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로 거사 계획은 무위로 (48회...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총소리가 나자 칠궁 옆으로 쫓아나가 보았다. 대한그룹 설경동 회장 집까지 내려가서 보니, 일부 경찰이 집총한 채 간간히 공포를 쏘고 학생들이 이제 후퇴했는지 저 아래 해사국(海事局 : 지금의 종합청사) 쪽에서 계속 총소리가 났다.

더 내려가 볼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고대에 다니는 처남이 새까만 그을음을 얼굴에 잔뜩 묻힌 채 적선동 쪽에서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집에 당도하자 중대(中大)에 다니던 동생 진식(秦式)이 땀과 흙이 범벅이 되어 집으로 쫓아 들어오면서 “형님! 광화문, 시청 앞에서 학생들이 많이 죽었어요!” 한다. “이놈아! 느이 아버지 공무원인데 니 데모하면 모가지 날아간다!” 했더니 피식 웃는다.

가정의 어른이 공직에 있건 사업을 하건 상관하지 않고 모두 일어나 불의에 맞선 것이 4 .19였다. 나는 4.19도 이렇게 총소리와 매연 속에서 맞이했다.

곧 계엄령(戒嚴令)이 발동됐고 군의 전차부대가 도착했고 2, 3일 후에 사태의 심각성과 부정의 전모를 파악한 이 박사는 하야(下野)를 선언했다. (李 대통령에게 정확한 상황보고를 한 분으로 : ① 국방장관 김정렬(金正烈) 장군, ② 오재경(吳在景) 씨 ③ 미국대사(美國大使) 등 이었다 했음).

우리의 거사 계획은 이로서 완전하고 확실하게 끝장이 났다.

▲ 연참(지금의 합참)에 배속되고 3군동료들과 함께

거사의 에필로그

4.19로 모든 계획이 끝났다. 무기도 필요 없게 되었다. 유세림 선생과 하재윤 동지와 상의한 결과 무기는 공급자인 하형(河兄)이 맡아서 폐기하기로 했다.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무기 꾸러미를 나의 침대 밑에서 끌어내 하(河) 동지에게 건넸고, 하형(河兄)이 물건을 들고 우리 대문을 나설 때 얼마나 나의 마음이 홀가분한지 몰랐다. 80kg들이 쌀가마를 내려놓은 기분이랄까. 하형(河兄)은 의리가 돈독하고 일처리가 치밀하기 때문에 한번 맡겨놓은 일은 잊어버려도 된다.

나는 그 후 1961년 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1962년 초 쯤 일명 「알래스카 토벌작전」이라고 하는 군내(軍內) 함경도 출신 일부 장성(將星)들이 「역(逆) 쿠테타」를 모의했었다는 혐의로 대량 연행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일과 관련해서 시중에 흩어져 있는 각종 무기를 회수하기 위한 자수기간을 설정한 모양이다.

이때 유세림 선생이 아끼는 제자 겸 심부름 집사로 일하고 있던 사람이 어떤 동기에서인지 몰라도 그때 일을 중앙정보부에 투서를 한 것이다. 따라서 유 선생이 연행되어 수일간의 취조 끝에 무기 출처에 관해 모두 자백을 했다.

이어 하형(河兄)이 연행되고 그 유명한 남산 근처 임시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복도 끝에서 “하 동지” 부르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는데, 유 선생님이 다급한 소리로 “하 동지! 다 말하세요. 문제될 게 없어요!” 라고 하더란다. 유 선생님이 먼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5.16 세력에 대한 공격음모가 아니고 자유당 이 박사 독재정권을 제거하려 했고, 무기도 못 쓰게 버렸다고 우겼단다.

할 수 없이 버린 곳을 가르쳐 주었는데, 바로 하형(河兄) 집 마당 한구석에 약 4,50cm를 파고 무기를 모두 넣은 다음에 인분(人糞)을 가득 채우고 흙으로 덮어 버렸던 것이다. 중정(中情) 직원들이 달려가 파내고 깨끗하게 수입(手入)한 다음에 시험발사를 해 보니 45구경은 아무 이상 없이 팡팡 발사가 되고 무기로서 하등 지장이 없었단다. 파묻은 지 1년 반이 경과했는데 그토록 기능에 장애가 없었으니 미제(美製)의 우수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경무대를 떠나는 이승만

심문, 조사가 계속되는데 어느 날 새벽, 조사관들도 지쳐서 방을 비운 사이, 열려있는 창밖으로 나지막한 벽돌 담장이 보이는데 조금만 요동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더란다.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담을 타고 넘자 바로 길이더란다. 잠뱅이, 셔츠바람이고 돈 한 푼 없는 신세라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골목길만 찾아 튀기 시작해, 동대문까지 와서는 아침 조깅하는 사람처럼 속보로 걸어 장위동 친구의 이모집(어(魚)씨 집인데 나도 잠깐 하숙을 한 바 있음)에 가서 숨어 있었다고 한다.

요로(要路)를 통해 결백이 입증되고 조사가 종결되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후에 중정(中情)에서 수차 찾아와서 요원으로 동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거절했다 한다. 중정(中情)에서는 남자다운 대담성과 입이 무거운 하형(河兄)의 성격을 높이 산 모양이다.

하형(河兄)은 끝까지 연루된 동지를 불지 않고 주동인물의 한 사람인 김진휴(金秦休)는 미국에 유학 가 있으니 불러서 조사하려면 하라고 우겼다 한다. 5.16과는 관계가 없는 이 박사 해치우려고 했던 일인데 당신들이 알아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끝까지 인명을 대지 않고 36계로 종결을 본 것이다.

하형(河兄) 이외의 희생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의리에 우리 모두 하형(河兄)을 존경한다. 신생 대한민국을 사랑했다.

「변호사 이민아」 지금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