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업과 지역구 의원의 희로애...

그러던 중 한신공영 간부들을 김천으로 초대하고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사업성이 결여된다고 주저했다는 것이다. 그이는 자기가 분양을 책임지겠다고 하고 서울의 건설회사를 유치해서 끝내 15층짜리 한신아파트가 황금동에 들어서게 되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남편의 모험이 성공한 셈이 되었다.

그 후부터 김천시 여러 곳에서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텔도 한 사업가를 어렵게 설득해서 인가를 받아 한동안 잘 되는 듯 하더니 불행히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이가 지역구 의원직을 내놓은 지 10년이 되는 지금 박팔용 삼선 시장이 김천시를 기대 이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울의 예술의 전당을 방불케 하는 문화예술원, 전국체전을 치를 수 있는 공설운동장, IT시설이 완비된 최신식 시립 도서관, 대규모의 환경 오염처리 시설, 예술작품이 전시된 아름다운 공원의 조성 등 몰라보게 달라진 남편의 고향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이가 이 변화를 목격했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지역구 의원의 희로애락

남편이 지역구출신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나의 시야는 그리 넓지 않았다. 나는 임명제 국회의원도 해보고 교수생활을 하면서 남의 눈을 그리 의식하지 않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남편이 지역구의원이 되면서 나는 자신을 낮추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다섯 번에 걸친 선거운동을 통해서 표를 구걸해야 하는 후보의 안사람으로서 자연히 몸에 밴 자세이다.

선거운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선 도농간의 차이를 피부로 느꼈고 사투리를 쓰는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역시 귀한 체험이었다. 남편이 지역구 의원이 아니었다면 나만의 오만함과 좁은 소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선거운동 기간에 농민들의 민원을 들을 때면 남편의 선거운동을 한다는 원래 목적을 잠시 잊고 그들의 고충을 들으며 안타까워하던 때가 수없이 있었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힘겨운 과정이지만 이제 생각하면 나에게 사람을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였다고 오히려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물론 견디기 힘든 때가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때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남편이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는 그의 얼굴을 볼 시간이 적어졌다. 흔히 “천국구”라고 불리우는 전국구의원과는 달리 거의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기 중에는 주말부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역구는 때로는 “지옥구”라고도 표현한다.

김복동 의원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당선되어 귀경했을 때 부인에게 감회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부인은 “돈 쓰고 허리 꺾어 절하고 욕먹고... 그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참 황당한 일도 겪는다. 예를 들자면 황금동에 있는 개천 복개공사를 오래전에 끝냈는데 바로 그 복개공사한 자리에서 반대파가 “박정수 뭐 해놨노?”라고 마구 헐뜯는 경우 도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바로 우리가 이곳에 설 수 있게 한 복개공사는 누가 했지요?”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열열한 지지자들이 ‘박정수’를 연호하며 진심으로 열광할 때면 표현할 수 없는 희열과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도 들었다. 민원이 한 가지씩 해결될 때마다 남편의 희색 어린 얼굴을 보는 재미도 컸다.

모든 지역구의원들이 다 그렇듯이 그이는 선거구내의 경조사, 주례, 각종 크고 작은 운동회, 각종 기공식과 준공식, 노인대학, 주부대학, 청년회, 신년 하례식, 불교계와 기독교계 행사, 당원 단합대회 등에 참석해서 격려사나, 축사를 해야 하니까 몸이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랄 정도로 뛰었다.

▲ 박정수 의원이 IPU총회에서 중국 후보를 물리치고 집행위원으로 당선된 순간 우리 대표단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거기에 외무위원이어서 해외국정감사, 가장 큰 국제회의인 IPU를 비롯해서 다양한 회의 참석을 위해 해외에도 나가야 했다. 예를 들면 국제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면 쉴 사이도 없이 그 다음날 아침 지역구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일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조찬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건강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다섯 번이나 그 어려운 선거를 치렀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10여년을 지낸 것이 고작이어서 한국의 농촌사정에 어두웠다. 그러나 남편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농촌사정을 알게 되었다. 10대 총선 때만 해도 각 면으로 들어가면 낙후된 부락이 많았다. 그들이 호소하는 농촌문제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남편의 선거운동은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농촌운동가가 된 듯 착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다섯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농촌살림의 점진적인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78년 말 처음으로 김천에 갔을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동네에서 울려 퍼지는 새마을 노래가 나를 깨워주었고 마을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새마을 운동의 모습을 흔히 보았다. 그러더니 어느새 지붕이 바뀌고, 부엌이 바뀌고 다음에는 보일러를 설치하는 집이 늘어나더니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