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집
밀양 박씨인 시댁은 원래 평안남도 덕천이 고향이다.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 동아일보 전 국장이며 김성수 선생님 비서실장을 지낸 김승문씨, 이종현 전 농립부장관 등이 덕천 분들이다. 그이의 외삼촌인 강익형 장로와 이운목 장로 그리고 이종현 장관은 3․1 운동과 관련, 평양 형무소에서 같이 투옥되었었고, 그 후 계속해서 일본경찰의 압박과 감시가 심해지자 이남으로 피신을 하셨다고 했다.
한편 아버님 (박세훈 장로)은 독립 의병들에게 자금 조달을 했다는 이유와 처남의 행방을 묻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던지 체포되어 한동안 옥고를 치른 후 처남이 있는 김천으로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 이는 김천 감호동에서 5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난 후 주로 황금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5남 3녀를 거느린 시댁은 외삼촌이 창립 때부터 관여하신 황금동 교회 근처에 살면서 어머님은 권사님, 아버님은 장로님으로 교회 일에 헌신하셨다. 일요일마다 어머님(강성훈 권사)은 떡이나 과일을 준비해놓고 그 집 앞을 지나가는 교인들이 들려 다 같이 나누어 먹게 했다.
김천 황금동 교회는 일제시대에 한국 기독교계의 저명한 목사님들이 많이 봉직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박 씨 집 자녀들이 목사님들의 인격과 지도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해방 후 한국 신학대학 첫 학장이었던 송창근 목사를 비롯하여 김정준 목사, 정대위 목사, 문성아 목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문성아 목사의 두 아들 익환, 동환 목사는 방학 때면 김천에 내려와서 주일학교를 지도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공덕귀 여사도 그 교회에 전도사로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엄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8남매는 모두 모태 신앙인들이다. 어머니는 가족예배를 보기 전에는 자녀들에게 아침식사를 주지 않았다. 일제시대에도 아침 예배시간에 성경을 돌아가며 읽고 찬송가를 부르게 해 형제들은 성경을 통해 한글을 익혔다. 아버지는 성격이 낙천적으로 유머가 풍부하고 온화한 성품인 반면 어머니는 성품이 강인하시며 집념이 강하고 사리가 밝은 분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형 박인수씨는 연대 영문과 출신으로 일본 후꾸오까 총영사로 복무 중 과로로 순직하셨고, 셋째 형 박윤수 씨는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학한 원자물리학 박사로 미 해군에서 장기복무를 마치고 지금은 서울대 초빙교수로 와 계시다. 막내 동생인 박덕수 씨는 미국에서 학부부터 공부하고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위로 두 형과 손위 누나 내외는 타계하셨고, 누나 한 분과 막내 여동생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형제들 중에서 넷째 아들인 그이가 가장 시원시원하고 통이 큰 성격이어서 부모님을 가장 안심시키는 자식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이가 놀다가 집에 늦게 와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을 했다. 거짓말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직접 확인한 후 거짓이 드러나자 무섭게 야단을 치셨다. 엄한 어머니는 자식들이 잘못하면 맞을 회초리를 스스로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그이는 쉽게 불어지는 작대기를 찾아오고, 어떤 아들은 가느다란 회초리를, 다른 아들은 아무 작대기나 만들어 왔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만들어오는 회초리를 보면 각자의 성격이 들어난다고 하셨다.
우리 시댁은 평남 덕천에 살 때부터 기독교 가정이었다. 개방적이고 신분개념이 없이 서민적이며 남에게 베풀며 사시는 분들이다. 손이 크신 어머님은 잔칫날이면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여 손님들이 갈 때 싸갖고 갈 수 있도록 했다. 가정부와 기사들에게도 각별한 배려를 해주셨다. 나의 친정집 분위기와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신부집
전주 이씨인 우리 집은 양반을 무척이나 따지는 구식 가정이었다. 3대 독자인 아버지 (이철하)는 충남 연기군, 어머니 (김신아)는 경기도 이천이 고향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홍천, 할아버지는 연기군 등지에서 벼슬을 하셨고 아버지는 철도청 공무원을 지내셨다. 어머니는 어려서 세자빈 간택 후보로 궁궐에 들어가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외갓집 벼슬이 우리집보다 더 높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옛날분 치고는 키도 크시고 살결이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미인이라는 평을 들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닮지 않고 나는 키도 작고 혈색이 없는 아버지 쪽을 더 많이 닮았다. 전주 이씨 광평대군 자손으로 이범석 장군, 이범승 초대 서울시장, 이범준 전 농림부 장관, 이숙종 성신학원 이사장 등이 계시다.
나의 유년시절에 우리 집에는 두 할머니가 같이 살았는데 한분은 증조할아버지의 소실이고 또 한분은 할아버지의 소실이라고 했다. 소실 할머니들은 할아버지가 부임하셨던 장소에 따라 함흥댁, 전의댁 등의 호칭이 부쳐졌다. 어머니의 성품이 워낙 인정이 많고 순하셔서 소실 시어머니, 소실 시할머니를 끝까지 모시면서 집안을 꾸려 나가셨다.
불교가정에 유교적인 요소가 많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그래서 그 이와 사귀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왜 하필이면 예수쟁이냐”라고 반대를 하셨던 것이다. 1남 4녀의 막내딸인 나는 어려서부터 샘이 많았다. 언니, 오빠가 공부할 때면 어깨 넘어 배우려고 늘 그 주변을 맴돌았다. 막대 아이스케이크를 먹은 후에는 그 막대를 잘라서 오얏李 자를 만들어 보여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딸이 많은 집안이라 아들을 낳고 싶어서 아들 이름까지 지어 놓았는데 또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3일간을 집에 안 들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 살 때 홍역으로 심하게 앓으니까 아버지가 “요건 딸이라도 똘똘해서 죽으면 아까운데...”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아버지의 남존여비 사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서른아홉 살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내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혼자되신 어머니는 1남 4녀를 훌륭하게 키우셨다. 다행히 오빠가 전기과를 나온 후 시작한 사업이 번창한 덕분에 홀어머니 슬하에서도 별로 어려운 줄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가 생전에 워낙 자식들의 교육에 유별난 정성을 쏟으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도 자식들의 교육문제에 관한한 관심이 지대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