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태(麗順事態)
1948년 10월 20일 제주도사태 진압을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여수(麗水) 주둔 국군 제 14연대 대원 중 핵심 몇몇 장, 사병(將, 士兵)이 남노당의 지령을 받고, 출동거부를 했다. 지휘계통을 청산한 다음 시내로 진출, 경찰서를 불태우고 시내 민간 좌익과 연합하여 열차로 순천(順川)까지 진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순천을 점령한 반란군은 좌익학생, 지방좌익과 혼성부대를 편성하여 구례, 벌교, 광양까지 진출해 나갔다. 이때 주요 관공서의 모든 간부를 구금하여 순천경찰서에 가둬 두고, 하나하나 심사해 처리해 나갔다.
이때 순천지방 철도국장으로 있던 넷째 숙부 희주(禧周)님이 구금되어 처단의 시간을 기다리는데 광주, 마산 등지에서 파견된 진압군의 신속한 작전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숙부님의 수기(手記)는 신문에 게재되었고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진압군에 몰려 광양 백운산(白雲山)과 지리산(智異山)으로 잠입했다. 약 반수(半數) 정도가 사살되었으나 나머지는 살아남아 6.25때 하산해서 인민군에 참여했고, 일부는 공산당 기간요원(基幹要員)으로 인민위원회에서 핵심역할을 했다.
이들이 ‘빨지산’으로 활동하던 1948년 겨울, 1949년 그리고 6 .25가 터진 1950년 6월까지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던 백운산, 지리산 주변의 주민들은 쌍방에서 공격과 납치를 당해 많이 희생되었다. 비극과 고초가 만연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들 고교시절, 이때 고향에 내려가면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념이 무엇인지 참말로 우리 민족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야만 했다.
5 .10 선거 그리고 숙부 김옥주(金沃周)의 당선(當選)
전국에 걸친 조직적인 저항과 무력 충돌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겪으면서도 5.10선거는 비교적 평화롭게 치러졌다.
일부 좌파 역사서에 의하면 ‘하늘에 잠시 비행기가 뜨고, 국방경비대와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 그리고 일부 우익단체 청년들의 곤봉으로 무장해 에워싼 투표소는 살벌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쌀 배급표를 주지 않는다는 협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갔다...’ 고 적고 있는데, 과연 전국이 다 그러했을까?
내가 목격한 투표장은 평온했고, 경찰 몇 명이 지키고 있는 정도였다. 리(里), 면(面) 단위로 투표를 장려한 것은 사실이나 배급표 운운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서는 전혀 없었다. 각 투표소는 장사진이었다.
당시 문맹이 많아 선거인단 명부대조가 시간이 많이 걸렸고, 투표용지의 입후보자 이름을 읽을 수 없으니 기호표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진행이 대단히 느렸으나 무사히 끝났다. 그때의 소득은 ‘나도 한 표다’ 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19회에 걸쳐 쌓이다보니 주권의식이 확실히 서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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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0 총선거 투표 [출처 ;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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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넷째 숙부 옥주(沃周)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고 돌파력이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인물이 좋았다. 약간 까진 이마에 훤칠한 키에 어디 내놔도 돋보이는 풍채였다. 그리고 항일(抗日)로 인해 형무소 생활을 했던 전력 등으로 우리 고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후보자 수(數) 명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 대학 출신이었고, 연설을 잘 했다.
그리고 형님인 우리 백부님의 인지도와 면장을 지냈던 이치원(李致元) 씨가 선거 사무장을 맡는 등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큰돈도 안 쓰고 무난히 당선의 명예를 안았다. 광양에서 총 투표수 26,101명 중 13,978표를 획득해 54%를 차지함으로써 충분한 격차가 있었고, 연세가 33세로서 제헌국회에서 두 번째로 젊은 의원(議員)이 되었다(출마자 : 엄정섭(嚴廷燮)~엄상섭(祥燮) 씨의 형, 김준기(金俊基), 김재후(金載厚)).
백부님은 동생이 민족진영, 한민당(韓民黨) 계열로 출마했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던지 숙부님은 무소속을 끝까지 고집했다. 성향과 인연으로 봐서 한독당(韓獨黨) 쪽이었는데 한독당에서 5.10선거를 보이콧하는 바람에 삼촌은 무소속을 택하신 것 같다.
백부님은 동생 하나 키워 중앙무대에 보내놨더니 무소속이라 친소관계가 깊었던 인촌선생에게 면목이 없었다고 하셨다.
전국 200개 선거구(選擧區) 중 제주도 2개 구(區)를 제외한 198개 구(區)에서 선거가 무사히 끝났다. 비교적 공정한 투, 개표로 부정이니 하는 뒷말이 없어 UN감시위원단에게 신생 대한민국의 자치능력을 충분히 과시했던 선거였다.
당선분포를 보면 무소속이 85석(席), 42.5%로 압도적이었다. 다음 이(李) 박사를 지지하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가 53석에 27.5%, 인촌(仁村) 중심의 한민당(韓民黨)이 29석에 14.5%, 대동청년단 12석에 6%, 민족청년단(이범석 계) 6석에 3%, 대한농민총연맹 2석, 대한노동총연맹 1석 그리고 기타로 분류되는 10석이 있었다.
첫 번째 국회로서는 비교적 대표성(代表性)이 있었다. 그리고 선거를 치르지 못한 북한을 위해 100석을 남겨 두었다.
5 .10선거 결과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명(公明)선거였다.
둘째, 무전(無錢)선거였다.
셋째, 친일파(親日派)가 배제되었다.
넷째, 부락(部落)의 원로(元老)가 여론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다섯째, 선거소송(訴訟)이 없었다. 결과에 승복하는 신사도가 있었다.
여섯째,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보통(普通), 평등(平等), 비밀(秘密)선거였다.
5 .10선거를 통해 어렵사리 남한에 신생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북은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자.
북한의 정권수립 과정은 소련 비밀문서 공개에서 드러난 것을 종합하면 일찌감치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1945년 9월 ‘친소(親蘇) 정권을 세우라’는 스탈린 지령이 떨어졌고, 이듬해 1946년 2월 정부 역할을 하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이승만의 정읍(井邑) 발언이 나오기 넉 달 전이었다.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北朝鮮人民委員會)’가 정식으로 출범했고, 1948년 2월 인민군(人民軍)이 창설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