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 질문에 대한 단상 (25회)

의원들이 마치 피고를 앞에 두고 큰소리치는 검사와 같은 자세로 장관을 대할 때는 보기에도 민망한 경우가 많았다. 같은 말이라도 조용히 논리적으로 따질 수 있고 그래야만 장관을 비롯하여 공무원들이 의원을 존경하고 어려워할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국회의원이면 꼭 고압적으로 고성발언 풍조가 있었다. 또 그런 의원들에게는 공무원들이 절절 맸지만 신사적으로 따지는 의원들을 경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외무위원들이 외무장관을 지나칠 정도로 호되게 몰아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외교란 내정의 연장인 만큼 대통령이 제아무리 국가를 위해 좋은 정치를 한다고 해도 당시의 제한된 ‘한국적 민주주의’를 세계무대에서 옹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 수준과는 거리가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한이 1인 숭배 독제체제와 세습체제를 외교무대에서 옹호하는 발언을 할 때 국제적 웃음꺼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그 어느 정권도 북한체제에 비하면 민주화된 정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내정책보다 외교정책에 관해서는 마음 놓고 더 큰소리를 치는 경향이다.

외무부도 오늘날에 비하면 비능률적이고 낭비적이며 후진적인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970년대 당시 함병춘 주미대사 시절에 우리가 워싱턴 방문 시 관저에 초대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함 대사 말에 의하면 그 큰 대사관에 정부재산에 대한 재고목록 (inventory list)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재산이 없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함 대사 때부터는 모든 물품에 대한 명단을 작성했다는 말을 듣고 다른 작은 규모의 공관은 더욱 억망일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보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 세계 도처에 나가있는 한국공관은 너무나도 현대화되어 다행이다.

문공위원회

외무위원회 위원들은 점잖은 거물급 의원들이 많아서 국회의 상원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러나 문공위원회는 문교부와 문화부가 소관부처였고 그 산하에 수없이 많은 기관들이 있었다. 이 위원회에서 다루는 이슈는 교육, 문화전반에 걸쳐 다양하고 방대해서 늘 회의가 다른 위원회보다 길어졌다.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힘들었고 바른 말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예총에 대한 비판을 한 후 그들로부터 부당하게 공격당하자 결국 김성진 문공장관이 대신 나에게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늘 서론이 긴 다른 남성 의원들과는 달리 나는 질문에 번호를 부쳐서 간결하게 질의를 하는 편이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한국의 중고등 남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아서 보기가 흉할 뿐 아니라,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학교에서 벌 받는다고 이발관에 가는 빈도가 잦았다. 보기에도 흉하고 금전적으로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본에 가보니 남학생들이 교복은 입었어도 두발은 자유였다. 그래서 문공위에서 머리 깎는 규정을 없애자고 유기춘 문교부장관에게 강력히 건의한 적이 있다. 그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반응이었는데 나의 임기가 끝난 후 어느 해인가 머리와 교복까지 자유화되었다. 그러나 그 후 빈곤층과 부유층 자녀들의 의상 차이 때문에 많은 학교가 교복을 다시 착용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 9대 국회본회의에서 질의하는 필자

유 장관은 배짱 있는 성격의 소유자로 기억된다. 농담도 잘 했다. “이범준 의원이 문공위로 온 후 머슴아들이 더 길게 발언을 해서 내가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던 일도 있다. 유장관은 그 후 불행히도 장기간 서울대 병원에서 투병 끝에 작고하셨다.

70년대 중반에 나는 선배인 서강대학의 김인자 교수와 함께 불어를 프랑스 신부로부터 배웠다. 그러던 77년 6월경 그 분으로부터 서울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이 한국학생들에게 200원씩 관람료를 받고 프랑스 홍보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공위원 자격으로 조사를 해보니 한・불문화협정에 의해 이윤행위는 금지되어 있는 데도 문화원이 연간 2천500만씩 챙기고 있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문화원장이 본국 정부에는 보고도 없이 그 이윤을 착복한다는 의혹을 프랑스 교포들이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문공부에 알렸고 문공부는 외무부의 정보문화국에 이 사건을 넘겼다. 그러면 외무부에서 ‘한・불문화협정에 의해 무료 영화 상영은 허용되지만 유료영화 상영은 금지되어 있으니 이윤행위는 삼가 달라’고 하면 끝이 날 일이었다. 그런데 “여성의원이 문제를 삼아서....” “영화란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등 전혀 엉뚱한 각도에서 이 사건에 접근했다. 결국 프랑스 대사관의 문정관이 본국정부에 자기들이 입장료를 받았다는 말은 빼고 영화상영이 검열관계로 금지되었다고 보고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게 되었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다.

본회의에서 30분간씩의 대정부질의를 하는데 질문인지 자기 철학을 소개하는 것인지 상대방 비방만 하러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자신들의 생각을 장황하고 길게 설명을 한 후 “본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총리의 견해를 묻고 싶다” 식의 발언이 태반이었다. 본회의에서의 대정부 질의는 솔직히 너무나 지루해 잠이 오는 시간이었다.

본회의가 끝나면 상임위원회에서 또 한바탕 재탕의 질의시간이 시작되고 그다음에는 예결위원회에서 삼탕의 질의시간을 갖는다. 그때부터 이러한 국회의 비능률적인 절차에 대해 회의를 느꼈지만 정치초년생이 그러한 잘못된 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근년에 와서 질의시간을 단축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1999년 박준규 의장이 국회 제도운영 개혁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나도 위원으로 위촉을 받아서 수차에 걸친 회의 끝에 예결위원회의 상설화 등 개혁안을 제출했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06년부터 각료 임명자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하게 되었다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각 상임위원회별로 회식이 많았다. 각종 이름아래 소그룹 혹은 대규모 모임들이 잦았고 그런 회식모임은 거의 호텔 식당이나 한정식당에서 가졌다. 그러면 사진 기자들까지 우- 따라와서 사진 찍고 법석을 떨었다. 의원들은 사진에서 빠질세라 포즈를 취하곤 했다. 그러나 사진기자들이 다 가고나면 별로 내용도 없이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모임에는 점점 가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저녁행사에는 국회 정식회의가 아니면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