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부인으로서의 역할과 내조 (91회)
  제12장 정권교체와 국민의 정부에서

내가 있을 때 사단법인체인 외교부 부인회 정관도 개정했다. 부인회에서󰡐외교등󰡑이라는 잡지도 발간해 왔는데 외교관 부인들의 해외경험이 다양해서 그 어느 잡지보다 우수한 내용으로 제작되어 왔다. 나도 좋은 잡지가 되도록 목차부터 시작해서 내용 전체에 대해 관여를 했고, 나의 권두언 원고도 제출한 상태에서 정의용 통상부 차석 부인과 상의해서 인쇄소로 넘겼다. 그리고 마닐라 회의에 참석하는 남편을 따라 떠났다.

그런데 불행히도 8월 초에 귀국하자 우리는 곧 외교부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외교등>은 일단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를 했고 나의 권두언이 이미 들어간 상태인 만큼 그대로 발간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나온 책을 보니 새 장관 부인의 권두언으로 바뀌어 있었다.

<외교등>의 권두언만 봐서는 내가 장관 부인이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게 된다는 것이 유감스러웠다. 신임 장관부인이 굳이 자기의 권두언으로 바꾸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윗분에게 잘 보이고 싶은 한 공무원 부인의 아부성 건의 때문에 오히려 그 분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고 본다.

남편선거를 다섯 번 치르면서 지역구민들에게 한 표를 구걸하는 지역구 의원 ‘마누라’ (지역구에서는 나를 “박정수 마누라”라고 불렀다.) 의 입장인 만큼 늘 허리를 굽히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관 부인으로 신분이 바뀐 후 공무원 부인들이 내 앞에서 지나치게 겸손한 행동을 보일 때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비판적인 언론

한남동 장관 공관에 입주해서 공관을 떠날 때까지 나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외무부 정책자문위원장도 지냈고 국제정치학 교수일 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외무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언론에 나오는 외교부 기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밤 나오는 가판 신문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사실이 왜곡된 기사가 나올 때면 외교부 대변인실에서 교정해달라는 부탁도 하는 것 같았고, 한번은 모 신문기사가 사실과 너무 달라서 그이가 직접 전화로 설명하는 것도 들었다. 상대방이 “우리 신문은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실어야 독자를 끌 수 있다”는 노골적인 답변에 아연실색하던 남편의 모습도 보았다.
 
▲ 박정수 장관의 인터뷰 기사 / 동아일보 (1998. 4.29.)

그이가 국회의원을 겸직한 장관이어서 국회의원 회관에서는 보좌관과 비서진이 국회업무를 챙기고 있었다. 다년간 그이 밑에서 일 해온 정민자 보좌관이 “박 의원님께서 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꾼 후부터 언론이 매사에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해요. 그전에는 얼마나 박 의원님에 대해서 언론이 호의적이었어요?” 라며 걱정을 하는 것이다. 얼마 후 자기가 어느 기자에게 그런 불평을 했더니 “박 의원이 국민회의로 간데 대해 많은 기자들이 실망을 했다”며 특히 허주 지지 기자들의 반감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는 것이다.

작은 사건도 침소봉대해서 기사화되는 신문을 읽기가 겁이 났다. 물론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는 법인데 신문기사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운 것이 바보스럽게 여겨진다.

장관 취임 후에 처음으로 가진 공관장회의에서 그이가 “골프는 외국사람들과 치고 포커게임 같은 도박은 하지 말고…”등의 부탁을 했다며 외교관을 초등학생 취급하지 말라는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다. 나도 남편에게 “왜 그런 유치한 훈시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이는 “안기부에서 작성하고 청와대를 거쳐서 내려온 사항이지만 맞는 말이어서 포함시켰는데 골프를 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평소의 그이답지 않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이의 후임자는 공관장 회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외교관의 세 가지 금기사항을 “golfing, partying, gift giving”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외교관이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사항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며 모두󰡐넌센스󰡑라고 하는 내부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언론도 사람을 봐가면서 문제를 삼는 것 같아서 신세타령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이 장관이 된 후부터 나의 밤 기도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통일부와의 갈등 

통일부와의 엉뚱한 마찰이 생겼다. 임동원 청와대 수석이 “장관 취임사에 4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할 것임을 말씀하세요”라고 한 말을 나도 들었다. 본인도 그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취임사에서 언급을 한 것 같다. 그런데 통일부 대변인이 각 언론사에 반박 유인물을 돌리며 두 부처 간의 갈등으로 비쳐도 할 수 없다는 등 확인도 하지 않고 막 나가는 말을 했다.

강인덕 통일부 장관이 자기가 지시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명하고 흐지부지 된 사건이지만 과연 일개 대변인이 장관 지시 없이 외교부에 직접 문의할 수 있는 내용을 언론사에 유인물로 뿌릴 수가 있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뿐 아니라 정신대 문제로 그이가 정대협 간부들을 수차례 만나서 합의한 사항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더니,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상대측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또 북한대표가 제네바에서 한 말을 인용했더니 북한대표도 오리발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차례 겪는 것을 곁에서 보고 차라리 벙어리 장관이 낫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는 사실로 증명이 되었지만 그 전에 모 신문은 논설위원이 나서서 그이게 대한 인신공격성 글을 쓰는데 열을 올렸다. 외교부장관이 그 분에게 글 소재를 여러 번 제공한 공로가 있다고나 할까.

 
  남편의 외무부장관 입각 (90회)
  대사 임명과 천황호칭 (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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