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12월 7일 교육부 장관실에서 오병문 장관, 이성호 정책실장과 셋이 모였을 때 그는 이 문제에 결판을 짓자며 달려들었다고 했다. 지난 몇 주일동안 청와대에서 교육부로, 교육부에서 청와대로 배구공처럼 왔다 갔다 한 그이는 너무 화가 나서 자기 평생 처음 큰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그 후 국회에서 만난 오 장관이 그이에게 “부드럽고 얌전하게 생기신 분이 굉장히 무섭던데요”라고 몇 번이나 반복을 하자 곁에 있던 황산성 장관이 “교육부에서는 이천수 차관이 실세”라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그날 오 장관이 “김종옥 이사장이 모든 전문대학에서 손을 뗀다는 각서를 제출하면 해주겠다.”고 해서 즉시 각서를 제출했다.
JP에게도 이 딱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12월 9일 그이에게 전화로 YS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면서 자기가 공약을 했으니 도와주라고 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지난 두 달간 호떡집 불난 듯이 이 문제로 지지고 볶았는데 잘 될 것 같다며 그이는 기뻐했다.
며칠간의 사건 전개가 너무 괴상해서 여기에 낱낱이 써보려고 한다. 우선 12월 9일 그이가 이성호 정책실장에게 JP 이야기를 전하니까 “김종옥 이사장의 각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도록 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든 인가를 안 해주려는 눈치인 것 같았다고 한다. 다음날 이 실장에게 “오 장관이 각서만 제출하면 해주겠다고 하고 이제 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니까 “내가 왜 안 도와드리겠습니까. 알았습니다”라고 해서 잘 되는 줄 알았다.
한편 JP도 교육부에 전화를 해서 대통령도 아는 일이니 부탁한다고 하니까 오 장관이 “문제가 많은 재단이라 곤란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길로 교육부에 갔으나 오 장관이 없어서 비서실장에게 “어떻게 장관이 일구이언 하느냐”고 전하라고 말하고 나오는데 김덕룡 정무장관을 만났다. 하소연을 했더니 “공무원들이 소신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몇 주일 끌려 다니며 우리의 피를 말리는 숨 막힌 사건이 11일 세 가지 조건부로 다음해에 인가를 해주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 세 가지란 1) 대구전무대의 교사 확충 2) 교수 충원 3) 재정 전입금 증액이었다. 그이는 이왕이면 그 세 가지 조건부로 지금 인가를 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영송재단 김종옥 이사장은 전문대에서 손 뗀다는 각서까지 제출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며 4년제 대학설립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반발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실세라는 이천수 차관은 1) 내년에는 꼭 인가를 해 주겠다 2) 김 이사장을 자기에게 보내주면 설득하겠다 3) 장관이 각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은 잘못인 것 같다고 말했다며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왔다.
4선 의원인 그이는 언제나 선거 때 한 공약들을 임기 내에 지켜왔는데 이번에는 대학유치 공약이 빈 공약이 될 것 같아서 무척 마음이 무거웠다. 그이는 당선되면 늘 유세장에서의 공약을 프린트해서 책상 위에 부쳐놓고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줄긋는 것을 즐겼다.
나는 그가 바쁠 때면 공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왔는데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날 밤 내내 김천 유권자들의 실망할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또 누가 무슨 장난을 했기에 이렇게 꼬였을까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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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성 국무총리(왼쪽)와 오병문 교육부장관(오른쪽) [출처 ; e영사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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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억울하게 당해온 일들이 워낙 많았기에 이번에도 우리 모르게 누가 뒤에서 무슨 조작을 벌이고 있다는 예감에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래도 다음날인 12일 그이는 포기하지 않고 황인성 총리 관저에 찾아가서 조건부 인가를 부탁했더니 그분의 성품상 예상대로 알았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흘 후 그 자리가 이회창 총리로 교체되었다.
김숙희 교육부장관 시절
대구재단의 김종옥 이사장은 ‘박 의원은 자기가 접촉한 다른 정치인들과 너무나 다르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교제비 요구를 안 한다’ ‘준다고 해도 마다한다’ ‘전화 몇 번하고 생색내는 정치인과는 달리 백방으로 뛰고 다니면서도 생색을 안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지역구 유권자들의 숙원사업을 위해 백방으로 뛴 것이지 김 이사장의 이익을 위해 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감복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건이 아직 총리실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위원회의 박범진 의원에게도 부탁을 했더니 교육부는 여전히 부실재단이라고만 말하더라고 했다. 그러던 차 12월 21일경 김숙희 장관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김 장관은 내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가정대학교 교수였다. 그때만 해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지 않을 때여서 외국 박사인 김숙희 교수와 약학과의 고영수 교수랑 나는 자주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한 친한 사이였다. 또 우리 셋은 이대 후문에 있는 대신동에서 이웃으로 살았다.
김 장관을 방문하기 전에 그이가 황락주 부의장께 박관용 실장에게 말 좀 잘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황 부의장은 박 실장을 만났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다만 자기는 박정수 의원 같은 일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YS 주변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이종찬 의원에게 김천. 금릉 대의원표를 ‘몽땅’(?) 주었다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전갈이었다.
그이가 당시의 사실을 설명해주자 그 분은 자기가 다 오해를 풀어 줄 테니 믿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좋은 말을 못 들었나보다.
아들아이는 “대통령이 그런 것 갖고 계속 아버지를 기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의 라이벌로 대통령 후보 출마까지 했던 이한동 의원을 총무로 발탁하는 것을 봐서는 그것만이 이유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우리는 김천 제일교회의 김교정 장로가 대선 경선 때 김덕룡 의원에게 박 의원이 이종찬 의원을 민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김 장로가 YS에게 직접 가서 그런 헛소리를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김덕룡 의원을 찾아갔다고 하니 어느 것이 확실한 사실인지 아직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