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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춘계공세도 그 규모에 있어 예년에 비해서는 약한 것이었다. 가칠봉 근처의 「펀치볼」전투도 쌍방의 포격전 정도이고, 대규모의 진지 탈환전은 없었다. 쌍방이 워낙 견고한 진지 구축으로 요지부동이었다.
때때로 밤하늘은 불야성이었다. 서치라이트를 적 진로에 계속 비추고 수시로 포격, AKI AKI 장갑차는 계속 발포한다. 그리고 미군은 낮에 주로 항공기를 투입, 보급로 차단과 진지 공격을 했다.
대암산 기슭에서 F-86이 적의 진지를 공격하는 것을 관람하는 것은 Air show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일개 편대가 나타나면 「때리고」「솟구치고」「뒤따라 내리 꽂히고」이런 지상 공격을 반복하다, 약 20~30분 정도 공습하고 유유히 남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일요일이다. 명절에는 전투기를 거의 볼 수가 없다. 그 때에 공산군은 최대한 탄약과 보급품을 추진하고, 다음날 틀림없이 왕성한 포격전으로 응수한다.
우리 116 전투공병대대는 대암산 입구에서의 일 년 동안의 고착 주둔을 마치고 이동명령을 받았다. 화천저수지, 지금의 ‘파로호’ 북방 백석산(1,141m) 인근의 「크리스마스 고지」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양구 덕곡에서 새 길을 만들어, 종전에는 바지(Barge)선으로만 도달할 수 있었던 고방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육로로 직접 뚫는 작전이었다. 양쪽에서 주야로 작업을 해서 보급로가 일주일 만에 완성되었다.
대대본부와 A, B, C 중대 모두가 개설된 신작로를 이용, 「군도계곡」으로 들어가 새로운 진지와 주둔지를 개척했다. 지형적으로 비좁은 협곡이었다. 아늑하고 경치 좋은 두 개울이 합수되는 지점이라 물이 풍부했다. 또한 적군의 포화도 양쪽 높은 산이 차폐(遮蔽) 역할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위, 아래만 차단하면 도피구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고지」는 미군이, 화천 북방 쪽은 한국군이 잘 방어하고 있는 지역이라 별 걱정을 안했다.
새 이동지역에서의 임무는 전선으로 뻗는 작전도로의 개설이고, 후방 화천저수지와의 연결 도로의 확장이었다. KSC대원들의 노고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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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천저수지를 지나 크리스마스고지 후면, 곤도계곡으로 대대본부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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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포격소리가 요란했고, 낮에는 여전히 전투기의 맹렬한 폭격, 기총소사가 이어졌다. 우리 부대는 비교적 평온했으나, KSC 대원 중 최근에 도착한 부류들은 지형을 잘 모르고 매설된 지뢰의 판독을 하지 못해, 야간에 도주하면서 희생자가 자주 발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초보 노역자들이 전선(戰線)은 비인간적이고 고독하며, 집안일은 걱정되고 하니, 단순한 생각으로 ‘에이 모르겠다!’ 하며 야밤에 튀어 나가는 것이다. 군번 없는 노역자이고 계약도 없는 처지인지라, 군법으로 다스릴 방법이 없다. 붙들어 돌아오면 조장으로 하여금 특별 감시를 하도록 하고, 질이 좋지 않은 자에게는 호(壕)를 파는 등 강한 노동을 시키는 일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대단한 인권 침해였다. 전쟁이라고 하면 귀신도 도망간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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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Stevens는 「군도 계곡」에 이동 후 S-2의 책임참모가 됐고, 한국인 종업원과 KSC를 관리하는 총책이 되어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한국인이 불이익을 당하면 대대 단위 군법회의를 개최해서 한국인들을 남용, 구타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했다.
어느덧 Dr. Stevens의 의무복무기한 1년이 다 채워져 간다. 고국에 귀국하면 박사과정으로 돌아가 학위를 끝내고 교수생활을 하는 것이 본인의 희망이었다. 어느 학교가 될지 모르지만, 생활이 안정되면 나를 위해 유학 수속을 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타임」지, 「뉴스위크」지 하나도 미군을 거치지 않으면 구독을 할 수 없던 캄캄한 우리네 세상에 ‘미국유학’이라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Stevens의 인간성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기다리기로 했다.
Dr. Stevens가 떠나는 날 「군도 협곡」의 산모퉁이에 그가 탄 짚차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청히 서 있었다. 눈물이 고여 앞이 안 보인다.
후임자로 온 페러(Ferrar) 중위도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도 ‘라틴계’ 출신으로서 Texas에 살면서 인종차별이 어떻다는 걸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동정적이었다. 「텍사스」남부 사투리에 유머가 대단해 사병들에게 곧 인기를 끌었다.
「군도 협곡」은 장마를 맞이해 주변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 엄청난 수량에 차량이 완전히 묶였다. 서둘러 축성한 보급로는 군데군데 유실되어 식량 보급이 중단됐다. C-레이션으로 끼니를 잇던 우리들은 담배마저 귀한 물품이 되었다. 하루 2~3갑씩 태우던 골초들은 허기진 강아지처럼 꿍꿍거렸다. 꽁초도 동이 났다.
평소에 친분을 유지하던, 건너편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부대(3師 18聯隊로 기억)에 갔다. 연대장에게 담배 이야기를 했더니 선뜻 화랑 담배 한 보루를 내준다. 부대로 가지고 돌아와서 골초들에게 한두 갑을 나눠주니 대단히 좋아했다.
2, 3일 후 드디어 보급품, PX물품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더운 식사도 하게 되고 담배도 실컷 피우게 되었다. 퇴근 후에 나의 막사로 돌아왔더니, 이것이 웬일인가. 양담배가 열 보루 정도 내 침대 위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 화랑 담배에 대한 답례였다. 한두 갑 받은 사람이 이자를 쳐서 한 보루씩 가져온 것이다. 참 인심도 좋은 부대였다.
