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버님께서 미군 항만기지 및 군수기지(美軍 港灣基地 軍需基地) 사령관을 좀 만날 일이 있는데 내가 통역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신다. 원래 부산 지방체신청 청사는 부산 최고의 위치인 도청 근처 미아동에 있었으나 미군에게 수용되고 부산우체국(釜山郵遞局) 2층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장소도 협소하고 구호물자가 본격적으로 도착하면서 우체국 시설 자체도 한계에 달했다. 새로운 청사가 절실했다. 사령관에게 이 문제 해결을 요청하실 판이었다.
미국인 사령관은 준장(准將) 별 하나로 상당히 연세가 많아 보였다. 그분은 부산 기관장회의(機關長會議)에서 아버님과 자주 만나는 처지라 서로 친숙한 편이었다.
처음에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니 그저 아버지를 따라 놀러온 High school boy로 아신 모양이다. 사령관 통역인 황비서(黃秘書 :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가 간단하게 소개하고 이 Boy가 아버지를 위해 통역할 것이라고 한마디 하고 밖으로 나가신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는 등 질문이 나와서 1950년 6.25 발발(勃發)과 함께 미군과 함께 했던 이력을 대충 이야기 했더니 싱글벙글하며 “장군인 나보다 더 많이 전쟁을 경험했구먼!” 하신다.
아버님의 부탁은 ‘청사를 하루속히 돌려주던지 아니면 간이 청사라도 하나 만들어 주던지 양자택일의 제의였다. 청사는 현재 미군 장교 미아동 대로변(大路邊)클럽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장교들의 불만을 감안해 「퀀셋 하우스」로 하나 새로 지어 주기로 합의를 봤다. 약 한 달 후 초량역 앞 체신청 소유 공터에 500평짜리의 창고식(倉庫式) 거대한 양철건물이 들어섰다.
준공식 날 부산지방의 모든 기관장이 참석하고 군악대의 연주 속에 행사가 뻑적지근하게 치러졌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연단에 서서 아버님의 인사말씀을 통역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아들 신세 톡톡히 졌고 자랑스러웠다”고 후일 어머님께 이야기하셨다 한다.
Whitcomp將軍은 우리나라 戰後복구와 사회사업(社會事業)에 심혈을 기울린 분이였다. 깊은 인류애(人類愛)와 미국(美國)을 사랑하는 철저한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의 선봉자이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융통성이 있는 분으로 봤다.
1953년 겨울 강풍이 휘몰아치는 12월의 어느 날 밤, 부산역전(釜山驛前) 60계단 윗 쪽 어느 피난 판자집에서 일은 터지고 말았다. 부부싸움 끝에 남정네가 호롱불을 걷어차는 바람에 부산시 중앙지대(釜山市 中央地帶)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우체국 본관(郵遞局 本館)을 비롯하여 부산역사(釜山驛舍)등 수(數) 많은 지방문화재단(地方文化財級) 건물이 불타고 釜山稅關은 반소되는 참사가 벌어 졌다.
釜山市廳 가까이 까지 시가가 몽땅 다 타버렸는데, 大廳洞 入口 식산은행만이 동그랗게 살아남았다. 왠일이였을까?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오자 숙직하던 은행서무과장이 자루에 몽땅 돈다발을 짊어지고나와 호스를 쥐고 있는 消防官에게 돈을 찔러 주면서 은행을 보호해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은행만이 동그렇게 살아남은 희극 아닌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Whitcomb 將軍의 복구참여는 전설적인 일이였다. 마침 新東亞 2011년 5월호에 배수강 記者가 발굴한 Story가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군수사령관으로있던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가 발생하자 이재민수용소를 설치했고 군수물자를 이재민에게 몽땅 풀어 주는 바람에 미의회(美議會)청문회에 서기도 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 받았다.>
將軍은 체신청청사를 지어주는 것 외에도 釜山大 建立 時 많은 건축자재를 지원했고 공병부대(工兵部隊)로 하여금 학교부지조성과 진입로 공사까지 지원했던 것이다. 사회사업(社會事業)으로는 전쟁고아의 진료를 위해 메리놀 병원(病院)을 설립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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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의 참상 [사진출처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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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어 적어 본다.
아버님 : 미아동의 체신청 청사는 일정때부터 부산지방체신청 청사로서, 慶南北, 全南北, 濟州道의 모든 우체국, 전화국, 건설국을 관할하던 곳이였습니다. 하루속히 반환을 받아 본래의 기능을 해야 합니다. 이제 더부살이하든 부산우체국청사도 완전히 소실 됐구요.
將軍 : 잘 알고 있습니다. 장교(將校)의 유흥소로 쓰고 있다는 것이 좀 명분이 약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자식 두고 고향을 떠나 전장(戰場)에 나와 있는 장교, 병사들의 유일한 회포 푸는 곳입니다. 미안합니다. 최근(最近) 장교(將校)들 가운데에서도 한국정국(韓國政局)에 관(關)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비민주적(非民主的)으로 흐르고 SyGee(Rhee Syngman 이승만 대통령을 비하하는 호칭)정부를 위해 무엇 때문 우리 장병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 Officer's Club을 폐쇄하면 부작용이 많을 것입니다. 대안(代案)으로 부산우체국(釜山郵遞局)이 복구 될 때까지 임시청사를 만들어 들이지요.
위의 대화내용과 같이 당시(當時) 대통령직선제(大統領直選制)강행과 국회위원 출근(國會議員 出勤)bus의 강제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공포로의 석방 등으로 이대통령(李大統領)에 대한 미군(美軍)들의 반감은 극에 달해있던 상태였다.
황비서(黃秘書)와 아버님과의 대화(對話)에서 기억나는 것은 Whitcomb장군(將軍)(당시 환갑에 가까운 나이)은 아직도 총각장군(將軍) 이다. 영원(永遠)히 군(軍)과 결혼(結婚)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1차대전(一次大戰), 2차대전(二次大戰), 그리고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에 이어 한국전쟁(韓國戰爭)까지 4개(個)의 전장(戰場)을 누빈 역전의 용사라고 소개해주었다.
50여년(餘年)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장군(將軍)의 근황을 조사해봤더니, 예편 후(豫編後) 한묘숙여사(韓卯淑女史)와 결혼(結婚)해서 딸도 하나 얻고 행복한 여생을 보냈으며 1982년 드디어 영혼과 몸을 사랑하는 2의 고향 한국(韓國)에 내려 놓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세상(世上)떠나는 순간까지 장군(將軍)의 필생사업인 미군(美軍)실종자(MIA-Missing in action)색출, 그리고 유해(遺骸)발굴에 자신(自身)의 몸과 가산(家産)을 던저 넣은 숨은 영웅(英雄)으로 활약했으며, 부인 한묘숙 여사(婦人 韓卯淑 女史)는 서방님의 유훈을 받들어 지금도 북한(北韓)과 고인의 길은 놓치지 않고 유해 송환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국(異國)의 산하(山河)에 버려진 고독한 영혼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수습해서 고국(故國)의 가족(家族)품에 돌려보내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