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갈등의 시초 (97회)
  제13장 남편의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한국은 지금 과거 진상 규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도 과거 진상을 규명한다는 차원에서 당시의 한·러 외교 갈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남편이 억울하게 장관직에서 떠난 지 1년 반 만에 대장암 선고를 받았기에 그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서 투병 중에 이 문제에 대한 대화는 피했다.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도대체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의 유품에서 '한·러 갈등 자료'라고 쓴 파일에 잡지, 신문기사, 외통부 자료, 대통령께 보낸 보고서 등 방대한 자료와 본인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써놓은 쪽지들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아래 내용은 그이 생전에 단편적으로 들었던 이야기, 당시 개입했던 분들의 이야기, 언론보도와 공문자료, 그리고 그의 메모와 일지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편견없이 학자적 입장에서 정리를 한 것이다.

한·러 갈등은 98년 7월 초 주(駐)러 한국대사관의 조성우 참사관 추방사건에서 발단되었다. 이어서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을 우리가 무리하게 맞 추방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고 그 결과 장관 해임으로 일단락 된 어처구니없는 한국외교 50년사의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1998년 7월 3일 주러 한국대사관의 조성우 참사관(국정원 직원 - 정보부가 안기부로 개명했다가 국민의 정부부터 국정원으로 개칭했으나 흔히 안기부라고 불렀음)은 러시아 외무성의 발렌틴 모이세예프 아주국 부국장 집에서 뇌물을 주고 서류를 받고 나오다가 현행범으로 연행되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서 2시간동안 신문을 받았고, 우리 안기부 직원 입회하에 조 참사관이 순순히 조서를 쓰고 자필 서명을 했다.

보통 현행범이라도 외교관의 경우 ‘면책특권’을 내세워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같은 사실을 이인호 대사에게 전혀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7월 4일 러시아 외무차관으로부터 “조 참사관은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이니 3일 내에 떠나게 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기 불과 50분전까지도 공관장인 이인호 대사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국회 외무위윈으로 있을 때도 그랬고, 남편을 따라서 해외 공관을 방문할 때도 외무부 사람들은 국정원 파견 직원들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저 분은 정보부 사람이지만 아주 인품이 좋아서 공관 분위기가 좋아요” “저기 있는 분이 정보부 사람인데 조심스러워요” 라는 등의 이야기를 외교관 부인들로 부터 많이 들었다. 정보담당 외교관도 공관장 휘하의 직원이다. 그러나 주러 대사관에서는 대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여성 대사’이며 학자출신인 이인호 대사가 과연 공관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임명 초부터 컸다. 마치 대사가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뉘앙스로 쓴 기사도 있었다. 과연 주러 대사관에서만 그런 일이 발생할까? 대사가 남자였다면 그런 사태가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주 러시아 대사로 임명된 이인호 대사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있다 [출처 ; e영상역사관]

예민한 이슈도 있겠지만 과거 무소불위의 정보부 우위시대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국내정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보를 독점하는 부서라도 조직원의 분석과 판단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국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CIA does no wrong" 개념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며 동등한 차원에서 정부 부처 간의 횡적인 의견조정 절차가 가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침 그이가 출근준비를 하는데 국정원장 전화가 왔다. 내가 받아서 전달했다. “간첩활동 증거가 있나? 충분히 있어?”라고 재차 물어보는 남편의 말만 들렸다.  이종찬 안기부장과는 고교선후배이므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말을 놓는 관계이다.

걱정이 되어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주한 러시아 정보원을 맞추방 한다고 해서 물어본 것인데 증거가 충분하다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네”라고만 하고 그이는 출근했다. 그때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는 아세아지역포럼(Asian Regional Forum)과 아세안 외무장관회의 (ASEAN PMC)를 위해 떠나기 전이었다. 러시아와의 외무장관회의에서 그 문제를 의제로 다루게 되는가보다 라고만 막연히 짐작했다.

외무장관회의는 부부동반이라고 해서 나도 가게 되었다. 그이가 안보상임위에서 그 문제를 토론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닐라로 떠나기 전에 그런 모임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더니 양국 정보 관계자들 간에 문제가 종결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상식적으로도 러측 주장에 의하면 조 참사관은 현행범인데 반해 아브람킨 참사관은 94년부터 외무부를 출입하면서 외교활동을 해온 친한파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유품에도 그이가 사후 처리를 협의하기 위한 안보상임위 개최를 안기부에 요청했고, 처음에는 안기부도 동의했으나 다시 주한 러시아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대응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동의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써 있다. 그래서 그이는 또 한 번 안보상임위에서 사후처리 문제에 대해 협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안기부는 시간이 없으니 안기부 차장, 외교부 차관 간에 협의토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이는 다시 아브람킨 참사관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느냐고 물었고 안기부는 증거가 있으며 외교관 추방사건은 양국 정보 당국 간에 일단 마무리를 진만큼 걱정하지 말고  안기부에 맡겨 달라고 해서 결국 외교부는 러시아 대사대리를 불러 아브람킨 참사관의 추방을 통고하기에 이른다.

 
  중국과 몽골 방문과 미·일·중 외교 정지작업 (96회)
  안기부와 외교부의 시각차 (98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