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초 부터는 UN군, 공산군 쌍방이 모두 3년의 치열한 전쟁에서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금화, 철원 특히 백마고지 등지의 한국군 방위구역(sector)에서는 계속적인 진지 공격 등, 밀고 당기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부와 중동부의 미군 「섹터」는 소규모 포격전 정도로서, 중공군이 가급적 미군에게 타격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개성, 판문점 등지에서 이미 활발한 휴전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고, 새로 당선된 아이젠하워(Eisenhower) 대통령은 전쟁 종결을 미국국민에게 이미 약속했기 때문에, 휴전 마무리는 시간문제였다.
이러한 정세를 파악한 공산군은 급한 미국을 최대한 이용한다. 단적인 예로서 개성지구 및 옹진지구 같은 평야지대는 미군의 기갑부대와 항공기를 동원하면 그때의 전력으로 보아 개성 뒤 송악산까지 쉽게 진격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다지 많은 희생 없이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휴전회담 장소로 개성을 지정해 놓고, 인근에는 일체의 전투행위가 없도록 약속하고 회담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좋은 남한 땅을 북에게 내주게 되는 불찰을 범했다고 본다.
휴전선의 중동부 쪽은 계속 북으로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앙인 춘천(春川) 정도에서 회담을 했으면 개경(開京)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명분도 있었다. 왜냐하면 6․25 개전 때 북한군의 주력이 철원, 동두천, 의정부 루트를 타고 남하했기 때문이다. 남진(南進)의 원점에서 회담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너무 성급했다. 전쟁을 끝내는 데만 매달렸다. 언제나 공산주의자는 장기적 전략으로 하나하나 다져나가는 특색이 있다. 그리고 집요하다. 협상도 자기들이 불리해야 응하고, 얻을 것이 있어야 합의한다. 명분, 정의 따위는 필요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자유주의 나라에 비해 그 정신과 투지에 있어 한 수 위에 있다.
또한 세계전략도 적절하게 구사한다. 영국 노동당 정부를 시켜, 전쟁을 계속하면 부득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거짓정보를 흘리고, 세계 좌파 지성인과 공산우군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미국을 압박한다.
그때 스탈린(Stalin)은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고, 한국전쟁 개입은 잘못이라는 것을 내부적으로 시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정권도 20년의 내전(內戰) 후 국민당을 축출하고 겨우 공산통일을 달성했던 것이다. 3차 대전으로 확대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내정(內政)의 안정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게는 대만의 국민당군의 위협도 상존하고 있었다. 물론 항미원조(抗美援助)를 내세워 중공이 참전을 결심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모택동(毛澤東)은 처음 임표(林彪)를 조선으로 보내 지원군을 지휘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임표(林彪)는 아프다는 핑계로 응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팽덕회(彭德懷)를 대신 보냈다고 한다. 소련에서는 팽덕회의 역량에 대하여 많은 회의를 가졌던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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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가운데)과 팽덕회(오른쪽에서 2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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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1950년 10월 7일, 38선(線)의 월경(越境)이 있은 후, 중공에서는 미국이 「전쟁을 확대하고 있는 위험한 작태를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 모택동의 확고한 생각이었으나, 의외로 진운(陣雲), 팽덕회 그리고 고강(高崗) 등 당 핵심인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모택동은 사흘 낮을 사색한 끝에 참전을 결심하고, 드디어 인민지원군이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참전한다. 참전(參戰) 33개월 동안 중공군은 36만 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선에서 전사했다. 「전쟁 中 중공군(中共軍)은 수적(數的)으로, 또한 군수지원의 양(量)으로, 공산군의 주도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전쟁의 계속과 중단 그리고 휴전협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중앙일보 89년 6월 22일)
역사에 있어서 가정(假定)이란 무의미하지만, 나 같은 정치, 외교사를 전공했던 학도로서는 자주 생각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모택동이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면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한 마디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려 못살아!” 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국경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압록강까지 다시 밀고 올라간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명분 싸움, 전력의 여유, 지형적 조건 등으로 봐서 남포(南浦), 송림(松林)에서부터 곡산(谷山), 원산(元山)에 이르는 한반도의 잘록한 부분에서 휴전선이 그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말이다.
통일도 훨씬 빨리 그리고 쉽게 이루어지고, 그것도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 아쉬워해 본다. 미국은 6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했지만 한반도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정전 이후 40여년 만에 미국은 소련 공산정권을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다. 미국은 레이건 정부 8년 동안에, 소련을 앞지르는 분명한 정책으로 소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새로운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잠재적 세계의 비극을 평화롭게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전쟁 60년 후, 드디어 미국은 북한 공산정권의 실체를 파하고 협상의 전략도 터득한 모양이다. 최근 조선일보에 실렸던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파월 장군의 래리 킹과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북한 시스템은 미쳤지만(crazy), 북한 협상가들은 내가 다뤄본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끈질기다.」절대 이들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하면서,「북한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서도, 지난 1~2년 사이에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됐고, 은행에 동결됐던 2500만 달러를 돌려받았다.」그리고 6․25 휴전협정과 관련해 한마디 했는데,「북한의 협상력은 6․25 휴전협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고, 협상 상대편인 당신을 미치게 한다. 그러면서 상대편의 조급함을 역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소련군 소속 고려인(高麗人) 류성철(柳成鐵)이 6.25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지 장장 3년(37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전쟁은 드디어 그 총성이 멈췄다. 전쟁의 최전방에서 보고 듣고 한 나의 체험의 기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펜딩(pending : 미결정의, 현안중인) 되어 있는 「누가 6 .25 사변을 일으켰나, 한국전쟁은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한 「남침(南侵)」이며, 북한정권 특히 김일성 수상(金日成 首相)과 박헌영 부수상(朴憲永 副首相)의 집요한 설득으로 「스탈린」과「모택동」, 공산세계의 두 산맥을 움직여서 시작된 것이다.
인민군이 38선만 넘었다 하면 남한 일대에 민중봉기가 일어나 사실상 전투다운 전투 없이 수월하게 남한을 점령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동북아 방위선(東北亞 防衛線)에서 한반도가 제외되어 있다.(에치슨 라인)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기록물로 확인된 사실이다. 세계의 역사학자들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그렇다, 아니다」의 논쟁 자체를 비과학적이고 비학문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부르스 커밍스」가 소위 진보이론이라며 새 학설이라고 내놓은 논문이 국내의 이념에 푹 찌든 몇몇 학자들의 매개로, 민주화의 열기에 불타있던 순진한 학생들에게 기름을 확 뿌려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지금도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학자, 그리고 386들은 이 선동적인 소리를 내다버리면 자기 존재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화석이 되어 버렸다.「나찌」정권의 선전상(宣傳相)「괴벨스」는 ‘거짓말도 자꾸 반복하면 진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선전, 선동 그리고 파괴의 무서운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