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은 우리 부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현대아파트 사건으로 순진한 우리는 집 한 채를 날리고 전셋집 신세로 전락했고, 남편은 공화당 중진의원의 부당한 압력으로 졸지에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18년간 공화당 중진의원의 아성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기적을 낳은 해였기 때문이다.
대신동 집에서 딸 아이를 잃고 우리는 그 집을 팔았다. 아이 생각이 나서 그 집에서는 살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리고 동부 이촌동의 타워맨션으로 이사를 했다. 어른들이 계시니까 방이 네 개 되는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같은 동네에서 짓고 있는 반도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덜컥 분양은 받았으나 우리 아파트를 팔지 않는 한 당장 중도금 치를 여력이 없었다.
집은 쉽게 안 팔리고 국회의원이 1가구 2주택이 되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서 그 분양권을 우리가 낸 계약금만 받고 남에게 양도했다. 주변에서는 바보짓이라고 안타까워했지만 마음이 편한 것이 좋아서 개의치 않았다. 은행 대출 생각은 꿈도 못 꾸는 쑥맥같은 부부였다. 무조건 아파트를 팔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전세로 자리를 잡고는 여기저기 새 아파트 분양신청을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여의도의 광장아파트마저 떨어지고 날짜는 자꾸 가는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부 이촌동 타워맨션을 팔고 한 달이 지나자 그 집값이 배로 뛰었다는 말을 듣고 속이 상했다. 그 집 판돈으로 새 집을 사야 할 형편인데 나날이 집값은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전세아파트 앞에 모델하우스가 있어서 물어보니 사무실 아가씨가 분양이 이미 끝났으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가라는 것이다. 도중에 해약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계약금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문제의 그 현대아파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도금도 내고 두 방을 터서 서재를 넓히기로 구조변경까지 신청을 해놓았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를 어떻게 꾸밀까 하는 생각에 즐거웠다. 이것이 전혀 가감 없는 진실이다. 정치인들이 혹은 공무원들이 투기목적으로 몇 채씩 줄도 안서고 뒷거래로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런데 7월 초부터 국회 주변에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에 관해 말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해당이 안 된다고 믿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대기업이 무엇이 아쉬워서 불법분양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왜 한사람이 몇 채씩 분양을 받았는지가 의문이었다. 미국에서 장기간 살다온 우리는 의례히 1가구 1주택이 정상인 줄만 알았지 아파트를 투기목적으로 분양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배 밭으로 뒤덮인 압구정동의 땅을 사면 좋을꺼라고 말을 했을 때나 방배동 벌판에 땅을 사놓으라고 했을 때, “골이 비었나. 그런 곳에 땅을 사게”라고 말하던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두 곳의 땅을 몇 백평이라도 사놓았다면 지금쯤은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 난 운명에 재복이 있어야 땅을 사고 싶은 생각도 나는가 보다. 도대체 땅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났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한심할 정도로 무식했나를 실감한다. 그 좋은 기회 다 놓치고 그저 내 머리에는 꼭 집을 팔아서 현금을 손에 쥔 후 다른 아파트를 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이런 일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기는 사람이다. 더구나 1978년 한해는 1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해서 나 혼자 아파트사건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7월 초 어느 날 신문마다 현대아파트 불법분양에 대해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왔다. 국회의원이 여러 명(야당도) 포함되었다면서 유독 육인수, 오제도, 김진복 의원과 내 이름이 먼저 활자화되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데 비리에 연루되다니!
아무리 내가 결백하다 해도 남편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결백하니 차별화될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내부장치가 특수 호화판인 아파트를 몇 채씩 뇌물(공짜)로 정치인과 장차관급 공무원에게 제공했다는 방송이 연일 귀 따갑게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내 돈 주고 계약한 것이어서 속으로 어떤 사람이 공짜로 그 비싼 아파트를 받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 날짜를 기억한다. 7월 5일 밤 모 방송사 기자가 전화를 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돌아가는 분위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동료의원들이 더 강경조치를 주장하고 있으며 국회의원의 수가 많아도 그중 6명은 본보기로 징계를 할 모양인데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내가 전셋집에 산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임기 6년 동안 쌓아온 좋은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안타깝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에 점잖으신 김진복 의원은 가끔 전화로 밖의 분위기를 전달해 주었다. 김 의원은 실수요자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은 당하는 동료들을 감싸주기는커녕 기율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며 더 북치고 나팔 부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며 “우리가 유탄에 맞은 격이에요”라고 서운해 했다. 오히려 야당의원들이 나를 동정하고 위로를 해주었다. 모 일간지는 같은 유정회의 모 의원이 해당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끝장”이라고 한 말을 실었다. 참으로 정계가 비정하고 험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정도인지는 미처 몰랐다.
많은 분들이 내 집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 가운데는 박한상 야당의원도 있었다. 김성진 장관도 내용을 잘 아니 걱정 말라며 남편에게 시간이 없으니 지역에서 열심히 뛰라고 전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또 이번 일로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
얼마 후 어느 리셉션에서 만난 중앙일보 홍진기 사장은 내가 전셋집에서 사는 줄 몰랐다며 안쓰러워했다. 유혁인 정무수석도 아파트사건이 남편 출마에 지장이 될 수 없다고 위로하면서도 공천 가능성에 대해서는 “김천은 복잡한 곳이라 예측할 수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김종필 총리는 “이 의원이 집장사할 사람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