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외무장관 회담 (99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회의 후 수행한 러시아 실무자들도 프리마코프의 강경자세에 놀랬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리마코프 장관으로 하여금 사전에 조율한 의제를 제쳐놓고 그렇게 강경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는가?

마닐라 회담 직전 안기부 고위인사가 기자간담회 석상에서 비공식으로(off the record)로 프리마코프 장관은 아브람킨 사건을 빌미로 한국의 대러 경제차관을 갚지 않도록 하고 앞으로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끌어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한 발언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서, 프리마코프를 크게 자극한 사실이 현지에서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그에 앞서 기피인물 (PNG)이 되어 추방 당한 조성우 참사관이 귀국시 자기는 “외교관으로서 할 일을 다 했을 뿐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은 없다”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TV에 방영되고  외교부 차관실로 (당시 장관은 중국 공식 방문중 이었음) 직행하여 귀국인사를 하도록 한 국정원 조치를 보면서 프리마코프가 분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러측은 문서에서 그동안의 우리 언론보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밝힌바 있었고 프리마코프가 일일이 보고를 받은 흔적을 볼 수 있었다는 말도 그이로부터 들었다. 경제적으로 원조를 했다고 해서 한국이 강대국인 러시아를 무시한다고 판단하고 자존심이 상한 프리마코프로 하여금 강경하게 나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정보당국의 수장을 지냈으며 외교부 수장으로써 양 부처의 기강확립과 동시에 권력 구축이라는 자국내 정치적 의도도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제 2차 한·러 외무장관 회담

강대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그이는 2차 회담이 개최되는 28일 전에 본국의 관계 기관과 대책을 협의하는 한편 현지에서는 김삼훈 외정실장과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 사이에 수차례 막후 협상을 추진토록 했다.

막후 협상에서 러 측이 “아브람킨의 재입국을 허락하면 주러 한국 정보요원 수도 양국 정보기관에서 협의하고 합의된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으며 앞으로는 정보협력협정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는 전제하에 이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제의를 해왔고 실제로는 아브람킨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도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후 입국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러 측은 그러한 내용을 언론이나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을 제의했고 우리측도 안기부의 대외노출 불가원칙에 따라 동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양국간 현안에 대하여는 9월 외무장관이 러시아 공식 방문시 상호협의토록 했으면 좋겠다고 그들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러 측의 제의를 서울로 알렸고 그 후 보내 온 안기부측의 훈령에 따라 “기피인물(PNG) 지위에 변동이 없다는 전제하에 인도적 차원에서 단순히 개인 신변과 가사정리를 위해 조용하게 최단 시일 간 재입국을 허용할 것을 검토할 수 있으며 이것도 앞으로 정보기관 간 구체적인 협의를 하도록 하자”는 안을 김삼훈 실장을 통해 러측에 통보했다.
 
▲ 2차 한·러 외무장관 회담

이와 같은 기본합의 내용은 비공개로 하자는 러 측의 주문과 안기부 측의 요청에 따라 2차 외무장관회담을 갖게 되었고 프리마코프는 이제 양국 간에는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우호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사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래 예정에 없던 2차 회담이었고 서로 다른 예정된 일정 관계로 협의 시간이 짧아, 정상회담 등 구체적 사안은 그이가 러시아 공식 방문시 협의하기로 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끝났다고 한다.

1차 한·러 외무회담이 결렬되자, 언론은 국내 부처 간 그리고 한·러 간 사전 조율이 되지 못한 점에 초점을 두고 보도를 하게 되었다. 국내 부처 간의 횡적인 사전조율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보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러 간의 사전 조율이 없이 외무회담에 임했다며 외교부가 외교의 ABC 도 모른다고 성토한 모 신문기사는 다분히 악의적이었다고 본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의제 결정도 없이 어떻게 양자 회담을 할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한·러 간의 사전조율은 외교부와 러 측 외무부 간에 의제에 합의했고 문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전조율’이라는 단어는 내부자의 말이라며 누군가가 특정 의도를 갖고 오보를 신문사에 제공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활자화했고 다른 신문들도 그 기사를 릴레이로 받아 썼다며 흥분하는 것을 현지에서 보았다.

신문마다 프리마코프의 돌출 행위를 왜 예상 못했느냐고 외교부를 공격했다. 안기부가 정보원 상호 출국문제는 정보 관계자 간에 다 해결된 문제이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느냐는 것이 외교부의 항변이었다. 의제까지 준비한 러측 외무부 실무진도 1차 회담에서의 프리마코프 장관의 예기치 못한 태도에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외무부 실무 진들도 예상하지 못한 프리마코프의 돌출행위를 한국 측에서 사전에 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먼저 비공개를 요구해놓고 프리마코프가 그 합의를 일방적으로 깼을 뿐 아니라 한국 측의 제안이 아니고 당초 자신이 요구한 내용이 마치 합의된 것처럼 자국 언론에 발표를 한 사실이다. 즉 ‘아브람킨이 재입국해서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체류하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즉각 카라신 차관과 대변인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으나 그것은 단지 ‘국내용’일뿐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였다. 우리 측은 국정원장이 전화와 친서를 통해서 수차에 걸쳐 절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통보가 있었기 때문에 마닐라 현지에서는 사실을 밝히기가 어려워 “정보요원의 활동은 정보 협력 협정의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되 앞으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정보당국 간에 협의하기로 하고 이번 사건은 종결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선에서 대처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은 국가 간의 약속을 헌신짝같이 파기한 프리마코프의 부도덕한 행위를 공격했어야 했다.

 
  안기부와 외교부의 시각차 (9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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