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金炫玉) 시장(市長)은 육사(陸士) 3기생 출신으로 5.16 당시 부산 항만사령관이었으며 혁명이 나자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으로 부임하고, 연이어 부산시장으로 임명되었다. 성격이 정열적이고 부지런해서 부산시(釜山市)의 가로정비(街路整備) 등 도시사업을 성과 있게 수행해 나갔다.
그는 5.16 때 박정희(朴正熙) 장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일 등으로 신임을 받고 있었고, 윤치영(尹致英) 씨 후임으로 서울특별시장(特別市長)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부임하자마자 「도시(都市)는 선(線)이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교통소통을 위한 대대적인 가로(街路)정비 사업에 착수했다. 첫째 작품은 육교와 가드레일 설치,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 공사 그리고 구부러진 도로 펴기와 윤(尹) 시장 때 착공했던 청계천 육교(陸橋)의 추진 등이다.
이런 사업을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당시 시(市)의 1년 예산(일반회계)이 약 3억 원 정도인데 4차(次)에 걸친 추경예산(追更豫算)과 기채(起債)를 더해서 연말(年末)에는 10억(億) 예산이 된 것이다. 추가 예산이 본예산보다 3배(培)나 크고, 따라서 세입(歲入)에 무리가 많았다. 시세(市稅)의 확충과 놀고 있는 시(市) 소유 부동산을 과감하게 매각하는 방법으로 자원을 조달해 나가면서 자연히 예산승인 권한을 가진 총리실과는 항상 마찰이 생겼다.
합동예산심의위원회(合同豫算審議委員會)에서는 ‘자동차가 사람을 비켜 가야지,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다니는 가로(街路) 행정은 인권(人權)을 무시하는 것이다’ 등 육교(陸橋) 설치에 위원들의 반대가 빗발쳤고, ‘서울시민이 목장의 동물이냐?’, ‘보도(步道)가에 가드레일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은 도시미관을 해친다.’ 등 많은 반대가 있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박승복(朴承復) 수석의 ‘건전재정(健全財政)’ 주장과 충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김(金) 시장은 막무가내였고 실무진(實務陣)에서 반대하면 총리에게 직접 가서 호소하고 종종 청와대에 직접 건의해서 밀어 붙이는 일도 있곤 했다.
연말 예산심의를 앞두고 시(市) 예산실무자들의 예비설명을 듣기 위해 시(市)에 갔더니 김(金) 시장이 홀연히 나타났다. 나와는 구면(舊面)의 처지였다. 내가 모시던 서국신(徐國信) 씨와는 육사(陸士) 3기(期) 동기였고 서종철(徐鍾喆) 장군과는 같은 경비대 출신인지라 당시에 자주 찾아 오셨었다.
나를 보자말자 “김(金) 비서관, 예산은 간단해. 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하면서 당신의 핵심사업 약 열개 정도를 구두로 줄줄이 나열하면서 숫자 하나 틀리지 않는다. 매우 기억력이 좋고 사업의욕이 대단한 분으로 생각되었다.
김(金) 시장의 의욕을 뒷받침한 것은 시(市) 예산부서에 당시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이다. 일제(日帝) 때 일본 「와세다」大 정경학부(政經學部)를 나온 김영준(金永俊) 예산과장(후에 부시장(副市長)이 됨), 윤백영(尹伯榮 : 일반회계 담당) 예산계장은 법대(法大)에 행정고시(行政考試) 출신이었고, 나의 고교 1년 후배이며 서울대 상대(商大) 출신인 서연호(徐演浩) 씨가 특별회계 담당으로서 팀웍이 대단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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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옥 서울시장이 종로구청을 방문해 업무를 보고받고 있다 (1967. 1.31.) [출처 ; 서울시 . 서울사진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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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호(徐演浩) 씨는 내가 원자력연구소에서 행정, 관리의 기초를 잡을 때 차장(次長)으로 초대했고 후에 실장(室長) 자리를 물려주고 했던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이 세 인재(人才)들은 김(金) 시장의 사업을 충실히 뒷바라지한 분들이다.
청계천의 판자촌은 마지막 이전(移轉), 정비를 끝냈고 여의도에는 윤중제를 축조해서 홍수를 막고 신도시 개발을 해 나갔다. 건설비가 부족하니까 땅을 조성해서 건설업자에게 땅으로 지불한 실물(實物) 보상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남서울 개발에 대한 구상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동부이촌동의 대단위 아파트단지 그리고 여의도 시범아파트단지 같은 서울의 아파트 개발이 김(金) 시장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의욕이 너무 앞서고 일시에 많은 일을 해치우려 하다 보니 결국 끝 무렵 큰 하자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같은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例)이고 그것은 박승복(朴承復) 수석이 몇 차례 지적하고 사고를 미리 예측한 사건이었다.
서울시정(市政)의 골칫거리 중 하나는 7, 8월의 한강(漢江) 범람으로 인한 이재민의 발생이었다. 장마철이면 한두 번, 용산과 마포 일대의 저지대(低地帶)는 반드시 물바다가 된다. 한강 뚝방과 유수지 근처의 불법 판자촌은 일시에 홍수에 쓸려 내려간다. 수백,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면 인근 학교 등에 분산 수용하여 구호양곡으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9월에 학생들이 개학하기 전에 이재민을 옮겨야 하는데, 이주대책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성동구 성수동, 중랑천 뚝방 등지로 옮겨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으나 보다 항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서 상계동, 다음으로 봉천동 그리고 성남(城南) 등지의 공공용지(公共用地)를 물색해서 천막을 치고 이주시켰다.
이재민이 발생하여 학교시설 등에 수용하면 총리(總理)는 위로 차원에서 순시를 한다. 정착촌이 마련되면 거기 찾아가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 있었다. 따라서 시(市)나 총리실(總理室)은 항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노심초사하고 있었고, 마지막 이재민 이주지역인 성남(城南)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 졌다.
김(金) 시장은 약 3년간 사심 없이 많은 일을 했다. 생활도 청빈해서 부산시내에 주유소를 하나 얻어 근근이 생활해 나갔다.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임한 김(金) 시장은 당신의 꿈이었던 중학교 교장직(校長職)을 택하여 낙향했다. 경남 양산(梁山)에 있는 이름 없는 중학교 교장에 취임하고 정열적으로 학생들을 길러냈다.
처음 교장(校長)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김(金) 시장 또 Show 한다.’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분의 「무지개꿈」은 육영사업이었다.
그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있다가 진주중학교 소사(小使), 심부름하는 일자리를 얻어 들어갔다. 청소하고, 시간 맞추어 종 치는 일이 주(主) 임무였던 모양이고, 언젠가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교사(敎師), 교장(校長)이 되어 보는 것이 그분의 꿈이었다. 불행히도 소위(일본의 억지 조사)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것이 일어나자 일군(日軍) 사병(士兵)으로 입대한 것이 군(軍)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지 뜻은 언제나 학교에 두고 있었다.
그분 밑에서 국장, 부시장을 지냈던 배성환(裵聖煥) 씨와 함께 양산군 그 중학교에 나는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싣고, 배(裵) 부시장은 발전기금 금일봉을 마련해서 찾아간 일이 있다. 대단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처음에는 월급도 반납하고 좋아했던 골프도 완전히 중단하며 교육 사업에만 매진해 있었다. 그리고 항간에서 Show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이 학교에서 뼈를 묻겠다고 우리에게 공언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뜨셨다.
「불도저 시장(市長)」으로 별호(別號)가 붙은 이분은 여생을 가장 정리된 모습으로 육영사업에 투입하여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 수도(首都) 근대화 여정에 공헌한 10大 인물 중에 한사람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 10대 인물이란 내가 접촉한 많은 주변인사 중에서 내 나름대로 선정한 분이라는 것을 첨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