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 (100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이 과정에서 ‘이면합의’ ‘국민기만’ ‘거짓말 외교’등의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마닐라에서는 안기부 지시대로 언론 노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청와대와 안기부가 언론에 은근히 재입국 합의내용을 흘리고 있는데 대해 당황한 그는 다음 공식 방문국인 베트남에 도착한 직후 off the record를 전제로 사실대로 기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알려주었다.
 
「러측이 요청해온 아브람킨 참사관 재입국 문제와 관련해서 동인의 기피인물(PNG) 지위에 변동이 없다는 전제하에 가사정리 등 인도적 사유에 의한 단기간의 재입국을 일정한 조건하에서 허용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사항은 양국 정보기관간 협의토록한다..
 
이에 대해 러측은 러시아 상주 우리측 정보담당 직원 수를 증가 조정하는 문제를 호의적으로 검토키로 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앞으로 양국 정보당국간에 협의토록 한바 있다. ( PNG 재입국 관련 국가별 사례는 많다. 미.영. 프.독.스웨덴, 노르웨이 등) 
 
앞으로 있게 될 양국 정보당국간 합의에서 결론이 날 사항이라는 점에서 검토 과제로 남겨놓은 것이다. 따라서 2차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 수용이라는 이면 합의는 없었다는 점을 재차 밝히는 바이다.」
 
실제로 위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면합의는 없었음이 후일 드러났다. 한편 2차 회담을 마친 직후인 7월 30일 국정원은 아브람킨의 재입국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언론에 발표함으로서 관계 부처 간에 합의된 사항을 부정해 버리는 격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런 발표를 한 동기는 무엇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었는지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2차 회담 후 프리마코프 장관이 대외비로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문제는 그렇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했을까? 한국 측이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을 허용했다고 발표함으로서 조성우 참사관의 추방에 대한 한국 측의 맞 추방이 적절한 조치가 아니었음을 대내외에 부각시키고, 이번 문제로 손상된 러시아 외무부의 위신, 체면, 자존심,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프리마코프의 약속 파기는 한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례한 일방적인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러 외무회담에서 보여준 프리마코프의 태도에서 과거의 위상을 의식하고 있는 대국의식이 배합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고, 특히 당시 4자회담에서의 소외되는 등 한국이 자신들을 홀대한다고 섭섭해 하고 있던 처지여서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남편의 분석이었다. 

언론은 ‘프리마코프로 부터 악수를 거절당했다’ ‘한국어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은 것은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굴욕적인 외교’ ‘백기를 들었다’ 등 현지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의 사기를 꺾는 용어만 골라서 기사화 했다. 
 
수차례 악수를 한 후 다음 일정 때문에 프리마코프가 손을 흔들며 나갔는데 마치 악수를 거절당한 것처럼 기사화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도 그이로부터 직접 들었다.

여기에 대해 남편의 메모지에는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맹세할 수 있는 것은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는 달리 나는 프리마코프와의 회담에서 결코 수모를 당하거나 굴욕적인 자세와 태도를 취한 적이 없으며 더구나 백기를 들었다거나 국가의 체통을 훼손시키는 졸렬한 외교를 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고 씌어 있다. 또한 '특히 악수를 거부당한 적도 없고 통역도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다자회담 참가 기간에 양자회담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공용어로 영어 통역을 러측이 사용한데 불과하다.’라고 쓰여 있다.
 
▲ 언론은 한러외교갈등에 있어서 한국 외교에 대해 비판일색이었다 [한겨레신문 1998. 7.30.]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침묵을 지키던 남편이 혼자 메모지에  위의 글을 쓸 때 심정은 얼마나 억울하고 암담했을까?

마닐라회의가 한·러 외무회담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다자간의 회의기간을 활용해서 양자회담을 갖게 된 것이며 그것도 양측이  거의 10개국과의 양자회담이 예정된 상황에서 10명의 통역관을 대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적인 공용어인 영어사용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은 내 생각에는 지엽적인 것이며 오히려 프리마코프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 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있어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었는지 유감스러울 뿐이다.

모 신문 기사에 의하면 (한겨례 신문의 박찬수 기자)안기부의 한 인사가 “우리도 프리마코프가 간단히 물러나지 않고 뭔가 꼬투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미 두 나라 정보기관 간에 합의된 사항을 정면으로 뒤집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고, 이종찬 부장도 이런 우려를 박정수 장관에게 전달하며 “러시아가 거칠게 나오면 당신도 치고 나가라”고 조언했으나 박 장관은 “설마 러시아가 공식회담에서 그렇게 까지야 하겠느냐”고 가볍게 넘겨 버렸다고 쓰여 있는 부분 옆에 고인의 노란색 메모지가 붙어 있다.

그이는 ‘이부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결코 없었고 정보기관 간에 다 합의 타결되었다고만 했음’이라고 쓰여 있다. 이 대목이야말로 내가 산 증인이다. 그가 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마닐라 가는 길에 걱정하는 나에게 “이 부장이 그 문제는 정보당국간에 끝난 일이니 걱정 말라고 했고 상임안보회의를 소집하자고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해 주었다.

같은 기사에서 ‘박 장관은 예정시간 보다 40분이나 길어진 회담 내내 쩔쩔맸다’고 쓴 대목 옆에 붙여있는 그의 노란색 메모지에는 ‘쩔쩔 맸으면 왜 40분이나 회의가 더 길어졌나?  맞대응하느라고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결렬된 것 아닌가!’ 라고 쓰여 있다. 

본래 영어구사력에 문제가 없으며 순발력 있는 나의 남편은 앉는 자세부터 쩔쩔매는 자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누구에게도 쩔쩔매는 타입이 아니다. 아마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보기관의 잘못된 대응책으로 인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로 쓴 표현인지는 몰라도 본인에게는 ‘쩔쩔 맸다’는 표현이 아팠던 모양이다.
 
그이는 베트남과 사전 약속한 공식방문을 마치고 8월 3일 귀국하여 대통령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사의도 같이 표명했다. 그 날 대통령께서는 그이에게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김중권 비서실장으로부터 당분간 국회에 가서 일하라는 통보를 받고 즉시 장관 공관에서 짐을 싸서 다음날 방배동에 있는 우리 아파트로 돌아왔다.
 
며칠 후 김종필 총리가 우리부부에게 원하는 사람과 같이 나오라고 초청해주었다. 신라 중식당에 자민련의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 내외와 같이 참석했다. 김 총리는 대사 문책 선에서 해결할 것을 권유했다고 하면서 전날까지도 문책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입김이 있었는지 장관 인책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며 애석해 하셨다.
 
김 총리는 자기도 늘 당하고 살아왔지만 닉슨 회고록을 읽은 후 참고 살았다며 우리에게도 참으라고 했다. 닉슨은 복수란 자기를 해친 사람이 하나하나 주변에서 제거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라고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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