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와 외교부의 시각차 (98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그 후 러시아 측은 아브람킨의 재입국을 안기부 측에 요구했으며 안기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 결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상주 한국 정보요원 중 모스크바 2명, 블라디보스톡 3명을 철수시키고 모스크바와 서울에 상호 2명씩만 상주시키기로 하자고 통보해왔고, 안기부는 그 안을 수락하기로 했으니 나머지 문제는 모두 안기부에 일체 맡겨달라고 외교부에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동안 러시아 쪽보다 우리가 더 많은 수의 정보요원을 파견했었는데 일단 큰 손실을 입게 된 셈이다. 그이가 마닐라로 출발하기 직전 안기부가 정보요원의 숫자를  블라디보스톡에는 최소한 1명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프리마코프 장관에게 제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외교부는 양국 간의 맞추방 사건은 정보요원들 간에 종결되었고 아브람킨의 첩보활동 자료도 충분히 있으며 모든 문제는 안기부에 맡기라고 한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마코프 장관과의 회담은 양국 실무자들 간에 사전에 조율된 의제에 따라 98년 가을 외교부장관의 러시아 공식방문과 99년 초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등이 거론되는 우호적인 회담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가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상황 하에서 누군들 그 막강한 안기부 주장을 믿지 않겠는가!

조성우 참사관 추방사건을 보는 외교부와 안기부의 시각이 처음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외교부는 처음부터 조 참사관의 개인행동임을 지적하고 조 참사관 개인의 활동을 내부적으로 조사한 후 적절히 처리하고 유감 표명하는 선에서 매듭짓자는 입장이었다.
 
아무리 억울하다 해도 수차례 러시아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본인이 모두 시인한 사건이며 조 참사관과 접촉한 러시아 외무부 직원도 간첩죄로 공식 기소된 사건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외교부는 조 참사관 추방사건을 한·러 양국 정보기관간의 “1회성” 트러블로 분석했다.

아무리 탈냉전 후 러시아의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았다고 해도 냉전체제하의 세계 양극체제의 한 축을 이루었던 러시아에 맞대응한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라는 입장이었다. 그이도 실 국장 회의에서 “따질 것은 따지고 국익차원의 필요한 대응조치를 강구하지만 한국과 러시아간의 우호관계를 해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고 간부들도 맞 추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고 한다.

당시 개입한 외교부 간부들에 의하면 아브람킨 참사관 추방결정 과정에서 외교부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관 주재 간부회의에서도 안기부 결정사항을 통지해준데 불과하며 맞대응의 부적절성을 장관에게 건의를  했어도 이미 때는 늦었던 것으로 안다고 회고했다. 아마도 그래서 그이가 안보상임위 소집을 몇 차례 요청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안기부 관계자의 “안기부 일에 대해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고 한 발언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반면에 안기부는 조참사관 추방 과정이 우방국간의 관례를 깨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으며 비엔나 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조 참사관을 억류했고 언론에 이를 공개한 점 등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 동아일보 (1998. 7.7.)

안기부는 러측의 그러한 행동은 ‘대한 전략변경’의 신호탄이며 ‘러시아 정부의 의도적 도발’이라는 거창한 분석을 통해 러시아가 한국 ‘길들이기’ 차원에서 그런 무례함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신동아 기사에 의하면 안기부는 러시아로부터 제공받은 ‘북한에 대한 정보의 질과 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도 외교관 맞추방이라는 강경론에 작용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는 후문이다. “러시아의 강경태도는 대한 차관을 갚지 않고 경제적 이득을 더 얻으려는 속셈이며 대한 무기판매 압박용”이라는 국정원 고위인사의 발언이 불행히도 러시아의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외교부와 안기부의 시각차는 자연히 양 부처의 정세판단과 대응전략 수립에서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외교부가 전통적으로 실세인 안기부 정책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으며 그러한 정책노선으로 인해 빚어진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엉뚱하게 외교부가 몽땅 뒤집어 쓴 어이없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7월 26일 개최된 1차 외무장관회의에서 아브람킨 문제가 제기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프리마코프 장관이 뜻밖에도 회의 벽두부터 아브람킨의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한 정보요원들을 전원 철수시키고 상호간 정보협력을 동결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프리마코프 장관은 그 이유로 ‘조성우는 현행범인데 반해 아브람킨은 추방당할 이유와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유가 있다면 상호공개하자’고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이는 아브람킨에 대한 자료를 안기부로부터 받은바 없었다. 안기부는 아브람킨의 재입국은 절대 불가 방침이었으므로, 회의는 결렬되고 말았다.

프리마코프는 정보책임자로 있으면서 한·러수교를 위해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그동안 한국 정보원들의 무원칙한 행동에 대해 여러 번 엄중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무시하고 정보 협력 협정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가 수장으로 있는 러시아 외무부 고위간부까지 매수하는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여 추방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격한 감정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마닐라로 가기 전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대변인이 “외교관 추방전은 서로 치고 받았으며 … 종결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는 것을 안기부로부터 들은 그 이는 “이 문제는 정보기관 간에 종결된 문제”로 알고 왔다고 응수를 하니까 프리마코프는 오히려 러시아의 양 정보기관(FSB와 SVR)으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전권위임까지 받아왔다며 아브람킨 문제 부터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른 의제 등에 대하여 일체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는 이 문제는 이미 타결된 것으로 알고 왔을 뿐 아니라 우리 정보당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지도 않았으므로 러측 요구는 전혀 뜻밖이며 수용할 수 없다고 맞대응을 하면서 특히 조성우 참사관을 추방시키는 과정은 비엔나 협정이나 국제 관례를 무시한 모욕적인 처사이며, 우방국의 외교관을 2시간이나 억류한 사실 등은 러측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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