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장 취임
1994년 12월 27일 성신여대 한영환 총장의 연락을 받고 팔레스호텔 커피숍으로 나갔다. 바로 그날이 브라질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가게 된 남편을 따라 떠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서 만났더니 대학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성신여대는 부총장 제도가 없기 때문에 대학원장이 학교에서 제2인자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때 어차피 총장 출마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정년퇴임 전 마지막 보직으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다음 해 새 학기가 시작되자 많은 교수들이 “기다렸다가 총장 출마를 하지 왜 그 보직을 수락했느냐”고 원망하는 것이다. 물론 나의 속마음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또 교수들 가운데는 한 총장이 곧 있을 총장선거에 재출마하려고 “이 교수의 총장출마를 사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대학원장직을 맡겼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이야 어떻게 말하든, 나에게 보직을 맡겨준 한 총장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았다.
대학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국민윤리학과의 박용옥 교수, 지금은 고인이 된 사회교육학과의 부정남 교수, 가정학과의 김태현 교수가 찾아왔다. 그전부터 여성학과 개설을 시도했으나 문교부 승인이 나오지 않았는데 한번 꼭 성사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문교부에 문의를 해보니까 학부 과목이 없는 학과는 대학원에 신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 그 당시 문교부에서 오는 공문마다 “학제간 연구”를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다시 교육부에 연락을 해서 여성학은 여성과 정치, 여성과 경제, 여성과 사회, 여성과 가정 등 여러 분야와 연계해서 연구를 해야 하는 분야이므로 교육부가 장려하는 “학제간의 연구”와 부합이 된다고 설득을 하고 이화여대, 효성여대에만 여성학과를 승인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항의를 했다.
그 후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문교부의 승인이 나와서 오랫동안 여교수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은 공무원들이 이미 만들어진 규정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 그 규정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융통성 없는 공무원을 만나면 힘들겠지만. 성신여대 대학원에 여성학이 신설된 이후 숙대, 경희대 등 다른 학교에도 잇따라 여성학과가 개설 되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가 내용뿐 아니라 포메트(format)에 대해서도 깐깐히 챙겨서 무척 고생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귀국 후 학생들이 제출하는 논문은 규격이나 형식을 구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 훈련이 되지 않고 있었다.
늘 논문작성법의 필요성을 절감해오던 차에 논문작성법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에 걸쳐서 출간하게 되었다. 서울대, 고대, 연대는 자기들만의 논문작법 교과서를 갖고 있었다. 마침 유학시절에 사용하던 Cambell Manuel을 박경서 중앙대학 교수가 가지고 있어 그 책을 빌려서 작업을 했다. 중대에서도 자기들의 논문작법을 출간할 때까지는 성신논문작법을 사용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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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신여대 대학원장 시절의 동정기사 (동아일보 1991. 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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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장이 된 후 하루 종일 학교에 얽매게 되니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또한 남편의 국회출마 문제가 복잡해져가고, 아들은 근 20년 만에 귀국을 하게 되었고, 30년간 나를 도와주던 가정부는 늙어서 떠나게 되었다. 게다가 잠시 미국 시누님 댁을 방문했던 시어머님이 귀국을 하시어 내가 보살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오랜 생각 끝에 신임 총장에게 자기사람을 임명할 기회도 줄 겸, 임기 전에 대학원장직을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이 무렵 남편이 당뇨병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그 심각성을 미처 몰랐는데 체중이 줄고 있어 남편의 건강도 마음에 걸렸다. 동료교수들은 보통 보직을 원하는 것이 정상인데 주어진 보직도 마다하고 사표를 낸다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여성개발원 원장직도 그래서 수락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 그보다 더 한 자리도 사양했었다. 대학 교수직을 충실히 이행하되 가정과 남편을 보살피는 일에도 게을리 하고 싶지가 않았다.
김천 4년제 대학설립 시도 - 오병문 교육부장관 시절
4년제 대학설립이 김천시민과 금릉군 군민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다. 선거 때면 어디를 가나 그 소원을 풀어달라는 민원이 대단했다. 김천에는 2년제 전문보건대학이 있지만 4년제 대학으로 가기위해 타지로 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엄마들이 주말이면 반찬과 옷들을 싸가지고 먼 걸음을 해야 하니 경제적으로도 힘겹다는 하소연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한 여론은 아마도 그이보다 내가 여성유권자들로부터 듣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동안에 그는 김천에 공단도 유치하고 도로포장, 수많은 개천복개사업, 사회복지회관 건립, 마을별 노인정 등에 신경을 써왔지만 다음에는 무엇보다도 4년제 대학유치에 온 정성을 모아보자고 남편에게 건의를 했다.
그 이는 서울과 인접도에 있는 4년제 대학의 분교를 김천으로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좋은 장소에 있는 시유지를 제공할 테니 4년제 대학 교육 사업에 투자할 용의가 없느냐고 재력가들에게 타진을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대구에 있는 영송(嶺松)재단의 김종옥 이사장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문교부에 신청할 것을 권유한 것이 발단이 되어 그 일에 개입하게 되었다. 김천 전문대학(신천지재단)도 4년제 대학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다른 지방에 전문대학교 설립신청을 한 것으로 안다. 92년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김천 유세 때 4년제 대학유치를 공약으로 약속받은 사항이어서 대구 영송재단의 대학신청에 대한 인가는 쉽게 나올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 대학교수가 그이에게 전화를 했다. 김천 전문대 측이 청와대 박관용 비서실장에게 영송재단에 대한 모략을 해서 문교부 차관선에서 ‘인가 불가’라는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정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속히 교육부의 이성우 정책실장을 만나보고 청와대에 손을 써보라고 했다. 이때 우리가 박 실장과의 연계를 눈치 챘어야 하는데 이성우 실장과의 접촉에만 신경을 썼다.
그때만 해도 민주계인 박관용 실장이나 김정남 교육수석과는 인사만 할 정도이므로 그이는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교육부 차관과 정책실장에게 연락을 해보니 “영송재단의 부실성 때문에 곤란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한편 영송재단에 의하면 94년부터는 4년제 대학설립 요건이 까다로워지므로 93년에 반드시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이가 청와대로 박 실장을 찾아갔을 때 그이 앞에서 차관에게 연락을 했으나 부재중이라고 했다. 김정남 수석을 찾아갔더니 오히려 교육부 설득을 당부했다고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김길환 담당관이 지역민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신천지재단, 대구재단 모두 인가를 안 하는 방침을 세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그이는 김길환 담당관에게 대통령의 선거 공약임을 상기시키고 재조사를 약속 받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