하고 폭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 무슨 해프닝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다행히 4개 주요일간지 기자들이 수행했는데 연일 사진과 함께 우호적인 기사가 실려서 마음이 놓였다. 천황 호칭으로 야당으로부터 물러가라는 공세까지 받아서인지 3일간 일본으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비서관으로부터 들었다.

하시모토 총리는 물론, 5개 부처 장관과 나카소네 전 총리 등 8명의 대표적 정치인들과 면담도 가졌다. 오부찌 외상 부부와는 IPU총회에서 만난 이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여서 일하기가 편했다고 한다. 떠나는 토요일 점심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스케줄에 따라 바쁜 일정을 마쳤더니 수행한 보좌관들이 “박 장관님을 따라 다니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IMF 시기의 장관답게 또한 '외무장관이 아니라 외교통상부 장관답게 방일 일정의 한 축을 통상접촉에 할애' 함으로써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마쓰나가 히카루(松永光) 대장대신, 호리우치 미쓰오(堀內光雄) 통신대신을 만나서 일본이 16조 엔에 달하는 내수경기 종합대책을 세운 것은 아시아 각국의 대일 수출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의 외환위기 극복을 계속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도요다 쇼이찌로 (豊田章一郞) 경단련 회장도 예방하고 한국의 투자 환경 개선노력을 설명했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외무장관이 일본 통상대신과 파트너가 된 것이 곧 세일즈 외교” 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통상대신은 한국에 대해 고자세이며 잘 만나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일간의 무역역조는 한국문제라고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이와의 대담에서 자기는 그동안 한 번도 방한한 적이 없으나 7월 선거가 끝나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그의 방한을 챙겨야겠다고 한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외통부를 물러나야 했다. 이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하시모토 유타로 일본 총리, 김석규 주일 대사와

외교부 기록에 따르면 그의 일본 방문을 통해서 21세기를 앞둔 한․일 간의 새로운 협력관계 구축 방안이 논의되고 그해 가을 대통령의 국빈 방일 추진 계획이 협의되었다. 또 어업문제, 과거사 문제, 경제와 안보협력등 양국 간 현안에 관해 심도있는 논의를 했으며 대 북한 문제 등 한반도 정세와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유익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
 
       
▲ 조선일보 (1998. 5.14.)        
그때 그때 일어나는 사건에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해 오던 그동안의 대일 소방외교를 지양하고 커다란 전략적 틀을 사전에 만들어서 그 속에서 개별사안을 협상하겠다는 외교계획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양국 외무장관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하기로 합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양국관계가 답보상태에 있었으나 그이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신 한일관계'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언론보도를 읽고 무척 기뻤다. 내 남편이 그 어려운 한일관계를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란 늘 '주고 받기 (give and take)' 즉, 양측이 다 얻는 '논 제로섬 게임'이라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유독 대일 외교에서는 양보는 금기시되어 왔고 여차하면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위정자들도 우리가 얻기 위해 필요한 양보라도 시도하기를 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이미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 허용 방침을 밝힌데 이어 군 위안부 보상 문제에서도 한국정부가 우선 배상하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시행에 옮겼다.
 
모 신문 사설에서는 '박 장관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천황의 호칭을 사용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논평한 적이 있다.

어업 협정 분쟁에 대해서는 일본 측의 일방적 협정파기선언에 맞서 우리 어민들의 규제 수역 내 조업을 허용했던 조치를 본래대로 환원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본어민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아량을 베푼데 대해 언론에서는 '장군 멍군식의 한일 외교 분쟁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담한 양보로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했다.

일본을 떠나는 날 일본의 각 신문사 정치부장들이 꼭 점심을 대접해야 하겠다고 해서 그들과의 만남이 마지막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관으로 초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토론시간을 가진 후 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모임을 자주 갖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떠나는 날인데다 토요일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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