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의견...

9대 국회는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그리고 야당인 신민당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원이 11명이나 국회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9명이 유정회 여성의원이고 2명은 야당의 지역구 출신인 김옥선, 김윤덕 의원 이었다. 당은 달라도 여성의원들끼리는 자주 모임을 갖고 교분을 나누며 지냈다.

설레는 마음으로 태평로 의사당에 등원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 한동안 실망이 커서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화여대 정외과 학생들에게 강의한 정치이론과 한국정치 현실간의 엄청난 괴리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무렵에 나는 포니차를 구입해서 타고 국회에 출근했다. 포니를 타고 다니면서 겪은 푸대접은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호텔이 회의장소일 때면 호텔 경비원들이 호르라기를 불며 내 차는 옆으로 가라고 신호를 했다. 태평로 의사당에 가도 포니가 경비원들 앞으로 다가가면 일단 정지를 시키는 것이다. 그 만큼 자동차 종류에 따라서 차별을 당한다는 증거이다. 자동차로 주인을 평가하는 잘못된 관행은 지속되는지 요사이는 외제차가 잘 팔린다고 한다.

의원총회

기대를 걸고 의원총회에 참석하면 당직자 몇 명이 모든 것을 사전에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모임이 끝났다. 나는 어떤 이슈나 정책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을 기대했다. 당직자들은 웬만한 강연회에는 직접 참석하지도 않고 자기들 사무실에서 듣는 특혜를 누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각종 소위원회 모임에서도 이의를 제기하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높은 분의 의도라고 하는 과잉 충성파 의원이 꼭 한사람씩 끼어 있었다.

그 당시 이숙종 의원과 나는 “아무리 엄지 손가락 되는 분의 의사라 해도 틀리면 틀리다는 우리의 의견을 올리면 되는데...” 하며 항변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상아탑에서만 있어서 너무 순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평의원들을 유치원 학생 다루듯 한다는 생각이 나만의 느낌이었는지는 몰라도 불만이었다. 한번 보람을 느꼈던 일은 문공위원회 소속 여당의원들이 모여서 동아일보 광고해약 건은 근시안적인 조치라는 우리 의견을 정부에 건의했을 때였다.

이숙종 의원이 제일 연장자인데다가 같은 전주 이 씨의 광평대군 자손이라고 해서 나에게 ‘아주머니’라고 불러주셨고 또 온화하고 침착한 성품이 좋아서 늘 그분을 믿고 의논하거나 내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의원총회의 운영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으면 이 의원은 “말조심해요. 남자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다 그런가 봐요”라고 하면서 겁 없이 톡톡 튀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시곤 했다.

북한의 한.미.일 삼자회담, 군사회담 제안을 수락하자고 남북조절위원회 모임에서 주장했으나 상아탑에서만 지낸 학자 출신이어서 너무 순진한 견해라고 일축 당한적도 있다. 북한이 군사회담을 제안해도 만나는데 시간 끌고 상호감시체제에 관한 토의단계에 들어가면 의례히 북한의 예민한 반응으로 결렬될 것이 뻔했다. 따라서 나는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회담 자체를 거부하느냐, 수동적인 정책보다는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했었다.

▲ 박정희 대통령과 (1973.)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도 있었다. 그 시절 재야인사들은 아직도 유정회를 무조건 비판하고 혹자는 마치 죄인이나 되듯 백안시했다. 그러나 유정회 의원들의 면모를 보면 전원이 무조건 친정부 인사들은 아니었다. 정치, 경제, 사회, 군, 학계, 문화계, 여성계, 노동계 등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두각을 나타내던 인재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의회주의정치에서 지역대표와 기능대표로 의회가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 할 수도 있다.

그 시절의 웃지 못 할 현상의 하나는 공화당의원들의 지역구에 연고가 있는 유정회 의원들은 그 지역에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금족령이었다. 그런 일로 양 집단 의원들 간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보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금족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역구민들의 보다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무위원회

6년 임기동안에 첫 3년은 외무위원회에, 후반 3년은 문공위원회에 배정이 되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나로서는 외무위원회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기뻤다. 또 학계에 몸담았던 나로서는 문공위원회에 속하게 된 것 역시 다행이었다.

외무위원회에서 첫 해프닝이 생겼다. 거물급인 김영삼 의원이 발언을 하게 되어 나는 열심히 경청했다.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한 그분의 분석에 대하여, 나는 발언 차례가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의견을 개진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남편이 “어쩌다가 김영삼 의원의 발언에 대해 왈가왈부 했느냐”며 그 분이 언짢아 하시니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김영삼 의원이 “국회에서는 동료의원 발언 내용에 대한 반론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노여워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갔지만 남편도 나도 사과한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국회에서는 세미나에서 교수들끼리 토론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제각기 오전 발언을 하기 위해서 간사에게 부탁을 하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늘 오후 마지막 타자로 발언을 해야 했다. 그리고 대정부 질의 시간이므로 간단하게 질문하는 줄로 생각한 나에게는 장시간 서론을 늘어놓는 의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전에 발언을 해야 석간신문 동정란에 기사화되며 장시간 발언을 해야 속기록에 남겨서 지역구의원의 경우 인쇄해서 지역구민에게 보내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욱 이해할 수 없고 기가 막힌 일은 그렇게 장시간의 질의를 하고는 오후 장관의 답변시간에는 참석을 하지 않는 의원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외무위원들이 다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김용식, 김동조, 노신영 장관 등이 외무위원회에서 대정부질의에 답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두 베테랑 외교관일 뿐 아니라 예민한 이슈를 요리조리 잘 헤쳐 나가며 답변에도 능란한 장관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떤 의원들은 그들을 가리켜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잘도 넘어간다”고 코멘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