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남한단독정부 수립과 5 .10 선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 쌍방의 노력은 2차 미.소(美蘇)공동위원회를 통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공동화(空洞化)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UN을 활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영구히 미제(謎題)로 남길 수 없고, 소련이 주도하는 외국군(外國軍) 동시철수는 미국 측에서도 반응을 얻고 있었다. 미국의 2차 대전 끝마무리를 위한 재정적 문제 등, 한반도에서의 철군은 긴급한 현안이기도 했다.
다만 「처칠」 이 말한 거대한 「철(鐵)의 장막」 속에 한국을 내던지는 일은 없어야 하고, 일본 점령통치를 어렵게 하는 배후 취약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한국문제를 UN으로 가져가 해결한다는 전략을 세운다.
이에 소련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삼상(三相)회의 위반이라고 따지며, 한반도 문제는 UN이 아니라 미.소 .한반도 당사자가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UN제기는 미국 학계 그리고 소련을 제외한 연합군 쪽에서의 법리(法理) 해석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UN총회는 가장 쉽고 명분 있는 해결책이기도 했다.
미국이 1947년 가을 제출해 11월 14일 UN총회가 채택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한국의 독립과 점령군의 조기철수
둘째, UN 감시 하에 48년 3월 31일까지 지역별로 선거 실시
셋째, 국민의회, 방위군의 창설
넷째, 감시위원회의 전(全) 국토 여행 허용
다섯째, 남북한의 대표비율은 인구비례로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UN감시단의 38선 통과를 극구 저지하자 UN 소(小)총회가 소집되어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결정하였다(1948.2.26).
단독정부 수립 반대
5.10선거의 당위성은 남한에서도 첨예한 대립과 투쟁의 실마리로 저상(沮喪)되었다. 우선 상해 임정(臨政) 출신들의 한독당(韓獨黨)은 극구 반대했고,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은 단독 선거를 막기 위해 남북협상을 제안하여 김구, 김규식, 조소앙과 홍명희, 김일성, 박헌영 등 3:3으로 한 남북 최고 정치인사들과 소위 남북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59명이 모여 「외군(外軍) 철수, 단독선거 반대」를 결의했다.
이 협상에 참가하면 북쪽의 의도에 이용만 당한다는 반대도 많아, 가는 길을 막고 야단이 났었다. 그러나 방북은 강행되었고, 5일 만에 서울로 돌아온 일행은 합의사항을 발표하였고, 5.10선거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다.
문제는 김구 선생이 당초 반탁(反託)을 주장했기 때문에 협상은 전시행위로 그치고, 북쪽에 이용만 당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협상에 참가했던 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 2대 국회에 진입함으로써 단독정부에 참가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1948년 12월 12일 UN총회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선언 한다」는 사실을 의결, 발표함으로써 김구 선생은 ‘무한히 기뻐했다’고 한다. 결국은 단독정부를 추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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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을 방문한 김구 일행을 안내하는 김일성 / 뒤쪽 김구 비서 선우진, 조소앙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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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 4.3 사태
좌익은 UN감시위원단의 입국과 단독 선거를 결사반대하고 전국적으로 2.7운동을 전개하였다. 전평(全評)이 다시 전면(前面)에 나서서 총파업을 주도하고, 통신, 철도, 전기의 마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관공서, 특히 경찰파출소 등을 공격하는 살벌한 시국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제주 4.3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48년 4월 3일 350여 명의 무장대가 ‘단독선거 반대’, ‘지원경찰과 서북청년단 추방’을 내걸고 각 지서와 우익요인의 집을 습격하는 무장 행동이 벌어졌다.
이런 결과로 제주도 3개 선거구 중 2곳에서 투표가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군정(軍政)은 5.10선거가 저지되자 군(軍) 병력과 경찰을 증원하여 제주도 진압을 서둘렀다. 이때 쌍방의 피해가 이미 상당했기 때문에 적개심은 말할 수 없이 첨예해 졌다.
파견된 군(軍) 내부에서도 침투된 남로당의 반란으로 지휘체계가 흔들리고 장교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군(軍)에 있을 때 모시던 서종철(徐鍾喆) 장군은 진압군 부사령관으로 파견되어 작전을 지휘하는데 우군에게서 날아온 수류탄에 맞아 죽을 뻔 했는데 다행히 같이 있었던 부관(副官)이 재빨리 거둬 던지는 바람에 살았다고 한다.
4.3사태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주민들의 친밀한 인간관계 등으로 무장조직의 활동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무장단체의 지휘자들은 모두가 제주도 원주민 출신들이고 일제 때 학병 등으로 군사지식이 있는데다 이념적인 무장이 확고했기 때문에 이들의 저항은 조직적이었다.
특히 많은 주민들의 호응과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5개월이 지속되고 희생자 수는 약 2만여 명에 이르러 해방 후 지금까지 정부와 대결한 저항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가 희생됐다.
나는 총리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정보실에 소속된 제주도 출신 좌병식(左炳植) 씨와 가까이 지냈다. 좌(左) 비서관은 4.3사태 때 아버지가 희생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거의 고아가 되다시피 됐다. 원체 영리하고 공부를 잘해서 주위의 도움으로 오현중고에서 계속 일등을 하고 대학 졸업 후 양정규(梁正奎) 전(前) 헌정회 회장의 선거참모로 활동했던 처지였다.
나도 숙부의 월북 때문에 언제나 견제를 받는 처지라 그와 동병상린의 관계에 있어 많은 대화를 했다. 4.3사태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좌익의 조직이 잘 되어 있던 것만은 사실인데 외지인에 대한 배타와 불신이 원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섬사람의 특이한 정서가 서북청년단 그리고 육지에서 들어온 경찰관들의 가혹하고 무례한 행위가 도민(道民)의 감정을 많이 상하게 한데서 폭발한 사건으로 풀이하고 있었다.
좌익들은 이런 도민들의 감정을 잘 이용했다. 그리고 도민이면 ‘사지사 돈지돈’ 모두 이리저리 걸리기 때문에 행동 통일이 빠르고 단합이 잘 되는가 하면 이웃을 위해서는 철저한 보안과 함구가 기본이어서 관군(官軍) 쪽에서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고 이래서 희생은 더욱 컸다고 보았다.
사태가 평정되면서 무장봉기(武裝蜂起)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사카」 근방에 원래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면서, 장차 조총련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많이 북송선을 탔고, 일본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북한에 출입하면서 김정일이를 위시하여 고위급들이 제주도에 관해 특별한 애정들 가지게 되었다는 풀이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를 민중항거의 성지(聖地)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노당(南勞黨) 제주도 무장봉기의 최고지도자였던 김달삼(金達三, 학병출신)은 북으로 탈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무장 빨치산을 이끌고 남파되 태백산에서 활동하다 1950년 3월(6 .25 직전) 토벌대에 의해 사살된 바 있다. 이와 같이 4 .3사태는 조직적인 「대한민국」 전복(顚覆)의 해방투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