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설사(政治學說史)의 김영두(金永斗) 선생님, 수원 고농(高農)에서 동북제대(東北帝大)를 거친 최고의 학력이신데 지식 전달방법에 좀 문제가 있어 정치과 학생들이 모두 고전(苦戰)했다. 그러나 열정과 성실한 강의 자세로 우리의 존경을 샀다. 가끔 어떤 공리(公理)에 마음 속 깊이 공감하면 소년처럼 금방 흥분해 혼자서 파안대소 하신다.
항일투사(抗日鬪士) 김준엽(金俊燁) 선생님. 담당과목인 비교정치론(比較政治論)은 별로 강의 아니 하시고 애국하라,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라 등 덕담, 연설만 하셨다.
인상에 깊이 남은 학자로서는 국제법(國際法)을 강의하신 박재섭(朴在攝) 선생님. 빈틈없는 강의에 청중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 교재로서 고전에 가까운 국제법개론(國際法槪論)을 집필하셨고, 내가 미국에서 국제정치학(국제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을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됐던 교본이다.
끝으로 철학개론(哲學槪論)을 가르치신 우리나라 철학계의 태두 김태길(金泰吉) 선생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저항했던 일이 있다. 1학년 1학기 철학 강의가 너무 어렵고 교수님의 눌변에 입담도 시원치 않아 학생들이 몹시 불만스러워 했고, 마침내 강의거부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습은 되었으나 철학개론 대신 철학사(哲學史)로 내용을 변경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우리 학생들의 수준 문제였다. 당시 고교학생들은 전란(戰亂)으로 인해 독서(讀書) 즉 책읽기가 거의 없었으며 지금에 비하면 매우 무식했던 것이다.
고대(高大) 재학 중 학교에 하나 기여한 것은 「Time」과 「Newsweek」誌의 번역, 해설을 위한 동아리 모임 즉, S.I.S(Student Intellectual Society)를 조직해서 운영한 일이다.
창립(創立)의 멤버는 정치학과(政治學科) 학생이 주동이 되었다.
나와 김운용(金雲龍 : 성균관대 헌법 명예교수) 군 그리고 차석준(車錫俊 : 대구 MBC 사장 역임) 군 등이 주체(主體)가 되어 매주(每週) 2회씩 방과 후 모임을 가져 시사문제 토론 등을 진행했다. 많은 후배들의 호응이 있어 지금도 S.I.S는 지성(知性)의 광장(廣場)으로서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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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공부 동아리(S.I.C.)를 창설했다. / 지금도 후배들이 잘 이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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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戰亂)은 우리 청년들에게서 사색기(思索期)와 순진성을 한꺼번에 약탈해 가버렸다. 속도 제대로 차기 전에 갑자기 껍데기만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왔으면 학문과 지식으로 속을 채우고 좋은 교우를 통해서 인성을 계발해야 하는데 바로 정치일선(政治一線)에 투신하는 것이다.
일차(1次)로 당시 유행했던 지방 학우회를 통해 학생정치에 참여한다. 경남학우회, 전남학우회가 대표적인 학우회였다. 여기 회장에 당선되면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으며 지역 국회의원들도 지방 여론에 신경을 쓰므로 학우회 회장단을 괄시할 수가 없었다. 지역 군(郡) 또는 시(市)와 출신고교 및 대학이 배경이 되는데 1956년도의 경남향우회 회장 박희선(朴熙璇 : 부산고등학교, 밀양군, 서울대 정치학과, 신문사 논설실장 출신)을 당선시키는 데 나도 일조를 했다.
나의 배경인 경남고와 경남상고의 서울 유학생을 동원하는 데 기여했고, 그 덕택으로 학우회 총무를 맡아 1년간 재미있는 학우회 활동에 참여했다. 경남도(慶南道) 공보과(公報課)의 차량과 영사기를 지원받고 오지(奧地)의 군(郡) 소재지를 돌면서 계몽활동을 한다. 시골에서의 대접은 융숭했고 때로는 군수의 개인 초청도 있었다.
마침 창녕 군수실에 들렀을 때다. 송봉재(宋鳳在) 군수가 “학생들! 저 새소리 얼마나 아름다워요.” 하신다. 관리 출신으로서는 상당히 로맨틱하신 분이구나 하고 마음에 새겨둔 분이다. 그분은 선비이고 신사이셨다. 그런데 약 10년 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기획조정실 교수평가단(敎授評價團)을 잘 운영하셨다.
각 지방으로 순회하며 계몽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지역 출신의 재경(在京)정치인, 기업인들의 추렴으로 충당했다. 정치인으로서는 창원(昌原)의 이용범(李龍範) 의원 그리고 부산의 김지태(金智泰) 의원이 찬조를 많이 하였다.
기업인으로서 단성사와 중앙극장을 소유하셨던 김(金)회장님 그리고 Lucky 계열에서 도와 주셨다.
또한 그분들의 고향에 도착하면 계몽활동 중에 반드시 그분들이 ‘도와 주셔서 감사했노라’고 청중에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학생정치는 여(與), 야(野)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를 방문해서 대화하고 눈도장을 찍는 일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 5, 6명이 그룹이 되어 전화로 약속을 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당시 대학생은 숫자가 적고, 청운의 꿈을 품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부류로 인정받아 정치인들이 비교적 잘 맞아 주었다.
지금 기억나는 분으로서는 박순천 여사(朴順天 女史), 장면(張勉) 박사, 이범석(李範奭)장군, 이재학(李在鶴)선생 그리고 엄상섭(嚴祥燮), 조재천(曺在天)의원 등으로 기억한다.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박순천 여사는 손자를 업고 대화해 주시는데 정치인이기 이전에 자상한 할머니 같은 분이었다. 안호상(安浩相) 박사님은 철학(哲學), 이념(理念) 강의로 일관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