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이전(移轉) 문제는 사실상 1948년 정부수립 때부터 문제가 되어 왔으며, 예산 때마다 논의는 만발했으나 일과성 걱정 정도로 끝나곤 했다. 동숭동, 소위 대학가(大學街)라고 하는 데는 일제 때 의학전문(醫學專門), 법학전문(法學專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다 국립시험검사소(國立試驗檢査所)까지 몰려있어 거의 포화상태였다.
국대안(國大案 : 국립 서울종합대학교 설립안)의 확정으로 서울대학교의 본부(本府)가 위치하고는 있었으나 예과(豫科)는 청량리역 앞, 상대(商大)는 종암동, 공대(工大)는 공릉동 그리고 농대(農大)는 수원에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신입생들의 공통과목, 교양과목 등의 통일된 학사관리(學事管理)가 불가능했다.
명칭만 ‘University’이지 20년을 College로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제 규모도 커지고 완전히 새 옷을 지어 입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문교부(文敎部)는 매년 예산당국(豫算當局)에 이전(移轉)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당장 민생(民生)이 문제라면서 한가한 소리 말라고 일축하곤 했다. 이 문제는 연합된 System work로 풀어가는 장기사업(長期事業)일 수밖에 없었다.
6.3사태 이후 학원가(學園街)의 민주화(民主化) 열기가 고조되고 Campus를 벗어나 가로(街路)에서 시위하는 풍조가 점차 잦아지고 있었다. 시위가 동숭동 대학가에서 시작되면 근방 종로5가(街) 그리고 종로4가(街)의 교통이 막히고 만다.
그런 상황 때문에 혹자는 데모를 막기 위해서 관악산 자락에 서울大를 이전했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전부를 설명하기에는 좀 미흡하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의 소요(騷擾)는 이전(移轉)의 이유 중 10~15%에 불과하고 이전(移轉)의 불가피성(need)이 지난 20년간 꾸준히 이어온 것이 80~90%였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학생 데모는 이전(移轉)을 다소 일찍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지 그 이유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관악산 캠퍼스 정문 입구만 막으면 독안에 든 것처럼 빠져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문의 경찰을 피하는 길은 관악산 정상을 넘어 안양 쪽으로 빠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개울 따라 신림동으로 빠지고, 낙성대 쪽으로 우회해서 빠지는 길이 또 있다. 그리고 유신반대 데모 때 서울대 학생들은 교내에서보다는 주로 노량진, 영등포 등지까지 나와서 데모를 했다.
여하튼 서울대학교 이전(移轉)문제는 꾸준히 상층부에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1968년경 우리 정무실(政務室)에서도 예비답사가 필요한 것으로 이야기가 돌아 김창희(金昌熙) 비서관과 나는 태릉(泰陵) 일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태릉 육사(陸士) 골프장의 정(正)Member로 자주 다녀 그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고, 군(軍)에 있을 때 모시던 분들을 따라 행사(行事) 때 육사(陸士)를 자주 찾아 갔었다.
Golf장(場)이 약 20만평, 육사 연병장, 교사(校舍) 등이 30만평, 인근에 서울 공대(工大) 그리고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敷地) 등을 합해 약 100여만 평의 거대하고 넓은 평탄한 개활지가 Campus로 조성될 수 있다. 그리고 태릉의 수림(樹林)을 공원으로 조성할 수 있고 경춘선(京春線) 철도를 이용하면 접근이 아주 용이한 지역이었다. 이만한 정도의 지점(地點)이 서울에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Havard, Princeton, 미(美) 남부의 Emory University 등지에 가보면정문은 형식적으로 하나 있으나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개방도시가 바로 Cam-pus인 것이다.
태릉은 지형(地形)이나 위치에서도 그렇고 국유지(國有地)를 활용하기 때문에 토지의 매수, 보상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경제적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정권(政權)의 버팀목인 육군(陸軍), 육사(陸士)의 반응이 최후의 난관이라고 생각했다. 육사(陸士)는 군(軍)의 간성(干城)을 양성하는 기관이고, 태릉 골프장은 당시 국내 유일의 퇴역, 현역 장성(將星)들의 놀이터이고 박(朴) 대통령도 자주 이용했던 장소였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대와 담 하나 사이로 원자력연구소가 있었는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시절에 도입한 TRIGA MARK Ⅱ 원자로(原子爐)가 있어 공대(工大) 학생들에게도 실습을 위한 최적의 조건에 있었다. 그리고 나의 군(軍) 생활에서 자주 만났던 육사 9, 10기생(期生)의 피맺힌 증언도 나로 하여금 육사(陸士)를 한강 이남으로 꼭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6 .25가 터지자 급한 나머지 육사 생도 전원을 동두천, 의정부 근방의 남침(南侵) 주력군(主力軍) 앞에 배치하여 생도들을 참혹한 죽음에 직면케 했다 한다. 군(軍) 요로(要路)에서 6.25 남침에 대한 상황판단을 잘못해서 좀 규모가 큰 송악산(松岳山)전투 정도로 보았던 모양이다.
「볼세비키」전쟁에서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보루인 어린 육사 생도들을 모조리 옥쇄(玉碎)시킨 사건의 재판(再版)이었다. 일제 때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교장까지도 군(軍)에 소집해 전선으로 내모는 국가 초비상사태에서도 공과대학(工科大學), 자연계(自然界) 학생들은 군수공장(軍需工場) 등지에서 일을 시켰으며 전선(前線)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6.25 전쟁 때 공군(空軍)과 해군(海軍)에서 유능했던 공학도(工學徒), 과학자(科學者)들을 군속(軍屬), 현지임관(現地任官) 등의 편법으로 보호했던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나라는 망해가도 그 나라를 복구해서 새 나라를 만들 인재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전 부지선정 문제로 돌아와 태릉을 제외한 강북(江北)쪽의 후보지는 정말로 없었다. 삼송리를 넘어 문산 방면으로 찾아 봐도 서오릉 근처가 있으나 강북에 대한 「알레르기」가 대단히 심했던 때였다.
관악산 근처의 골프장이 일찌감치 거론되었으나 개활지도 그리 크지 않고, 악산에다 접근로도 매우 옹색한 곳이었다. 제일 큰 면적이라 하드라도 관악골프장 약 20만평 정도로는 너무 좁고 옹색한 부지였다. Green fee가 싼 맛으로 골프하러 가끔 가 봤는데 모든 Course가 비탈진데다가 전혀 장래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관악을 후보지로 사실상 예정하지를 않았다. 대충 정리를 해서 태릉(泰陵)을 적지(適地)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朴) 수석(首席)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떼었다. 타 부처(他 部處) 전출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부처 간(間)의 소관쟁의(所觀爭議)에 있어 적극적인 쟁의(爭議)든 소극적인 쟁의(爭議)든 조정(調整)이 필요한 일들이 자주 생기곤 했다. 소양강댐 문제 등 대소(大小) 조정 문제를 총리(總理) 정무실(政務室)에서 잘 처리해서 이 기능이 법제화(法制化) 필요가 생기고 그 결과 정무실이 확대 개편되어 행정조정실(行政調整室)이라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조직부서가 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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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서울대학교 부지는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기공식 모습이다 [출처 ; 서울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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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이전 문제는 그 후에도 몇 년을 끌어갔다. 청와대에서도 본격적인 작업은 하지 아니하였지만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일로서 구체적인 작업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박(朴)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1968년 2월 1일 기공식) 때문에 자주 헬기를 타고 관악산, 청계산 위를 날아다니면서 그쪽 지형을 유심히 관찰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총리실 산하에 새로 조직된 행정조정실에 첫 과제로서 작업지시가 떨어졌다.
초대(初代) 실장인 박승복(朴承復) 씨는 그간의 검토 내용을 정리해서 곧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했다. 박(朴) 실장의 회고록 「장수경영의 지혜」에 서술된 그때의 일들을 여기에 인용해 보고자 한다.
「나와 행정조정실에서 올린 안(案)은 첫째 태릉, 둘째 관악, 셋째는 수원으로의 이전이었다. ....... 마침내 이전안 세 가지를 대통령께 보고한 후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다.
‘각하, 외람된 이야기 하나 올리겠습니다. 제가 영국 옥스퍼드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가보니 넓은 평지에 학교를 조성하여 캠퍼스에 울타리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공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학문은 그런 자유로운 곳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앞으로 서울대는 건물도 많이 지어야 할 터인데 관악으로 가면 발전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안(案)은 태릉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미 예상한 바이다. 사실 나는 박 대통령이 서울대를 관악산으로 옮길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나에게 그 일을 지시한 것은 나름의 의중이 있다고 판단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검토한 결과 관악을 포함한 안을 올렸던 것이다.
예상대로 며칠 후 ‘박 실장, 서울대를 가능한 한 빨리 관악으로 이전시켜!’ 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지시를 받자마자 나는 일사불란하게 이전 계획을 추진했다. 그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던 나로서는 당시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서울대 이전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론이 났고, 돌이켜 보면 좀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