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꺾고 IPU 집행위원 피선 (80회)
  제11장 문민정부의 시국에서

1995년 10월 14일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제 94차 IPU총회에서 그이가 영광스럽게도 135여개국 가운데 13개국으로 구성된 임기 4년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18개국에서 1000여명 대표들이 참석한 총회에서 (국가별 투표수가 결정되어 있음) 190표 가운데 64%인 121표로 중국대표를 압도적으로 꺾었다.

4년 전 IPU 내 아태그룹에서 그이를 집행위원 후보로 지명을 했을 때 평소 가까이 지내온 일본대표 단장인 고미야마 의원이 (임기를 마치기전에 사망) 국내정치 사정상 자기를 먼저 집행위원으로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그 일본 대표는 그러면 4년 후에는 책임지고 그이를 밀어 주겠다고 간곡히 말해 조건부로 양보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몇 번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중국의 전 외무장관 주계정이 출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한국을 우습게 생각하고 IPU 신인이 감히 출마를 강행한 것이다.

IPU총회 의장 선거운동 기간에 발생한 문제가 이집트와의 외교적 파장으로 비화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전해에 IPU총회의장 선거에서 칠레의 수베루카소(Gabriel Valdes Subercaseau) 상원의장과 이집트의 Ahmed Fathi Sorour 하원의장 간에 경합이 붙었다. 외무부가 우리대표단에게 칠레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권유했다.

그 이유는 이집트는 북한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한국과는 수교관계를 망설이던 국가인데 반해 칠레는 6.25전쟁 참전국이며 경제관계를 고려해서도 우리가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집트 후보의 지지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선거결과는 이집트 후보의 당선으로 귀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수교노력은 물론 향후 그이의 IPU 집행위원 출마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정태익 주 이집트 대사로부터 긴급히 연락이 왔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소로 하원의장으로부터 IPU 의장선거에서 한국이 자기를 지지해주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오랜 노력 끝에 겨우 방한초청이 성사된 이집트 최대 일간지 “알 히람” 발행인의 서울행이 즉시 취소되는 등 앞으로의 여파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그이는 그 소식에 “정직이 최상의 길”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이집트 소로 하원의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하원의장 개인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집트는 북한과의 수교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의 수교를 지연하고 있는 반면에 칠레는 6.25전쟁 때 한국을 지원해준 국가라는 점에서 칠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한국정부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또한 소로 의장에게 양국 간의 수교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이가 앞으로 집행위원으로 출마할 계획임을 밝히고 집행위원으로 당선이 되면 소로 의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썼다. 의외로 소로 의장은 즉시 회답을 보냈다. 자기는 박 의원의 솔직성에 감동을 받았노라고 하고 "박 의원이 신의가 있으므로“ 자신을 집행위원회에서 도와줄 것을 믿는다면서 꼭 이집트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1995년 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IPU 총회 참석차 가는 길에 그이는 이집트를 방문해서 소로 하원의장과 면담을 했다. 그 자리에서 소로 의장은 이집트 의회가 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소로의장은 이집트가 1973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 북한의 군사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한국과의 수교를 기피해 왔으나 이제 상황이 달라져서 무바라크 대통령도 한-이집트의 외교관계 수립에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해주었다.

‘비 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 후부터 두 사람 관계가 친근해졌다. 그이가 집행위원이 된 후 IPU 총회 전에 소집되는 집행위원회에서는 두 사람의 팀워크가 잘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끔 남편을 따라 갈 때도 소로의장이 무척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이가 집행위원이 되기까지 1년 이상 외무부와 해외 공관장들의 협조가 컸다. 본인도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불어로 후보소개 책자를 배포하는 등 무척 공을 들였다. 우리대표단으로 참석한 동료 국회의원들도 자기 일같이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총회에 참석한 대표단은 그이를 단장으로 해서 김상현(국민회의), 금진호(민자당), 황의성(민주당), 정영훈(민자당), 정옥순(민자당)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 집행위원에 피선되어 다른 대표들에게 감사인사하는 박정수 의원

IPU 안의 12 plus group(유럽 회원국)에서 정견발표를 했을 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다른 의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이는 무소속 때부터 계속 IPU 회의에 빠지지 않고 26차례 참석했고 여당에 입당한 후부터는 단장으로 17회나 계속 참여를 해왔기 때문에 ‘IPU man’으로 통했다. 가끔 내가 동반해서 가 봐도 다른 국가대표들이 첫 이름 ‘정수’로 부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른 의원들은 나에게 “박 의원은 IPU에 가면 인기가 있는데 특히 외국 여성의원들 사이에 인기가 최고”라며 놀리곤 했다.
 
집행위원회는 IPU의 중추적 운영기관으로서 회원국 가입, 자격정지, 의제결정, 사업과 예산 확정, 결의사항 이행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곳이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국제무대에서 중국을 누르고 얻은 한국 외교의 첫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 하고 싶다.

그때만 해도 전 공산국가인 루마니아에서 장거리 전화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국회 국제기구과를 통해서 남편이 그렇게도 소망하던 집행위원으로 중국대표를 물리치고 당당히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면서도 다음해에 있을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수행했던 국회직원에 의하면 중국대표가 낙선되자 눈물을 흘리며 퇴장했다는 것이다. 

‘IPU man’인 ‘박정수’를 너무 쉽게 보았든지 아니면 한국을 우습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대국적 자만과 오판에서 아태그릅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한 결과 고배를 마신 것이다. IPU는 그이가 근 20년간 공을 쌓아온 곳이다. 항상 나누어 먹기 식으로 대표단을 구성하는 한국 국회와는 달리 다른 국가에서는 IPU 단골 대표들이 많아서 선출직은 주로 그들이 차지한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제회의도 “당신이 작년에 다녀왔으니 금년에는 내가 간다”는 나누어 먹기 식으로, 또 정당별 쿼터를 기준으로 대표단이 구성되니까 어떤 국제기구에서나 계속성과 전문성이 결여되는 폐단이 있다.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하다보면 언어구사능력도 없는 의원들이 말 그대로 외유를 하고 돌아오는 셈이 되는 것이다.

국제회의에 갈 때는 서로 가겠다고 원내총무나 의장을 찾아다니며 운동을 하지만 일단 귀국한 후 상대국가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간담회를 마련하고 의원들을 초대하면 잘 나타나지도 않았다.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은 그이 혼자만 남게 되어서 민망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외국의원들이 올 때면 나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차출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다음은 1995년 10월 16일자 한국일보 이영선 기자의 글이다.

  국제 외교무대 상당한 영향력 확보 / 중국 치밀한 로비공세 막판까지 경합:
 
우리 외교의 취약점 중 하나는 “채널”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정부의 공식외교에만 비중을 두고 민간이나 재계, 국회차원의 교류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다. 국제외교가에서 “한국은 정부 핵심그룹만 설득시키면 그만”이라는 말이 보편화돼 있을 정도다.
 
이런 외교구조에서 민자당의 박정수 의원이 국제의원연맹 (IPU)의 집행위원에 선출된 일은 주목할 만하다. 106년의 역사를 가진 IPU는 회원국 수만 135개국으로 국제무대에서 나름의 “지분”을 갖고 있다. 더욱이 13개국인 집행위원국은 묵직한 발언권을 보장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IPU 집행위원국으로 국제의원 외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동북아의 집행위원 자리를 놓고 경합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에서 국회 관계자들이 전한 내용에 의하면 중국의 치밀한 로비공세로 막판까지 당락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대표단은 “한국이 집행위원국이 됐다는 사실은 총체적인 대외협상력의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평했다.
 
집행위원 선출은 박의원의 개인 입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듯싶다. 국회주변에서는 “박 의원이 국제의원외교의 대표자로 계속 활약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나 지역주민들이 배려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영선> 기자

그이가 귀국하기 전에 이영선 기자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으나 자리에 없었다. 대신 조명구 기자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박 의원은 외국에서는 인기가 있는데 어찌 국내에서는 알아주지 않지요?”라며 “이번이 고비”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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