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을 마치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자격지심이 든다. 또 우리 부부를 다 아는 사람들 모임에 가면 내 존재가 왜 그리도 초라하고 왜소해지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남편이라는 보호막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어서 내가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혼자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영국의 철의 여인, 대처 수상도 남편과의 사별 후 비참한 나날을 보낸다는 기사를 읽었다. 철의 여인도 남편의 빈자리를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그이가 내 곁에 있을 때는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부부가 손잡고 걷는 것을 보아도,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모두 부럽기만 하다.
그이가 떠나고 1년 동안 매 주일마다 경동교회 뒷좌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찬송가도 부르지 못하고 예배가 끝나면 살짝 빠져 나와야 했다.
도대체 왜 찬송가를 부를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릴까? 딸을 살려달라고, 남편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드렸다. 그 간절한 나의 기도는 모두 허사가 되었다. 소중한 남편과 딸을 모두 데려가신 무정하신 하나님,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요즘 기도 내용은 이렇게 달라졌다.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혈압 약을 먹게 되었고 안과를 찾게 되었다. 여자들은 보통 남편보다 자식들에게 목숨을 건다. 자식들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부부밖에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으나 그 의미를 모르고 지내왔다.
그이가 가고 없는 지금 그 말의 의미를 절감한다. 밥을 먹다가도, 옷을 입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남들과 담소를 하다가도, 회의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눈에 이슬이 맺힌다.
생전에 그이가 찬송가 349장의 가사가 좋다고 해서 서툰 솜씨로 피아노를 쳤더니 옆에 와서 “안 좋아? 나는 좋은데...” 하던 그의 표정이, 피아노 앞을 지날 때면 한 번도 빠짐없이 꼭 떠오른다. 그이도 하늘나라에서 내가 이렇게 그리워하고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라 이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나까지 잊어버린 건 아닐까?
남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말한다. 아무리 잉꼬부부라 해도 싸울 때도 있었고, 서로에게 상처 줄 때도 있었고, 남편이 미울 때도 있었고, 속상할 때도 있었고, 위기의 고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좋았던 일, 불행했던 일은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되어 버리고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만 생각이 나는 것이다. 갑자기 보고 싶고, 갑자기 만져보고 싶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내가 변해버렸다. 때로는 실성한 것 같이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는데 눈에서는 액체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현상이다. 배우자를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인데 40세에 과부가 된 친정어머니가 혼자 5남매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의례히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사시는 분인 줄만 알고, 그 고통을 한번도 헤아려 드리지 못했으니... 이런 불효 자식이 없을 것이다.
그이 생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이제 생각하니 그이는 자상하고 나를 무척 배려하고 아껴준 남편이었다. 친구들과의 외식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꼭 그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럴 때면 물론 기분도 좋고 고마웠다. 남들은 부부만의 여행이나 외식 나들이가 무슨 재미냐고 하지만 우리는 둘만의 시간이 결코 무료하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우리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었다. 언젠가 그이가 화장실에 가다가 친구들을 만났더니 새끼손가락을 보이며 누구냐고 했다며 “당신을 새끼손가락이래.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은 적도 있다.
그이가 지역구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연휴에는 제주도나 부산에 내려갔다. 3-4일간 전혀 무료하지 않은 휴일을 즐겼다. 우리는 취미가 같아서 관광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호텔에 있는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고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방에서 독서나 비디오를 보며 쉬는 것을 즐겼다.
아무리 바빠도 음악회 표가 생기면 꼭 참석했다. 유명한 오페라 공연은 빠지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잊을 수 없는 공연은 영국에 갔을 때 오재희 대사 덕분에 관람한 오페라의 유령이다. 뉴욕에서도 그이와 같이 오페라 관람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작년에 신수정 교수의 모친이 건립하신 모차르트홀 개관식 음악회에 초대를 받고 참석했다. 그 날 부부동반으로 온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시야가 뿌예지면서 무대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손잡고 앉아서 음악을 즐기던 과거를 회상하느라고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엘 가나 그이와 같이 다니던 추억이 겹겹이 쌓여있어 나를 힘들게 한다. 백화점에 가도, 식당에 가도, 공연장에 가도, 호텔에 가도, 길거리를 걸어도 그이와 지내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디에 가나 부딪치는 추억들과 두 눈에 맺혀지는 이슬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
어디를 가나 둘이서 바라보던 경치와 사물들, 걷던 길, 모두가 슬프고 쓸쓸하게 비쳐진다. 빗소리를 들어도 흐느낌으로 들리고 모든 사물이 슬프게 보인다. 조병화 시인은 “살면서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하리”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란 오히려 잔인한 고문이다.
철 지난 옷마다 호주머니에 구겨진 휴지들이 들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해보니 그이가 발병한 후 몇 년을 눈물을 닦다가 넣어둔 휴지들이었다. 그렇게 눈물이 흔한 내가 어떻게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순서를 지킬 수가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의 일생은 그이가 암 선고를 받은 해, 즉 그이는 67세, 나는 66세 때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부터는 고통과 질곡 속에서의 생애였기 때문이다. 그이나 나나 숨을 쉬어도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이가 가고 없는 이 세상은 오히려 그 시절까지도 그리운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때는 그이나 나나 숨은 쉬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나는 숨조차 쉬기가 힘들다.
그이가 떠난 해에 김수현 씨 작품인 “완전한 사랑”이라는 연속극이 방영되었다. 불치병을 앓는 아내가, 오히려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위로하는 장면은 환자인 그이가 못 견뎌하는 나를 위로하던 일을 상기시켜 한없이 울었다. 죽음을 앞에 둔 그이는 홀로 남게 될 아내에 대한 근심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남편의 사망신고를 마치고 달랑 내 이름 하나뿐인 주민등록등본을 보면서 고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혼자 남게 된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오래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으니 덜 슬프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 역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잔인한 추측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엄마 때문에 억지로 잡수신 것이고 본인은 고통스러웠지만 우리에겐 헤어지는 연습을 할 기회를 주고 가셨다”며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괴로워하는 남편을 오래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고 그래서 더 가엾고 투병기의 고통스런 모습이 내 눈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