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학으로 (54회)

엉뚱한 이혼설

85년 5월 6일, 12대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뒤였다. 가정조선의 김대중 씨 (현 조선일보 고문)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기자를 보낼 테니 인터뷰에 응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선거 기간 중 의견 차이가 심해서 선거 후 이혼한다는 소문이 났다고 했다.

우리가 이혼한다는 소문은 귀국 후 심심치 않게 들어온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세계 도처에서 우리 부부에 대한 관심이 왜 그리 많은지 그런 소문이 났다고 알려주는 친구들도 많았다. 별거 중이라느니 이혼을 했다느니 등등… 그럴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혼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세상에 한번쯤 이혼하고 싶은 충동을 받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설령 내 남편이 남자로서 탈선을 했다고 해도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어서 궤도에서 멀리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도 보통 부부들처럼 싸움도 많이 했다. 우리라고 의견충돌이 없을 수가 없다. 특히 남편의 늦은 귀가에 대한 나의 불만이 사소한 언쟁을 유발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만 해도 구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자식이 있는 한 이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갖고 살아왔다.

5월 11일 우리 집으로 찾아온 가정조선 기자는, 제일 먼저 “선거 전부터 별거설이 있는데 어찌된 사정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리셉션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 그이는 국회에서, 나는 학교에서 행사장으로 따로 가서 만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이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나 혼자 먼저 귀가했는데, 따로 오고, 따로 떠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별거설을 유포했는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날 그이는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전화로 집에 잠깐 와달라고 연락을 했더니 얼마 후 귀가해서 둘이 사진도 찍을 수가 있었다. 그때 기자에게 “부부란 알고도 져주는 정치술로 평화를 얻는 관계”라고 말해 주었다.

이상한 소문이 날 때마다 낙천적인 그이는 늘 “우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이니 영광으로 알자”고 농담하곤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온다’라는 속담이 더 맞지 않을까?

▲ 우리 부부

명지대학 교수 부임

부산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귀경한 어느 날, 미 8군 클럽에서 오랜만에 점심을 하고 있는데 전 통일부 장관인 유상근 명지대학교 이사장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식사 후 그 분이 그이에게 다음 날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유 이사장이 명지대학의 박일경 총장 임기가 얼마 후 끝나니 차기 총장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이규호 청와대 비서실장이 추천한 시교육감 후보가 내정되었는데도 전 대통령의 동서가 재추천한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었다. 또 이규호 실장이 전 대통령에게 그이를 외무장관으로 추천했으나 같은 이유로 좌절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막강한 사람이 견제하는 한 전 대통령 임기 내에 어떤 자리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충고가 많았다. 그래서 총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가을 학기부터 행정학과 교수로 출강키로 결정하고 나니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이는 처음부터 후학을 가리킨다는 그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때 마침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 교주(校主)도 총장이 될 수 있게 되자 명지대학교 설립자인 유상근 이사장이 총장직을 승계하고 그이는 법정대학장에 임명되었다. 국민대학교에서 복무하던 때처럼 법정대학 교수들 간에 친목회를 조직하고 은퇴하는 교수들과도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상호간 우의를 다졌다. 그때 만든 모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편의 빈소에 그분들이 많이 찾아 주어서 고마웠다.

부부 학장 시절

사실 내가 어려서 꿈꾸던 미래의 남편상은 학자였다. 서재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남편에게 맛있는 간식과 차를 조용히 갖고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그러나 어쩌다 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정치 지망생이었다. 비록 나의 이상과는 달랐지만 놓치기 싫은 사람이어서 내가 그의 포부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이가 박사 학위까지 받으면 정계 진출에 실패해도 학계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들었었다.

12대 선거에서 실패하고 그가 명지대학 법정대학장으로 스카우트된 것도 학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도 남편을 교단에 서게 해주신 유상근 명지대학 설립자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명지대학에 몸을 담은 후 신앙심이 남다른 유상근 이사장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난데 대해 늘 가슴 아파했다.

우연히도 유상근 이사장의 산소 바로 이웃에 우리 딸과 그이의 산소가 자리 잡게 되어서 갈 때마다 그 분도 뵙게 된다. 그 뿐 아니라 그 분의 아드님인 유영구 현 이사장의 배려로 그분의 산소 벌초 때마다 그이의 산소도 같이 벌초를 해주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그이는 명지대학교 법정대학장, 나는 성신여대 사회대학장으로 또 다시 ‘부부 학장’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남편이 국민대학 교수로 있을 때와 명지대학 교수로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했다. 밤이면 둘이서 각각 강의준비 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가 있었고 당시 학생들의 시위문제 등 학원가에 대한 의견교환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교수라는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정치와 관련된 행사에 많이 참석하며 정계동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를 계속 정치인으로 취급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