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학기말시험도 다 치르고, 논문도 모두 접수했다. 드디어 마의 고개인 Comprehension test(교수들과의 대질신문)가 다가왔다. 우리 석사과정 동기 18명은 2일간에 걸쳐 차례로 입장 4명의 과 교수 앞에 앉아 약 20분 정도 대질신문을 받는다. 첫째, 논문에 관한 사항 그리고 현 국제 정세에 관한 일반상식 등 다양한 질문을 하고 토론을 유도한다. 나에게는 논문에 관한 Minor한 문제와, 한국전 휴전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끈질긴 저항과 반공 포로의 석방문제에 관해 질문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대화를 유도하는 형식이었다.
대충 대화가 끝나자 과장 Dr.Jyont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내밀면서 “Congratulations!” 한다. 드디어 통과가 된 모양이다. 말할 수 없이 홀가분했다. 다음날 발표를 보니 2명 탈락이었다. 위탁교육을 온 미(美) 공군 소령과 그리스 출신 변호사였다. 졸업 전날 모자와 가운이 지급되고 예행연습까지 끝냈다. 신청했던 45$짜리 학교 졸업기념 반지도 지급되었다.
졸업식에는 Stevens 교수 내외와, House party때 딸 Cathy를 빌려주었던 Gardner 내외가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Undergraduate, Master 그리고 Ph. D 순으로 졸업장을 수여한다. 이사장, 총장 등 학교 간부가 일렬로 단상에 서서 약 1,000여 명의 졸업생 전체에게 증서를 수여하고 일일이 악수를 한다. 한국 대학에서의 경험처럼 모자와 가운도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졸업식에 참석하고 졸업장도 개별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학과별로 단체 수여를 했다. 너무 대조적이었다. 역시 졸업식의 Highlight는 저명인사의 긴 축사(祝辭)인데, 나의 졸업 때에는 펜실바니아 주지사였던 Scranton씨였고 명예 박사학위가 수여되었다.
드디어 1년여 만에 다시 Easton의 Stevens 댁으로 복귀했다. 시원섭섭했다. 이제는 귀국준비를 할 차례다.
Summer Job
막상 졸업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지는 느낌이었다. 금년 내로만 돌아가면 되겠지 하는 여유마저 들었다. 여름방학 동안 일자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노신사 Shephard씨가 딴데 가지 말고 자기 집을 Painting(도장)하고, 여름방학 3개월을 같이 보내자고 하는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Stevens 가족도 좋다고 했고 이제는 귀국 여비 마련으로 Summer job의 목적이 바뀐 것이다. 500불의 Project였다.
노신사가 이미 Pro에게 맡겼을 때 어느 정도 지불해야 할지 견적을 받아 본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공정한 대가였다. 유학생들이 특별한 기술이 없을 경우 방학 3개월 동안 열심히 벌어봐야 숙식, 용돈을 빼고 나면 400~500불 정도를 손에 쥐고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숙식이 해결됐고 여행비도 필요 없으며, 재료비만 들이고 남은 것은 나의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우선 교외에 있는 거대한 창고형 건설자재 전문 매장으로 갔다. 약 5,400평방피트(150평)의 주택으로 외벽만 백색으로 도장한다 하니 재료가 척척 나온다. 백색 에나멜 열 통, 희석용 터펜타인(송진 휘발유) 다섯 통 그리고 스크레이퍼, 브러쉬, 걸레 등 일습이다. 도매가격으로 100불정도의 자재비가 지불되니 현장까지 Pick up 트럭으로 운반까지 해준다. 사다리도 문제인데 다행히 옆집에 건축 시공업자가 살고 있어 부탁했더니, ‘No problem’ 하면서 큰 것 작은 것 두 개를 가져다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모든 것이 준비 완료다.
다음날부터 스크레이퍼로 벗겨진 페인트를 긁어내고, 쇠 브러쉬로 문지른다. 큰 사다리는 거의 3층 높이까지 올라간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위험한 작업인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다. 옆집 친구가 쳐다보더니 “몸을 사다리에 걸고 해야 안전하다”며 장신구를 갖다 준다. 얼치기 도장공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 작업을 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하고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된다. 노신사는 가끔 작업하는 나를 쳐다보며 격려를 한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까지는 절대 작업을 못하게 한다. Heatstroke에 걸리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이런 염려 덕에 쉬어가며 작업을 해 갔다.
1차 도장이 끝나면 2차 도장을 해야 Finish가 된다. 제일 문제는 높은데서 작업을 할 때 그 거대한 사다리를 옮겨가면서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옆집 고등학생을 불러 도움을 받거나 건축업자의 협조로 해결해 나갔다. 모든 것이 억지이지만 일은 잘 진척이 되었다.
하루는 첨탑 꼭대기 약 3,4층 높이에서 작업을 하는데 Shephard씨가 나타나더니 그 부분은 위험하며 대학에서 집을 인수한 후에 알아서 할 것이니 내려오라는 성화다. “당신은 학교에 돌아갈 돈이 적어진다면서 오렌지 주스도 안 먹는데 거기에 부실하게 도장하면 집값이 떨어진다” 고 했더니 “요사이 증권 시세가 좋아졌으니 문제가 없다” 고 한다. 그 애교심에 탄복했다.
쉬엄쉬엄 작업한 것이 40여일 만에 완전히 끝이 났다. 내가 봐도 대견하고 도장도 Pro에 버금갈 만큼 깔끔했다. 완전히 새 집이 된 것이다. 노신사도 만족했다. 계약금 100불을 제하고 400불을 받아야 하는데 500불을 쥐어주면서 100불은 귀국여비 보조금이라고 한다.
노신사와 같이 있는 사이 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당뇨가 심한데 가끔 기억력이 쇠해서 「다야비더스」 주사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헛갈리다가 그만 실수를 한다. 몸에 엄청난 경련이 일어나고 금방 숨이 끊어질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곧 회복이 되지만 경련 중 부딪히거나 하면 뇌진탕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시립병원에 급히 연락을 하면 구급차가 달려와 처방에 따라 설탕물을 먹이거나 혹은 주사를 놔 주면 거짓말처럼 금방 정상으로 돌아온다. 노인시설에 가시도록 권유하지만 “Over my dead body! 죽을지언정 못 가겠다.”하신다. 미국에서도 독거노인들의 말년이 이렇듯 불쌍하다.
Washington D. C 방문
제6관구사령부(第6管區司令部)에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내던 미 고문관(美 顧問官) Andrews 중령이 Washington D.C에 거주하고 있었다. 귀국하기 전 D. C에 들러 구경하고 가라는 초청이 있어 버스로 내려갔다. 여행 도중 Baltimore 항만을 지나가는데 물 위에 거대한 유조선 같은 탱크가 수십 개 떠 있었다. 버스 운전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항만 밑으로 터널을 축조하는데 사용하는 구조물이라 했다. Tank에 침수시켜 해저에 가라앉힌 다음 4차선 해저터널이 된다고 한다. 당시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토목공사였다.
D. C에 도착한 나는 Andrews 가족의 환대를 받았다. Arlington 시에 살고 있어 국립묘지에 들러봤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묘원(墓園)은 잘 유지 관리되어 있었다. 독립전쟁, 남북전쟁, 1, 2차 대전 그리고 6 .25 전쟁까지를 망라한 묘역은 미국의 역사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Capital Building, Washington Monument 그리고 Lincoln Memorial 등을 구경하고, 교육기관으로 Georgetown Univ.와 나에게 입학원서를 보내주었던 American Univ. 의 Campus를 구경했다.
Mr. Andrews는 Pentagon(국방성)에 근무하다 제대한 분이기 때문에 모처럼 국방성 건물에 들어가 구경하게 되었다. 그 규모와 보안에 압도되었었다. 그러나 「알카에다」의 공중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가장 인상적인 투어는 역시 국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와 세계적 박물관인 Smithsonian Institution이었다. 미국 내의 모든 보관의 가치가 있는 기록물은 물론이고 해외의 인류사에 기여하는 것까지 모두 망라하고 있다. 과학적인 보관도 철저하지만 서비스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Management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는 「죽기 전에 책 한 권 써서 Library of Congress에 등재되면 행복한 인생 마감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Smithsonian은 그 규모와 내용에 있어 세계 제일이다. 미국은 자국(自國)이 식민지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자연박물과 근, 현대과학기술 전시물은 단연 세계적이다. 1, 2주일 관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월,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6일간의 친절한 사랑의 방문을 이것으로 마치고 Easton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