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fayette의 도움으로 1962년 9월 신학기에 석사(MA)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Lehigh는 철강거인(鐵鋼巨人) Bethlehem Steel의 주(主) 공장이 있는 펜실베니아 주 Bethlehem 시에 위치해 있다. 학교 기금의 대부분이 이 철강회사의 출연이기 때문에 공학계열이 매우 강하다. 특히 토목, 금속, 기계공학은 미국 내에서 매우 우수한 학교로 분류된다. 그 당시 5층 건물 높이의 시험용 7,000톤 Press를 운용하고 있는 학교였다.
Lafayette 이사진(理事陣)의 불화로 탈퇴한 일부 이사가 학교 법인을 독자적으로 설립한 것이 Lehigh이다. 따라서 Lafayette와는 탄생으로부터 라이벌 관계가 된 것이다. 원수같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선의의 경쟁 관계로서 서로 학문, 스포츠 분야에서 많은 협력을 하고 있다.
Easton 시에서 약 50km 서쪽에 위치해 있고 Route 22 고속도로를 타면 불과 3~4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였다. 따라서 주말이면 언제나 Stevens 교수댁에 와서 보내고 일요일 밤에 돌아가곤 했다.
미국에서의 기숙사 생활이 처음 시작됐다. Taylor Hall은 펜실베니아 주의 역사 건물이다.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지은 지 100년이 되었다. 강도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는 3층 건물은 토목공학과 재료공학의 좋은 표본으로서 활용되고 있었다. 기숙사는 2인 1실인데 중앙에 조그만 거실이 있고 각 방에 침대와 공부 책상이 있어 사생활이 보장되었다.
식사는 세끼를 중앙식당에서 해결했는데 2학기부터는 공부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식사를 취소했다. 또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점심까지 취소하고 「카페테리아」에서 햄버거 신세를 지며 끼니를 이어갔다. 지금도 그때의 햄버거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가끔 「맥도날드」에 들리곤 한다.
대학원 우리 반 학생은 18명이었다. 영국 출신 1명, Greece 변호사 출신 1명, Columbia 출신 여성 1명, 미 공군 위탁학생 소령 1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 출신 학생들이었다. 학부 배경은 다양했다. 영문과를 비롯해 정치, 경제, 역사, 심리 등 다양한 분야였으며 수학과도 한 명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학문의 일관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따지지 않는 것 같았다.
강의가 반, Seminar가 반 정도였으며, 강의는 학부 학생도 참가했다. 진짜 공부는 Seminar에서 하게 된다. 많은 과제물 주로 Reading을 하고 테마를 정해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형식이다. 많은 독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Term paper라고 해서 각 분야별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최소한 5권 이상의 책을 참고해야 논문을 인정한다. 토요일 오전까지의 강의가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잠시 침대에 누워 쉬다가 Mae Ann 부인이 차로 데리러 오면 따라가서 잘 먹고 푹 쉬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온다. 똑같은 공부 생활이 내내 반복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편지도 대부분 금요일에 도착하면 하루를 재워 다음날 토요일 오후에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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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high 대학원 시절 / Student Center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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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부터는 주말 시간도 아쉬워서 Stevens 교수댁에 갈 수가 없었고 기숙사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 시간이 부족했던 이유 중 하나가 용돈을 벌기 위해 시간제로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것이다. 책의 대출과 회수된 책의 정리이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은 자유로웠고 나에게 딱 맞는 아르바이트였다. 다만 시간을 뺏기는 것이 문제였다.
Seminar는 야간에도 있었다. 가끔 Seminar가 끝나면 Dutch pay로 교수와 함께 학교 근처 Bar에 몰려간다. 맥주 한잔을 놓고 담소하는데 주로 시사 문제다. Cuba와 Soviet와의 대결 문제가 그때의 주요 시사거리였다. 대부분 교수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학생들은 진보적이고, 평화주의자가 많았다.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Desmond Johns는 London School of Economics 출신 학생인데, Full 장학생으로 초대받아 온 학생으로 매우 우수했다. 진보적이어서 보수적 교수들과 논쟁하곤 했고 항상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이 오고갔다. 교수라 해서 전혀 받들어 모시는 것이 없는 Free talking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토론문화 상대방의 격을 존중하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개전하는 자세가 부러웠다.
처음 지하 Bar에 따라갔던 때의 일이다. 서양 학생은 줄줄이 들어가는데 맨 뒤에 따라간 나는 입장 불가 저지를 당했다. 음주연령 미달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권을 꺼내 보였더니 갑자기 “ Yes, sir” 하며 거수경례를 붙인다. 웬일인가 했더니 여권에 장교 복장을 한 나의 사진을 보고 장난삼아 인사를 한 것이다. 자기도 한국에 파견되어 군복무를 했다고 하면서 반겨줬다.
Lehigh에서의 생활은 고달프고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부족했다. 미국 학생에 비해 체력이 딸렸다. Lehigh는 스포츠 중에서도 레슬링이 National Champion이다. 힘이 남아도는 학부 학생들은 수시로 공부를 하다가도 밤중에 복도에 나와 한판 메치기 하는 일이 자주 있다. 건물이 쿵쾅쿵쾅 울린다. 나가보면 둘이 엉켜서 씩씩거리며 한판 승부를 보고 있는 것이 예사다. 그 힘에 탄복한다.
자정쯤 되면 “핏사, 핏사”소리 지르는 학생이 있다. 기숙사에서 「핏사」 주문을 받는 자원봉사자이다. 자가용을 굴리는 학생인데 「핏사」 아홉 개를 주문받으면 한 개가 자기 몫이다. 전화(collect call)로 주문해 놓고 Pick up 하면 10분 내에 도착한다. 매우 신속한 배달 덕에 많이들 사 먹는다. 1불~1불 50센트 Full size인데 혼자서 다 해치우고 공부를 계속 한다. 특히 중간시험 또는 학기말시험기간에 자주 있는 일이다. 미국 학생들은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고, 끝없이 공부한다. 그러나 주말은 완전히 딴 세상이며 확실하게 휴식한다.
학교에 한국 학생은 대학원 석사과정의 나와 학부 신입생 Mr. Hahn이 있었다. Mr. Hahn은 프랑스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왔다. 아버님이 단명의 장면 정권 때 주불 공사(駐佛 公使)를 지내다 군사혁명으로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망명을 온 처지였다. 따라서 Mr. Hahn은 학비에 매우 쪼들리고 있었다. 급할 때 서로 변통해 주면서 친하게 지냈다. 의외로 Lehigh의 공부가 매우 힘들다고 했다. 따라서 둘은 겨우 학교 교회(敎會)나 주말에 만나 이야기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