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 The Peaceful Use of Atomic Energy」 선언 이후 선진국들은 우라늄 발전기술의 향상, 고속증식로의 개발 등에 힘을 쏟고 개발도상국들은 「에너지 자립」이라는 정책을 목표로 원자력발전 기술에 중점을 두고 원자력 선진국들의 기술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특히 개도국들은 단시간 내에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따라서 세계 원자력 계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본격화를 위해서는 유한한 우라늄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불가결하며, 열중성자로(熱中性子爐) 연소,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고속증식로에 의한 플루토늄 재순환에 이르는 핵연료주기 시나리오가 국제적 합의로서 기정사실화되어 정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4년 5월 18일 인도에서의 핵실험은 원자력에 관한 국제적 시선이 완전히 바뀌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원자력기술개발 후발국의 사업추진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되었다.
우선 1975년 7월, 내가 영국 하웰 원자력연구소에 갔을 때 「원자력시험로」 내부를 보여주기를 꺼려했고, 공보전시실에서 간단한 영상으로 끝내버리고 말았다. 1973년 최형섭 장관이 방문했을 때는 기술협력에 관해 매우 우호적이고, 차관협력까지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 수출국들은 London Club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견제, 통제, 중단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특히 재처리, 농축, 중수(重水) 제조 등의 Sensitive Technology가 해당이 되었다.
이제 타격을 입기 시작한 나라는 첫째 알젠틴 그리고 브라질, 한국의 순이었다. 한국은 1975년 1월 27일 CANADA로부터 용량 67만Kw의 CANDU발전로(爐)의 도입을 확정짓고 계약이 정식체결 되었다. 이어서 시험용 연구로(爐)인 NRX 도입을 위한 쌍방 합의가 거의 마무리되는 상태였는데 난데없이 인도의 핵실험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CANDU가 인도에 공급한 NRX형 시험로(爐)인 CIRUS로(爐)에 의해 생산된 풀루토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국제여론이 악화되고 CANADA는 해외이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했던 프랑스 핵주기사업도 장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예측하고 1975년 9월 22일에 프랑스에서 도입되는 시설과 관련하여 안전보장조치에 관한 한·불·IAEA 3자간 협정에 서명하고 이를 발효시켰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국제적인 용인 하에 공개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핵보유국들은 핵 확산에 겁을 집어먹고 ‘At any cost(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프랑스 정부도 미국 정부의 압력을 어지간히 버티어 나갔으나 1976년 초 드디어 항복하고, 우리에게 통고를 해 왔다. 재처리시설뿐만 아니라 추진 중이던 혼합핵연료가공 시험시설까지 어떠한 경우라도 플루토늄 Handling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계획은 지하에 잠적해 버리고 말았다.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적 감시는 나날이 거세지고 연구소의 외국과의 통상적 기술협력도 많은 제약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1975년 늦은 가을, 미(美) 대사관의 정치 담당 참사관이라는 사람이 공릉동 연구소 본관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에 관한 인적사항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과학기술처와 KIST를 방문하면서 알아봤으리라 생각했다.
첫째는 프랑스와의 재처리에 관한 기술협력에 관한 사항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리에 진행하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을 위한 기초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협력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핵무장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런 후 일주일이 멀다하고 찾아와서는 「모니터」를 반복하고 연말쯤에는 드디어 프랑스와의 기술협력 전반에 관해, 특히 재처리의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76년 3월 박대통령의 대덕단지 시찰과 함께 약간 불씨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면서 미(美) 대사관의 감시는 한층 강화되었다. 이제는 아마도 외국기술 도입의 길은 차단되었으나 한국 독자기술로 계속 핵개발을 추진할 것이라 의심을 하고 있었다. 소위 「범죄집단(Criminal Entities)」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본국의 지령에 의해 주한 미국대사관은 총력을 경주하여 핵개발 저지에 나섰으며, Porter 대사 시절에는 청와대까지 도청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1976년 8월 말경 업무 보고 차 오(吳) 수석을 방문한 적이 있다. 수석실에서 보고를 받는 것이 원칙일 터인데 나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더니 간단하게 설명하라는 것이다. 이때 도청장치 우려 때문인 것을 직감했다. 국무성은 급기야 한국의 핵개발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핵물리 전문가인 Stellar 박사와 Sttaf 3, 4명을 보강한 과학기술참사관(Science Attache)을 미(美) 대사관에 파견하게 된다.
|
|
| ▲ 미 대사관 요원이 원자력연구소에 수시로 방문해 현황청취를 하고 돌아갔다 (소장과 나) |
|
이런 와중에서 Ford 대통령이 떠나고 Carter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감시와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미국 「아르곤」 그리고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의 통상적인 기술 및 연구협력도 소원하게 되고 요원의 연수파견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Carter 대통령은 미국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핵잠수함 함장을 지냈고, CANADA Chalk River에 있는 특수연구로(爐) NRX에서도 다년간 근무한 적이 있어 미국 정치요로에서는 자신이 가장 핵의 위력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정도이다. 대통령 취임 후 핵문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감축 문제까지 맞물려 한미 관계는 지금가지 볼 수 없었던 긴박한 상황으로 돌입한다. 이런 혹독한 감시와 간섭은 박(朴)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1979년까지 계속되었다.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던 우리들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핵개발연구를 정책상의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또한 최대한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들은 다소 과대 포장 했던 면도 있었다. 우리의 활동 모두가 그쪽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당시 얼마나 순진했던 지가 다음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1975년 1월 월성1호기 CANDU형발전로(爐) 67만Kw짜리를 CANADA로부터 도입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계약이 성립되어 축하 Reception을 시내 호텔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 전경련(全經聯) 회장이었던 김용완(金容完) 선생이 참석한 Canada 대사에게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다. 절대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을 「조크」식으로 한마디 하자, 대사는 인상이 싹 바뀌면서 옆쪽으로 몸을 돌려버리고 마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얼마나 우리들을 아연케 했는지 모른다.
CARTER 대통령이 취임하고 바로 발표한 「신(新)핵에너지정책」으로 인해 그동안 핵주기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던 몇몇 나라들은 계획을 완전 포기해야만 했다. 일본과 독일은 Breeder개발을 목표로 일관되게 해왔고 국제적인 공공의 의무를 지키는 나라로 간주해 감시감독을 IAEA에 의뢰하는 수준에서 해왔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에 와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바로 뒤따르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공 그리고 많은 돈을 들여 일찌감치 치고 나갔던 대만 등은 모든 계획을 중단했고, 공산국이던 폴란드, 루마니아도 중도에 손을 털고 만다. 이들 나라들이 지금 모두 핵 능력을 가졌더라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핵개발부분을 마감하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이 그렇게 집요하게 무례할 정도로 우리를 감시하며 핵 확산을 저지하려 애써왔는데 왜 북한이 그동안 1차 핵실험, 2차 핵실험을 끝내고 그리고 3차 실험까지 넘보는 이 지경에 오도록 방치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많은 징후가 노출 증명 되어졌고 HEU 같은 것은 바로 관계했던 파키스탄의 핵개발 총수가 모든 증거를 제시하며 양심선언을 했었다.
그리고 1990년 세미나 차 미국 Central Con-necticut 대학교 일행과 소련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북한에 대한 동정은 무조건적인 것을 확인하고, 아마도 북한 학자 그리고 연구 요원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많은 자료와 기술이 그동안 넘어갔을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도 그 막강한 정보력과 Power를 가진 미국이 어떻게 그 장구한 세월 북한의 핵개발을 Shadow boxing만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11년 8월 이 회고록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보면, 장인순(張仁淳) 전(前) 원자력연구원 원장이 한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현재 우리의 원자력기술은 핵무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임에 틀림이 없다. Super Computer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북쪽보다 훨씬 정밀하고 다양한 유형의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손발이 묶여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