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11일 대한민국 영토의 한 부분인 경북 김천 선거구에서 일어난 사건은 한국 선거사의 오점으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2월 8일 이태준 목사가 일부 목사, 전도사들을 모암동 소재 강산식당에 초대한 자리에서 ‘박정수는 문선명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었고 통일교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비방 모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명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선거 전날인 11일 국민당 후보 운동원들이 조작된 ⌜한미타임스⌟지의 발췌 부분과 그이를 비방 모략하는 유인물을 각 교회와 교인 가정에 살포했다. 이 목사를 통해서 허위 날조시킨 기사는 여당 후보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들었다.
1984년 11월 10일 ⌜한미타임스⌟지에는 원래 김상구 후보의 독사진과 그 옆에는 윤자중 교통부장관과 리셉션에서 환담하는 남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기사 요지는 상주 출신 정휘동 의원과 지지자들이 처음에는 박정수 의원이 공천을 받는다고 해서 긴장하다가 난데없이 대통령 친인척인 김상구 주 호주 대사가 공천을 받게 되자 당과 청와대에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상구 씨가 12・12 개혁 이후 통일교와 접선을 가졌으며 통일교 간부들과 자주 어울렸고 호주대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통일교가 많은 땅을 사들인 점을 지적하고 있어 전두환 대통령 주변에 통일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며 박정수 후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기사였다. 오히려 정휘동 의원을 동정하고 전 대통령의 동서 공천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기사 제목은 ‘태풍의 눈이 된 경북 상주ㆍ김천 : 국회의원 공천과 통일교 관련설? 기독교단체에서도 반발 거세게 일어’라고 되어있다. 바로 이 제목을 이용한 것이다.
그런 신문 기사에서 김 후보의 얼굴은 삭제하고 그이와 윤자중 장관이 환담하는 사진을 뿌옇게 만들어 놓고 윤 장관을 문선명 씨로 둔갑시킨 것이다. 지방 사람들이야 뿌옇게 나온 사진 안에 그이 얼굴이 있고 윤 장관은 누군지 모르니 의례히 문선명 씨로 속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사 제목만 크게 내놓고 본 기사는 삭제한 것을 물증이라고 하며 아래의 별도의 글과 같이 살포한 것이다.
김천·금릉 기독교인은 사기 당했다!
사이비 기독교인 박정수의 두 얼굴!
* 1984년 11월 10일자 ⌜한미타임스⌟(미국 발행 신문)에
“ 태풍의 눈이 된 경북 김천·금릉·상주 지역구에 국회의원 후보와 통일교 관련설 기독교 단체에서도 반발이 세게 일어” 라는 제목하의 기사에 박정수 의원과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나란히 찍은 사진이 게재되어 화제
* 믿음이 생명인 기독교인이 우리 유권자가 보지 않는다고 이중행동을 자행하는 행위를 어떻게 묵과할 수 있나?
* 사이비 정치인은 이제 믿음마저도 팔고 있어 김천 금릉 기독교 망신은 박정수가 다 시켰다!
* 이 나라 민주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기독교인이여! 속임에서 깨어나 궐기하라!
진실한 기독교인 일동, 1985. 2. 10
이 부분을 읽는 독자들도 이런 날조된 계략에 놀랄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직접 당한 우리의 심정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박정수의 교회 지지표를 깨는 방법을 연구한다”더니 이런 식으로 한 것이다. 교인들이 그날 밤 우리의 해명도 듣지 못하고 “박정수 회계하게 해달라고 통성기도를 했다”며 선거 후 진실을 알게 된 교인들이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교회 표 5천표 정도는 그 일로 날라 갔을 것이라는 계산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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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정수 후보가 선거운동 중 수녀님들과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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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에 도와줄 테니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한 사람들의 변을 선거 후에 들었다. 이종찬 의원은 전 대통령이 박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이 있었으니 선거 기간에 당에서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고, 권익현 사무총장은 청와대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후일 이종찬 의원이 전 대통령에게 박 의원을 활용하자고 하자 “박 의원이 지역구에서 김 의원 (자기 동서)을 욕한다며?” 라고 하면서도 잘 연구해 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장세동 경호실장과 김상구 씨가 말한 “낙선되면 자리를 마련 할 테니 꼭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한 약속은 헌신짝이 되고 말았다.
마음씨 고운 우병규 의원은 내용을 잘 알고 있어 안타까운지 그이만 보면 김상구 의원과 화해를 해야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귀띔하더라고 했다. 화해절차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13대 국회에 그이가 당선된 후 경북 의원들이 모이면 김 의원이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이 대하기에 그이도 그대로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아무리 남편이지만 기가 막혔다. 그이는 누구와도 부딪치는 것을 싫어했다.
결국 전두환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잘 있는 호주대사 자리를 동서에게 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현역들이 있는 지역구에 공천을 했고, 당선되자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원장 직에 임명했다. 당시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이었다.
한국 헌정사상 무소속 3선의 기록을 만들고 싶었던 남편의 꿈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두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재검표를 요구하든지 부정선거에 대한 대대적인 항거운동을 전개하자는 참모들의 간절한 청을 뒤에 두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피곤한 심신을 쉬고 싶었다.
조선비치 호텔에서 마침 삼천포에서 낙선한 김종하 의원 내외를 만났다. 서로 자기 선거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이야기를 듣고 난 김 의원은 김천 지역구가 더 심각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말없이 먹고 자고, 폐 속의 오염된 공기를 갈아 넣기나 하듯 심호흡을 하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2월 20일 구정에는, 광복동에 나가 Thief of Heart라는 미국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정장이 아닌 잠바차림의 남편 모습이 왜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는지 마음이 쓰렸다. 그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나는 계속, 전두환 대통령, 장세동 실장, 이종찬 총무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한테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선거기간에 민정당 후보가 우리만 탄압을 하니까 그이가 장 실장, 이 총무, 노신영 정보부장 등에게 연락을 취했는데도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보다도 친인척의 위력이 더 막강한 제5공화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아마도 입장이 곤란했는지도 모른다.
선거후 전두환 대통령이 역사상 유례없는 공명선거라고 발표했다. 김천지역의 선거행태를 있는 그대로 알았어도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