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제도와 이혼 (70회)

가정법원 가사조정 위원

1991년 1월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김숙자 명지대학 법학교수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혼 서류를 제출한 부부들이 재판으로 가기 전에 판사와 네 명의 사회저명 인사, 그리고 서기, 6명으로 구성된 가사조정 위원회에 출두해서 이혼 사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조정위원들이 화해의 가능성을 찾아 주거나 화해가 불가능 할 때는 판사가 강제조정을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강제조정은 2주일 내에 어느 한쪽이라도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고 그 후에도 조정이 안 되면 정식재판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근 10년간 가사 조정 위원으로 있는 동안 황혼이혼 사건은 없었으나 여러 이유로 이혼을 하겠다고 오는 부부들 가운데 원고가 여성이 더 많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을 동고동락 해온 사람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무서운 적개심을 나타내며 이성을 잃은 듯한 언행을 서슴치 않을 때가 많았다.

부부란 헤어지면 남보다 못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고학력일수록 자존심 싸움으로 어이없이 이혼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고 의외로 부유층에서 혼수문제가 가정불화의 씨가 되어서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가장 흔한 이혼사유가 남편의 폭행, 도박, 음주, 외도문제였다. 대부분의 경우 음주, 구타, 외도를 동시에 세트로 행사하는 난폭한 남편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부부가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로 떠넘기려는 사례이다.

그런 일에 부딪칠 때마다 비애를 느끼기도 했다. 과거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은 뺏기지 않으려고 끝까지 자녀양육권을 위해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차 그런 현상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들을 나누어서 양육권 행사를 하도록 조정을 할 때도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그건 반대 입장이었다.

가사조정이 있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각별히 대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것은 조정위원회에 나타나는 별의 별 종류의 남편들을 만나게 되니까 자연히 그이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게 되면서 조정위원회에 사표를 제출할 때까지 8년 이상 조정위원 경험을 통해서 참을 인(忍)과 양보심이 부부를 끝까지 이어주는 가장 소중한 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참을성과 양보심이 결여되면 부부생활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가정법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에서 속강이 있는 날 쉬는 시간에, 지루해 하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남편감 고르기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며 열심히 듣는 여대생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이 학생들이 졸업 후 어떤 남자를 만나서 어떤 인생을 꾸려가려나’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대학입시 제도와 이혼

1992년 말 입시에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그들의 부모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2005년인 지금도 전혀 변한 것은 없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시험이 있는 날은 전국이 떠들썩하다. 아침부터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을 늦추고 경찰이 동원되어 지각생들을 이동시키는가 하면, 매스컴은 하루 종일 시험문제의 동향을 얘기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당일뿐 아니다, 며칠간은 대학입시문제가 전국을 들었다 놓곤 한다. 그러니 수험생들은 마치 전국의 이목이 자기들에게 집중된 듯한 분위기 속에서 위축되기 마련이고 마치 세상이 자기의 무능을 알게 된 것 같이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과에 따라 자살충동이 생길 법도 하다.


▲ 학자로서의 활동 가십기사 (경향신문 1992. 3.14.)

나는 미국에서 13년간 유학을 했지만 대학 수능시험을 누가 언제 치르는지 모르고 지냈다. 수능시험이 1년에 여러 번 있으니까 원하는 학생은 고1때부터도 시험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같이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일제히 시험장으로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도 자기 점수가 마음에 안 들면 계속해서 시험을 보니까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전국이 들끓을 사건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제도를 도입할 수 없을까? 내가 모르는 한국만의 애로사항이 숨어 있어서 개선이 안 되는 것일까?

손자가 고1이 되면서 나는 그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주말이면 학원에 다녀야하고 주중에는 학교에서 10시까지 보충수업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한국에서 노벨상을 타는 학자가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취미생활이 가능하고 학교에서도 체육시간과 오락시간을 두어 학생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엄연히 체육이 시간표에 있으나 체육시간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학생들을 죽이는 교육인데도 부모나 교사나 당국이 학생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 같이 보인다. 꼭 공휴일 직후에 시험을 치르니 휴일도 마음 놓고 쉴 수 없게 만든다. 왜 그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결정을 해야만 할까? 충분한 체육 시간도, 충분한 휴식시간도 가질 수 있는 외국의 교육제도 하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배출되는데, 유독 한국만의 망국적인 교육제도는 왜 개선이 안 되는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말을 조금씩 하게 되면 영어학원에 보내거나 과외선생을 붙인다. 그리고 유치원부터는 발레, 피아노, 그림, 영어회화에 이르기까지 너무 바쁜 일정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런 주변 환경 속에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소외감을 느껴 불행해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과외 분야가 더 늘어난다. 중학교부터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과외 공부시간이 더 많아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잡아두는데 어떤 학생들은 그 후에도 과외교사가 집으로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새벽 1시나 2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학교로 가서 자습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도대체 이들은 언제 운동을 할까? 언제 원하는 독서를 할까? 공교육이 왜 필요한지 의심이 든다. 학교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 겨울방학, 여름 방학 때도 숙제에 치여서 심신을 쉬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공부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성장과정이 사회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막상 대학에 진학하면 학업을 게을리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어떤 인간상으로 나타날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에서는 인성교육은 없고, 첫째도 공부, 둘째도 공부, 셋째도 공부를 부르짖는 부모들만 있을 뿐이다. 자녀가 공부하면 가족들은 방해가 될까봐 조용조용 발끝으로 걸어야하고 간식 갖다 바쳐, 음료수 떠다 바쳐, 외출 시 신발까지 내다주는 엄마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사람에게 어떻게 독립정신을 기대하며, 남을 배려하기를 바라겠는가? 자기만 알고 자기만 배려해 주기를 기대하며 자기 외에는 없다는 식의 이기적인 인간성이 형성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혼율을 높이는데도 일조를 한다고 본다. 수년간 서울가정법원의 가사조정위원을 지내면서 느낀 점이다. 정당하고 부득이한 이혼사유도 있지만 대부분 젊은 부부들의 이혼이유는 인내심 부족, 상호 배려심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자기 뜻에만 맞추라고 하니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현행 교육제도의 폐단이 부부관계뿐 아니라 각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언제 이 나라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식혀줄 것인지 아마도 죽기 전에는 달라진 모습을 못 볼 것만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