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총선 출마와 당선 (64회)

다섯 번째 치르는 선거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그 과정에 잡음이 없이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소선구제로 변경된 후 상주를 제외한 김천, 금릉군만이 우리의 선거구가 되어서 선거운동도 그만큼 쉬워졌다.

3월 24일 총선에 대비해서 1월부터 남편은 김천에서 살다시피 했다. 온갖 행사마다 다 참석했고 면(面) 별로 의정보고회를 개최하느라고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녔다. 나도 방학이어서 같이 가야 할 행사에는 동행했고 여성당원과 여성단체를 위한 모임에는 혼자 참석을 했다. 상대 후보들은 주로 그이에 대해 “나라를 위해서는 일을 많이 하지만 지역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느냐?” “주로 외국으로 놀러만 다닌다.”라는 흑색선전에 열을 올렸다.

민자당 당무위원이므로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나오니까 그이가 김천에는 내려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았다. 지역구에 가도 모든 유권자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이면 지역구에 가서 순회를 하고 일요일에는 자기가 장로로 있던 황금동 교회에서 예배를 본 후 귀경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사조직에 속했던 사람들은 그이가 무소속이든 당 소속이든 한결 같이 진심으로 지지해 주었다. 지금도 우리가 어려울 때 변함없이 지원해주던 몇 몇 분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찡하도록 고마운 생각이 든다.

▲ 유권자들과 악수하는 필자

나는 각 면이나 동 마다 여성단체장들의 모임, 마을 사람들의 모임에서 상대방 비방의 허구성과 왜 남편이 당선되어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그러나 알기 쉽게 설명을 하며 다녔다. 외국으로만 나가는 외무위원인 박 후보는 지역구민들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상대방 주장의 허구성을 설명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건재해야 지역도 개인도 잘 살 수 있는 것이지 아무리 지역이 발전되고 개인이 잘 살아도 나라가 망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수는 국가 안보외교, 경제외교에 헌신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회 시대의 국회의원의 역할은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에는 마을입구의 전등까지 챙기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지방의회 의원들이 그런 일은 챙기게 되었고 국회의원은 중앙에서 국가의 존립을 위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역할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물론 지역구 발전을 위해 개발사업과 기업을 유치하고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역구에 예산을 조달한다든지, 지역민의 여론을 파악해서 국가정책으로 표출해내는 역할도 국회의원의 몫이다. 그렇게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아무나 선출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위해서도 선거구마다 실력과 자질을 갖춘 후보를 선출해서 여의도 의사당에 보내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지역민들을 설득하며 다녔다. 하루 종일 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다보니 선거 일주일 전부터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 반가워하는 유권자들과

지금은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풍토가 많이 바뀐 것으로 알지만 10, 11, 12, 13, 14대 총선을 치르면서 늘 겪는 문제는 돈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지역에서는 매번 재벌급 후보가 출마를 했고 인접 지역구에도 재벌급 후보들이 있어서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접 지역에서 선물을 세 번쯤 돌리면 우리는 한번이라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운동원들이 보채는 것이다. 어느 후보는 무슨 물건을 돌렸다는 등, 한 가구당 5만원을 돌렸다는 등, 신경 건드리는 소문이 늘 우리를 괴롭혔다.

3월 24일 남편은 53%의 지지율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다. 그 날도 나는 개표상황을 볼 담력이 없어서 수면제를 먹고 미리 자버렸고 새벽녘에 남편이 깨워서 알려주었다.

실은 10대 선거 때부터 남편은 밤에 숙소로 오면 “미안해. 정말 이번만 하고 다음에는 출마하지 않을께”라며 무척 안쓰러워했다. 그 후에도 출마할 때 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기왕 남편이 선택한 길이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는 마음에서 때로는 본인보다 더 열을 올리게 되고, 몸이 부서지라고 뛰어다니게 되었다. 나 자신보다도 과로하는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는 나를 발견하고 부부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오던 길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는 이번 4선의 벽이 결코 낮지 않았다는 점에 유념하고 선거공약을 꼭 지키자고 다짐했다.

바쁜 남편을 돕고 싶어서 공약 내용을 종이에 열거해 놓고 책상 위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자청했고 그이는 하나하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 아침이면 여러 개의 봉투를 윗옷 주머니에 넣고 나가기에 물어보면 지역구민들의 취직을 위한 이력서들이라고 했다. 적산가옥처분에 관한 김천 모암동 지역민의 청원서건, 노인복지정책, 교육기관에 내는 기부금 면세조치 의원 입법안, 특히 김천에 4년제 대학이 소원이어서 4년제 대학 설립자 선정문제 등 선거후 남편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