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18회)
  제3장 부부 정치학박사 1호

금의환향

부부 정치학박사 1호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우리가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기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맞이해 주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날, 같은 분야에, 같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큰 제목이 각 신문과 잡지를 장식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에 보여주는 ‘대한 늬우스(당시의 표현)’에 우리의 이야기가 담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를 통해서 우리의 귀국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정작 우리는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어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일단 시부모님이 사는 성북구 보문동 집에 여장을 풀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경우 학위가 끝나기 전에 김동환 당시 주미 공사가 귀국하면 같이 일하자는 간곡한 권고가 있었다. 우리가 돌아 왔을 때 그 분은 공화당 원내총무로서 실세 중의 한 사람으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또 박 대통령도 방미 때 귀국하면 청와대로 연락을 하라는 말씀도 있었다. 그래서 귀국 후 그 두 분을 만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먼저 워싱턴에서 공부하는 기간에 주미대사로 있던 정일권 총리실로 인사차 들렸나보다. 정 총리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정 총리가 갑자기 비서실장을 호출하더니 “박 박사가 내일부터 내 특별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 부부박사 1호로 동아일보 1965년 6월 17일 자에 소개된 우리 부부
 
총리 특보와 이화여대 교수

우리는 10여 년간 고국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국내정치에 어두웠다. 그래서 여러 어른들을 찾아뵙고 의논하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한 달간을 기다렸다. 당시 우리 내외를 여러 모로 도와준 동양 세멘트의 이양구 회장이 총리실에서 연수하는 셈 치고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해 주었다.

한편, 정 총리가 박대통령에게 "박정수 박사는 총리실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했을 때 대통령은 어디서건 열심히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다. 결국 총리실 근무가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귀국 직후 남편의 첫 근무처가 국무총리실이 되었다. 그 당시에 만일 대통령을 먼저 만났더라면 청와대 근무가 되었을 것이고 만일 김동환 원내총무에게 먼저 인사하러 갔었다면 국회에서 정치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정 총리를 먼저 만나러간 것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 예정된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경우도 귀국 후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박사논문을 쓰고 있을 때 김활란 박사가 워싱턴을 방문했었다. 당시 워싱톤 교포사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최재창 박사 댁에서 김 박사님을 초대하면서 우리에게 모시고 오라는 부탁을 했다. 김 박사님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우리 이야기를 듣고 “여성 정치학박사 1호는 당연히 우리 이화여대로 와야지” 하시는 것이었다. 김 박사님이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잊고 있었다.
 
▲ 박사학위를 받고 아들 딸과

그런데 이대의 서은숙 이사장 서리가 한 장짜리 air letter sheet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김활란 박사님으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제 귀국하게 되느냐는 내용이었다. 자상한 김활란 박사에 대해 감격하고 즉시 돌아가는 날짜를 알리는 회신을 보냈다. 당시 이화여대에서는 학생 정원 초과 문제로 김활란 총장이 물러났고 후임으로 서은숙 선생님이 맡으면서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1965년 9월 하순에 귀국하게 되어 출강은 그 다음해 3월 학기부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은 행정부에서, 나는 대학교에서 우리의 제2의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다. 요즘은 박사학위가 세계적으로 양산되어 학위를 마쳐도 교수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하늘의 해’ 따기로 변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당시는 학위 소지자가 많지 않던 시대였기에 우리의 첫 출발은 무척 순탄했다.

금의환향이라 해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허전한 구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 대신에 친정 언니들이 막내 동생의 귀국을 기뻐하면서도 일하랴 공부하랴 아이들 기르랴 24시간이 모자라는 속에서 살다가 온 나를 보고 놀랐다. 모두 “너 미국 거지가 돼서 돌아 왔구나” 하며 안쓰러워했다. 앞으로는 좀 잘 먹고 잘 쉬고 모양도 내라고 주문이 많았다.

그러나 오자마자 또 쉴 사이 없이 바쁘게 뛰는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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