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란 ‘논 제로섬 게임’이라야 (93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런던 ASEM 정상회의 수행

김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에 4월에 개최된 런던 ASEM(Asia. Europe Meeting; 아시아 유럽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그이도 수행했다. 그이는 대통령을 처음으로 가까이 모시는 기회를 가졌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세일스 외교의 장으로 활용했고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성명서 내용의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정정할 것이 있으면 밤에도 장관을 불러서 시정할 정도로 꼼꼼히 챙겼다고 들었다. 최근에 김 대통령께서 “박장관이 런던 ASEM에서 투자유치를 위해서 일 많이 했어요”라고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외교무대에서 다른 강대국가 정상들에 비해 꿀림 없는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는 말도 했다. 일정이 없는 날 대통령 내외분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강원용 목사님을 중심으로 기독학생 운동하던 50년대 젊은 시절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한다.

그이는 제 2차 ASEM 정상회의에서 김 대통령이 IMF 구제금융 수혜이후 실추된 대외 신인도를 높이고, 유럽의 대한 투자유치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 큰 성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고 흐뭇해했다.

김 대통령이 제안한 고위급 기업인 투자사절단 (high level business mission)파견안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아시아ㆍ유럽 비전그룹도 한국제안으로 공식출범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이홍구 전 총리가 맡아온 한국대표의 후임으로 사공일 박사가 선정되었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한

올브라이트(Madelene Albright) 미국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5월 1일 장관공관에서 한ㆍ미 참모들과 현안에 대한 외무회담을 가졌다. 나는 학교 강의가 있어서 부재중이었는데, 공관정원을 거닐며 한ㆍ미 양국 장관이 담소를 나눈 모양이다. 다음날 조선일보 1면에 정원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크게 실려서 알게 되었다. 그이는 Albright장관과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 외교대학교 동문이라는 점에서 접근이 쉬웠다고 했다.
 
▲ 한미 외무장관 회담 / 외무장관 공관에서절
 
회담 내용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배석한 이홍구 대사와 남편을 통해서 들은바 있다. 원래 올브라이트 장관은 대북 중유비용의 분담을 요청하려는 속셈으로 방한한 것 같다는 것이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비용 분담의 필요성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후  “please don't say no(제발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그이를 향해 여성장관답게 애교있는 호소를 했다고 한다.

그이는 “미국 측의 설명을 잘 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IMF 이후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임 YS정부가 약속한 대북 경수로지원을 이행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중유비용까지 분담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경수로지원도 중단하라는 주장이 재기될 수도 있다” 대충 그런 내용으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결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중유비 분담은 힘들다고 판단하고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무성의 Chuck Kartman에 의하면 올브라이트 장관이 “I have a good friend in the Korean governmen (나는 한국정부에 좋은 친구가 있다)”라고 하며 “중유비용을 한국이 분담할 수 없으면 미 의회를 설득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998. 5.2.)
 
그 후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DJ 영향력을 활용하여 미 의회에 대해 한ㆍ미 양국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달라는 언급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이가 국회의원 사절단을 두 팀으로 나눠, 홍순영 대사와 박건우 대사도 각각 포함시키겠다는 구상을 해서 대통령의 재가도 받았으나, 미국이 예산전용을 통해 중유를 확보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다.

또한 외무회담에서 4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한다는데 두 장관이 합의를 했다. 그리고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투자단 파견을 요청한 우리 측 제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 후 실제로 투자단이 한국에 대거 방문한 것으로 안다.

그이가 IMF 이후 유학생들이 부모들의 경제난으로 송금이 끊기자 한국으로 되돌아오는데 대해 가슴 아파해 오던 중 그 문제를 외무장관 회담에서 제기했다고 한다. 한국유학생들이 계속 수학할 수 있게 미국 측에서 장학금을 마련해 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었는데 이것 또한 미국정부가 실천에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올브라이트 장관은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붙이고 간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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