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끼리의 대화의 장(場)이 되어갔다. 즉 우리 육군본부 정보참모부(情報參謀部) 참모와 미군 정보계(情報界) 인사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통역 없이 직접 대화가 되는 나에게 비교적 많은 질문을 해왔다. 8군 AIU(Army Intelligence Unit)의 한 장교가 접근하더니 박정희(朴正熙) 씨의 사상적인 고배에 관해서 한국군 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그리고 김종필(金鍾泌) 부장의 가족관계에 대하여, 여러 질문을 해 왔다.
그동안 상당한 조사를 했던 것으로 느껴지던 질문이었다. 역시 사상(思想), 이념(理念)적인 면에서 미(美)측에서 이분들에게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미 정보기관에서는 돈과 사상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하다. 전향(轉向)했다, 개과천선(改過遷善) 했다, 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용어일 뿐이라고 본다. Top Secret(일급비밀)을 취급하던 사람이라도 가정불화로 이혼을 하면, 그 지위를 면(免)하게 한다. 심지어 방위산업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도 이혼하면 CU Clearance(신원조회)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 기관(機關)의 전통이다. 따라서 우리 혁명주체의 몇몇 분에 대한 불신은 상당한 기간 동안 최종적으로 입증될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안다.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한 혁명공약은 일시 위장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러한 흐름이 1963년 10월, 제 5대(代) 대통령 선거에 Major issue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5대(代) 대통령 선거를 관전(觀戰)해 보면 농경사회의 막둥이 세력과 과학적인 조직 관리를 공부한 신진세력과의 용호상박전(龍虎相搏戰)이었다. 공화당(共和黨)의 승리는 농경사회에 대한 Adieu(안녕)을 의미하고 산업화사회의 길목에 진입했다고 보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양당(兩黨)의 전략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여당인 공화당(共和黨)은 신진세력에 의한 조직력과 당료(黨僚) 우위의 1930년대 Soviet 공산당 그리고 독일의 Nazi당(國家社會黨)의 Model을 참고했다. 지방조직에 사무국장 제도, 즉 이원화(二元化) 조직을 도입함으로써 지방 침투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가능했다. 그리고 중앙당 차원에서는 미군에게서 배워온 기획관리, 통제(Comptroller System)를 적절히 구사해 매일매일 심사 분석을 통해 다음날의 대응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해나갔다.
그런 반면 야당 윤보선(尹普善) 후보 진영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언론을 이용하면서, 지방의 보수적 유지(保守的 有志)들을 파고드는 정도로 ‘양반 샌님’ 선거를 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드라도 치러진 10월 15일의 투표에서 박(朴) 후보는 15만 6천표라는 박빙의 차이로 당선됐다. 아슬아슬한 선거였고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근소한 표 수 차이라 하겠다.
대통령 선거는 얼마 전의 3 .15 부정선거 등의 쓰라린 경험 등으로 비교적 자유스러운 선거였다. 그리고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젊은 세대는 박(朴) 후보를 지지했고, 보수층은 윤(尹) 후보를 지지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목포시와 신안군 등 호남에서 경상도 출신 박(朴) 후보를 지지하는 표가 더 많이 나와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때만 해도 동서, 남북의 골이 별것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골돌히 생각하고 음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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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대 대통령 취임식 [출처 ; 대통령 기록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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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적시(摘示)해야 할 것은 박(朴) 후보 유세반(遊說班)에 참신한 새 인물을 기용, 투입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교육계의 원로인 이효상(李孝祥) 씨 당시 야성의 언론 출신 이만섭(李萬燮) 씨 같은 분의 유세 참가는 완전히 윤(尹) 후보 진영의 허를 찔렀다. 볼거리, 들을거리를 제공했던 셈이다.
결과는 공화당 박 후보가 4,702,640표로 46.6%의 지지(支持)를 획득했고, 윤(尹) 후보는 4,546,614표로 45.1%의 지지를 얻었다. 아슬아슬했다.
6대(代) 국회의원 선거(國會議員 選擧)
공화당은 당초 당료(黨僚), 사무국(事務局)을 중심으로 민(民)의 대표라기보다는 당(黨)의 대표자 개념으로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원화 조직(二元化 組織) 개념의 첫 도입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理想)이지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 걸맞지 아니하였다. 특히 박빙으로 승부가 결정 난 대통령 선거를 치룬 뒤에는 현실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공화당 공천이 시작되었다. 지방 여론과 정보 보고, 사무국 보고 등을 종합해서 일부 취약한 지역에는 기성정치인 또는 관료 출신을 당선 가능성 여부에 따라 옹립하는 다시 말해 모셔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아버님은 처음 공화당과는 거의 선(線)이 닿지 않고, 오히려 야당 특히 정운갑(鄭雲甲) 선생이 이끌던 국민당(國民黨)쪽에 접(接)하고 계셨다. 그리고 선거구인 광양, 구례에서는 젊은 군수(郡守) 출신이 당(黨) 사무국장을 하면서 공천 받아 출마를 결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화당 영입 케이스로 일찍이 주목을 받은 김성곤(金成坤) 씨와 노재필(盧載弼) 씨는 아버님과 가까운 분이었다. 그리고 아버님을 위해 지역에서 운동하는 분들도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당신께서 당선 가능성이 1위(位)라는 정보 보고가 있으니 기필코 공화당의 공천을 받으면 아주 수월한 싸움이 되리라고 재촉이 빗발쳤다.
그리하여 김성곤(金成坤) 씨와 노재필(盧載弼) 씨와 자연스럽게 면담을 하셨다고 한다. 김성곤(金成坤) 씨가 아주 강력히 공화당에 입당할 것을 종용하면서 관료 출신 특히 우편, 통신 계통의 「테크노크래트」로서 영입할 명분이 충분하다면서 총대를 메겠다고 하셨던 모양이다.
정운갑(鄭雲甲) 선생 등과의 인간관계 등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다. 가족회의가 열리고 숙부님들도 공화당 입당을 찬성하시고 해서 그리 하기로 결심을 하시게 되었다. 정운갑(鄭雲甲) 선생은 매우 걱정을 하면서 친구의 의리에 금이 갔다고 하실 정도로 섭섭하게 생각하신 모양이다.
여담이지만 10년 후에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鄭) 선생님의 3남(男)을 내가 우겨 원자력 계통의 직장에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자식으로서 선대(先代) 두 분의 거리를 좁혀 드린 것으로 생각해 지금도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다.
공천 경쟁이 한참이던 때, 평소 존경하던 친우 이만섭(李萬燮) 씨와도 상의했다. 그분은 아버님 입당에 대하여 환영하고 이어 공천문제에도 적극 노력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