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그 해 8월 6일 국회의원 몇 분이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초청을 받아서 루이지애나 주의 뉴 올린스로 떠났다. 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전당대회였다. 그들의 정치는 축제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후보의 수락연설 후 천장에 달아놓았던 풍선들이 뭉텅이로 회의장 전체를 뒤덮으며 날라 다니는 가운데 모두가 환호했다. 너무나도 부러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미 대사관의 알선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대회에도 참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레이건 대통령의 수락 연설이 부시 후보보다 확실히 더 감동적이었다. 레이건의 연설은 청중을 완전히 최면에 걸리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부시는 레이건 보다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88 올림픽
9월 17일 88올림픽 개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코가 시큰거림을 느끼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극기를 바라보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2대 총선에서 억울하게 낙선된 후 몇 년간의 공백 끝에 다시 재기한 남편 곁에 서 있어서 나의 감동은 더 컸는지 모른다. 1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우리 스스로도 놀란 서울 올림픽이었다.
IPU 단장
바로 그날 남편은 처음으로 IPU(세계의원연맹) 단장으로 평민당 의원 2명, 공화당 의원 1명과 같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떠났다. 그동안 무소속 의원이었기 때문에 일은 다하고도 그 영광은 당 소속 단장에게 돌려야 했던 신세에서 탈피하게 되어 나는 무척 기뻤다.
10월 2일 IPU 대표단이 귀국하는 날 강성(强性) 공산국가인 불가리아에서 열린 회의여서 그랬는지 유난히 기자들이 공항에 많이 모였다. 귀빈실에서 KBS, MBC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흐뭇한 기분이었다.
서울 올림픽의 효과는 유럽 어디를 가나 체감할 수가 있었다고 했다. 비행장에서 ‘서울 올림픽’하면 모두 환호를 하고 특히 불가리아에서도 한국에 대한 소개가 대대적으로 방영되었으며, 대표단의 모스코 방문시 러시아 사람들도 한국과의 교류를 열광적으로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
| ▲ IPU 집행위원들 / 앞줄 왼쪽에서 3번째가 소로 의장 |
|
본회의 대정부 질의
IPU총회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그이는 본회의 발언을 준비해야 했다. 남편이 정기국회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본회의 대정부 질의를 하는 10월 28일, 아들과 같이 방청석에 자리 잡고 앉은 나는 감회가 남달랐다. 9대 국회 당시 정당의석 분포도나 좌석배치와는 다른 의원석을 내려다보며 내가 앉았던 자리에 눈길이 갔다.
잠시 과거 회상에 사로 잡혔으나 곧 맑은 목소리로 질의를 시작하는 남편의 모습에 내 눈길이 고정되었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무소속 의원일 때도 외교안보분야에 대한 질의는 도맡아 해 온 터였다. 아들도 아빠가 자랑스러웠는지 나에게 귓속말로 “엄마가 대정부 질의할 때보다 마음이 놓이는데 왜일까?”라며 나를 놀렸다. 그날 야당 의원석에서도 잘했다는 소리가 터져 나와서 더욱 뿌듯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나는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한 사람은 대학교수, 또 한 사람은 정치인이 되자”고 했던 어렸을 때의 꿈이 현실화되어 우리 부부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1979년부터 남편의 의정생활은 시작되었지만 소속정당이 생긴 후 남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겠다는 생각에 더욱 기뻤던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가능하면 매스컴을 피하고 행동반경을 대학에 국한시키려 애썼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가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88년은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우리는 이어령 교수 내외와 같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름의 집(아카데미 하우스 내의 식당)에서 그리고 망년회는 신라 일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한 해를 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젊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가족모임을 가졌으나 아이들이 장성한 후부터는 부부끼리만 만나게 되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무슨 말이나 할 수 있는 친구를 갖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